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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06. 2022

농약은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거죠?

 남편은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충남 당진시 신송리...남편은 가끔씩 시골에서 자라온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주로 열악했던 환경과 힘들었던 지난날의  회상들을 끄집어낸다. 말을 맛있게 하는 재주가 있는 남편의 얘긴 마치 글밥 많은 동화책 얘기를 듣고 있는 듯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가끔씩 감동적이기도 하다.


 남편은 본인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 환경 탓이었다고 변명을 해대고는 한다. 당시 어머님이 밭일을 다녔기에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늘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고, 그리고 종종 닭들이 마루까지 올라와 똥을 잔뜩 싸놓기도 해서 그걸 치우고 있노라면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공부는커녕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 자체가 힘에 겨웠었다고.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는 남편의 어린 시절 하교 후 풍경. 어둑어둑하고 썰렁하기까지 한 허름한 시골집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한 닭똥냄새까지 전해져 오니 남편의 변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의 말에 한껏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어머님은 그렇게 고된 밭일로 삼 남매를 키웠다. 그것도 본인 소유의 밭이 아닌 남의 집 밭일을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엄마가 힘든 일 정말 많이 하신 분이야." 가끔씩 형님들과 남편에게서 들었던 얘기였지만 가슴속에 절절히 와닿은 적은 없었다. 그냥 어머님의 결혼생활이 평탄치는 않았으리라 스치듯, 지나가듯 했던 생각이 전부였던 것 같다.


 얼마 전 남편과 늦은 저녁 맥주를 한잔씩 기울이며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어김없이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힘들게 살았던 어린 시절 얘기였다.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주거니 받거니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은 남편의 이야기로 막을 내릴 참이었다.

  "너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든 일 많이 하셨는지 모를 거다."

 나는 어머님의 거친 손이 떠올라 다시 말꼬리를 붙잡았다.

  "여보. 그래서 어머님 손이 그렇게 거친 거야?"

 남편은 대답 대신 침을 한번 꼴깍 삼켰다. 내가 재촉하니 그제야 다시 얘기를  시작하겠다는 눈빛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게 말이야... 밭에 농약을 뿌리려면 과 희석을 시켜야 하거든. 근데 일을 빨리빨리 끝내셔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어머니는 손으로 섞으셨단다. 아니. 나뭇가지라도 주워서 저으시던가 하시지."

 "정말? 그래서 어머님 손이 어떻게 되셨는데?"

 남편은 마치 어제 겪었던 일처럼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어머님 손이 어떻게 됐었는지 궁금했지만 남편이 아파하는 것 같아 더는 물을 수가 없었고 그 얘기를 들은 후론 내내 어머님의 손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아 어머님과 꽃구경을 하러 나가기로 한 어느 날. 채비를 끝내신 어머님께서 방에 다시 들어가내가 선물한  스카프를 목에 메고 나왔다.  다시 스카프를 예쁘게 매만져 드리고 나서 이내 시선을 떨어뜨려 물끄러미 어머님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꺼내보았다.

 "어머님. 농약은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거죠?"

  "어머 얘는. 큰일 나려고 어디 그걸 손으로 만져. 안되지."


 어머님은 옛날 일은 모두 잊으신 듯했다.  옛날에 농약을 물에 섞을 때 손으로 섞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치료는 하셨었느냐고 연이은 궁금증에 입이 들썩거렸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은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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