이제 당근은 알뜰한 살림살이의 필수앱이 되었다. 그런데 심심풀이로 물건을 구경하다 보면 묘한 글이 자주 눈에 띈다. “결혼 파투 났어요 ㅜㅜ”, “폐업정리 합니다 새제품이에요”. 하는 식으로 물건보다 사연이 먼저 나오는 게시글이다. 얼핏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고 그래서 더 쉽게 눈길이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사연은 단지 이목을 끄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장치일 때가 많다.
실제 사례를 보자. 브랜드나 제품이름만 보면 독일산이나 유럽 브랜드처럼 보이고 검색창에 치면 수십만 원, 많게는 백만 원이 넘는 최저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판매자가 미리 조작해둔 허위 시세에 가깝다. 소비자는 “결혼이 깨져서 급히 내놓은 것”이라는 사연에 마음이 움직이고, “혼수라면 좋은 걸 골랐을 거야”라는 기대를 덧붙인다. 여기에 “검색해보니 원래는 비싼 물건이네”라는 합리화까지 거치면 좋은 제품을 싸게 샀다는 착각이 완성된다.
사실 이런 ‘사연 팔이’는 결코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예전부터 길거리에는 다리를 절룩이며 동정을 유발하던 가짜 거지가 있었고, 대중교통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안타까운 스토리가 함께했었다. 본질은 같다. 인간의 연민과 기대를 금전으로 바꾸는 오래되었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수법이다. 그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왔을 뿐.
그렇다면 왜 하필 혼수일까. 혼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신뢰를 담보한다. 결혼 준비에선 대체로 오래 쓸만하고 품질 좋은 물건을 고르려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는 브랜드라도 ‘혼수용’이라 하면 고급일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결혼이 무산됐다는 설정은 낮은 가격을 정당화한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함께하는 물건을 싸게 내놓았을 것이라는 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싸게 얻고 싶은 욕망과 타인의 불행에 대한 연민, 그리고 혼수라는 사회적 상징이 삼각 편대처럼 맞물리며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맹자는 인간에게 네 가지 선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측은지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아이가 우물가에 위태롭게 서 있다면 누구든 본능적으로 달려가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사람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내 자식인지 도와주면 손해가 생기는지 따지지 않는다. 그냥 구해야 한다는 충동이 앞선다. 맹자는 바로 이 마음에서 도덕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연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뿌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본능적 마음이 언제나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가 아이를 우물에 빠뜨린 뒤, 그 장면을 연출해 돈을 뜯어낸다면 어떻게 될까. 연민은 여전히 고귀하지만 그 순간에는 약점으로 변한다. 우리는 그 약점을 이미 길거리의 거짓 구걸에서, 온라인의 사연팔이 게시글에서 반복해서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기에 속지 않을 수 있을까. 혹은 이런 사기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연민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곁들이는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이 곧바로 지갑을 열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거래 도중 갑자기 직거래 대신 택배를 고집한다면 수상하게 생각해야 한다. 판매자가 올려둔 다른 물품이나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다면 믿음보다 의심을 우선하는 편이 안전하다. 연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지만 경계심은 우리를 지켜준다.
“마음은 따뜻하되, 머리는 차갑게.”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따뜻한 마음이 악인의 장사 도구가 되지 않도록 차갑게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연민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뿌리이지만 그 뿌리를 지켜내려면 냉정함이라는 울타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사기와연민 #경계심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