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연체 중인 용기

2부. 오후 네시의 문

by 박나킨

시계가 16:00으로 바뀌고, 문패가 OPEN으로 뒤집히자,

창구 안쪽에서 스탬프가 먼저 깨어났다.

붉은 잉크로 찍힌 연체 두 글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문은 네 시에만 열린다.

용기는 하루 단위로 빌린다.

연체 시 이자는 '다정함 한 줄'이다.


"연체 일수, 이틀."

창구 직원이 전표를 들여다본다. 창구 옆 안내판에는 작게 쓰여 있다.


연체료는 다정함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화가 많았다.

되는 일도, 맘에 드는 사람도 없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 싫다. 모두 밉다. 나조차도.


용기가 없어서 미운건지,

미워져서 용기가 없는 건지, 조차 모르겠다.


대출을 받았다.

스탬프가 또렷하게 찍혔다.

용기


늘 얄밉게 잘만 말하는 옆 자리 직원에게 작게 웃어본다.

"오늘 옷 예쁘다. 어디서 샀어?"

처음으로 보인 관심과 말에 그의 목소리도 제법 친절해졌다.


직장 상사의 핀잔이 스칠 때면, 화가 나서 반박을 하곤 했었다.

"그게 아니라요..." 대신 "네 알겠습니다. 다시 잘 살펴볼게요."

문장이 바뀌자, 마음의 온도도 반 톤 내려간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사람이 뛰어온다.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추가로 다정함을 더 갚았다. 자발적으로.


오늘, 연체 중이던 용기를 갚았고, 이자로 다정함 두 줄을 더했다.

그 덕분에 세상이 아주 조금, 덜 미워졌다.


내일은 용기를 대출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다가왔다.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내일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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