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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10. 2022

담배 실컷 태우시구려

시아버님은 애연가셨다.

담배와 믹스커피를 좋아하셨던 시아버님은 어머님께 살가운 남편은 아니셨던 것 같다.

시댁을 방문하면 두 분은 항상 티격태격하셨고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다투거나 하는 법도 없으셨다. 그렇게 늘 서로 부딪히긴 하셨어도 아버님은 갈 때마다 어머님 반경에 계셨었고, 어머님은  특유의 거친 표현으로 아버님께 퉁명스럽게 감정을 내뱉으셨지만 그래도 언제나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저런 사이를 애증의 관계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신혼 때였다. 시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마당에 나가셔서 줄담배를 연거푸 피우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담배 너무 많이 태우시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로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시던 어머님께서는 되려 이렇게 말씀하셨.

"아버지 그냥 놔둬라. 여보. 담배 실컷 태우시고 커피도 많이드슈"

물론 어머님이 그리 말씀하신다고 해서 아버님이 담배를 맘 놓고 피우신다거나 말리신다고 해서 줄이시거나 하지는 않으시리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말씀이라도 그만 피우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저리 말씀을 하실까라고 나는 의아했다.


그 후로 아버님은 폐암 판정을 받으시고 1년여간 투병을 하셨었다.

유독 손녀를 뻐하셨던 아버님께서는 손녀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끝내 이루시지 못하고 손녀의 돌잔치를 마친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 때 어머님이 아버님 영정사진 앞에서 울면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한다.

"아이고 여보. 담배 좀 그만 좀 우시지."

돌아가신 후에 그제야 속에서 수백 번, 수만 번, 하시고 싶었던 말씀을 아무 비유 없이 쏟아내고 있는 듯싶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걱정이 되었던 내가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아버님 가셔서 혼자 너무 외롭지 않으시겠어요?"

"외롭긴 뭐가 외로워. 아주 속이 시원하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나마 안심을 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깨닫게 된 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나는 유독 어머님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자 방에 우두커니 앉아계신 뒷모습. 눈은 텔레비전을 향하고 있었지만 한없이 쓸쓸해 보이기만 했던 뒷모습.

우리 부부는 어머님이 한동안 우울증을 앓으셨던 것 같다는 추측을 했다.

의사의 진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어머님은 입술이 아닌 쓸쓸함이 역력한 그 뒷모습으로 말씀을 하신듯했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이 아버님을 많이 그리워하고 계셨다는 것을.


그 후로 조금의 시간이 지났고 어머님의 마음을 좀 채워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우리는 마침 아는 지인이 금은방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님들과  어머님을 모시고 지인의 가게에서 어머님 금반지를 해드리기로 했다.

"어머니. 이거 어때요?" 형님들과 어머님께 어울린만한 반지를 골라 끼워보시기를 권하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대뜸 금은방 주인에게  

"반지에 다이아 하나 박아주슈" 하시는 거였다.

옆에 계셨던 형님이 "아니 엄마 무슨 다이아야 그냥 금반지 하나 하자니까"

"아니. 나는 다이아반지 끼면 안 된다?"

나는 이제야 어머님께서 하고 싶은 말은 하시기로 하신 건가 싶었.


그렇게 형제들끼리 어머님의 다이아반지를 맞춰드리고 반지를 찾으러 갔던 어머님께서는 몹시나 실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니. 다이아가 어째이리 쪼끄맣대. 이럴 줄 알았으면 큰 걸로 할걸."

나는 어머님이 다른 데는 욕심이 없으신데 유독 왜 다이아에 집착하실까 궁금했다.

아버님께 다이아반지 못 받아본 게 맺히셨었나?

"어머니. 다이아는 작지만 이쁜데요?" 

"너무 쬐그매. 큰 걸로 할걸 그랬지. 너 한번 껴봐라."

"가요?" 그렇게 다이아반지를 낀 내 손을 바라보시면서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너무 뜻밖이었다.

"이거 나중에 너 줄려고."

나는 그제야 어머님이 다이아에 집착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니 어머님. 맞출 때 말씀하셨으면 제 취향으로 골랐을 거 아니에요."라고 나는 멋쩍게 대꾸했고 순간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어머님은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서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라서 오롯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셨기에 사랑을 주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셨고, 결혼해서는 모진 시집살이를 사시느라 마음을 표현할 여유도, 엄두도 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시간을 오래 살아오신 어머님은 노인이 되신 지금까지도 사랑의 마음, 걱정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미숙하신 듯하다. 

마치 초등학교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켰을 때 되려 "내가 왜 쟤를 좋아하겠냐?"라고 반대로 얘기하듯 그렇게 어머님의 감정표현은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 이제는요.

너희들 쇠고기 먹고 싶으냐?라고 묻지 마시고  쇠고기가 좀 먹고 싶으니 사 오라고,

바쁜데 무슨 전화냐고 괜찮다고, 하지 마시고 전화 좀 자주 하고 자주 오라고 하셔도 됩니다.

"그 양반 속도 징그럽게 썩이드만..." 이렇게 말씀하시지 마시고 그냥

"오늘따라 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네."라고 말씀해보세요.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서도 들으시고 좋아하실 거예요.


아버님 살아생전 어머님은 

"여보 담배 실컷 피우시고 커피도 많이 드시구려."라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어머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여보. 그 독한 담배를 왜 그리 피우신답니까. 당신 일찍 가면 나 혼자 외로워서 어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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