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님께 상냥하고 싹싹한 며느리는못된다. 애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전화를 하는 횟수가 적은 건 아니지만통화를 할 때면 늘지극히 형식적인 얘기만 하다가 끊는 일이다반사다. 식사하셨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이런안부를 묻고 나면 다음 이야기의 주제를 찾지 못하고억지로 말을만들게 되고,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주제가 뭐였는지 헤매다가의도치 않은얘기가 막 튀어나오기도 하고, 웃기지도 않은데 웃고, 놀랍지 않은데 놀라는 척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언제 끊어야 할지 타이밍만살피다가 마지막 마무리는꼭이렇게 맺는다.
"제가 또 전화드릴게요."
시어머님과의 통화는 늘 쌓이고 남겨진 방학숙제 같은 느낌이다. 이번 숙제를 마치고 나면 다음 숙제를 걱정하게 되는...
딸이 학교에서 친구와싸웠을 때, 아들이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을 때, 내가 몸이 많이 안 좋을 때, 밖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서 속상할 때, 보일러가 고장 나서 밤새 춥게 잤던 다음날도나는 시어머님께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풀어내고 싶을 때면 친정에전화를 걸어 서두없이 본론만으로 꽉 채운얘기를 쏟아낸다.
그렇게 내가 바라보는 시댁은,시어머니는항상얼마만큼의거리가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친정처럼편하고가깝지는 않지만, 사랑이 아닌 건 아니지만사랑의 모양과 색깔과향기가 친정과는 사뭇 다른 나의 또 하나의 가족.
내가 살갑고 싹싹한 며느리가 아니듯어머님도 내게 크게 따뜻하거나 다정한 분은 아니다. 하지만가끔씩 계피 사탕 몇십 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은 것 같이 가슴을 찌릿찌릿하게 만드실 때가 있다.
몇 해 전에 형님들이랑 어머님 문제로 문자메시지로 다툼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문자로 감정을 옮기다 보니 본의 아닌 표현으로 오해가 만들어진 것 같다. 또 글로 내 감정을 털어내다 보니 구구절절 일목요연한 얘기들로 형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나는손아래이고 그리고시댁이라는 특별한 어려움 때문에 이 다툼의 패배자는 처음부터 나로 정해졌고승률 없는게임이었다. 그러던중에어머님과 통화를하게 되었다. 다른 말씀은기억에 없다. 오직이 한마디만되뇌어진다.
"널랑은 가만히 있어라 잉. 지그들끼리 지지고 볶든지 말든지. 널랑은 가만히 있어. 나는 네 편이니께."
딸들에게 말발로 한참 밀리는 내가 가엾게 느껴졌던 것 같다.
솔직히 딸이아닌며느리 편인 시어머니가 어디 있을까싶었고 믿지도 않았지만 진위를 떠나서 그 말씀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했고 감동이었다.
사실 어머님께 '나는네 편'이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던 건 아니었다. 큰애가 유치원 다닐 때쯤 신랑이랑 사네 못 사네 크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어머님은 그리 말씀하셨다.
"널랑은 아무 걱정 말어. 난 네 편이니께."
그땐 그 말씀에 크게 감동하지도 않았었다. 그냥 날 달래시느라 그러시는구나 싶었을 뿐. 그런데 결혼생활이 무르익고나도 철이 좀 더들고난 후에그 말씀은내게 크게 와닿았다. 어머님은 정말 내편이신가?
그리고 최근에 나는 어머님 때문에 또 한 번 가슴이 찡하게 저려온 적이 있었다.
"신발이 그게 뭐니? 하나를 사더라도 좀 제대로 된걸 사라."
형님이 내 여름 샌들을 보시고 했던 말에 내가 충격을 받아 신랑을 들볶은 적이 있었다.
형님과 나는 소비패턴이 많이 다르다. 나는 여행에 아끼지 않는 편이고 형님은 명품을 좋아하시는 편이다.
형님은 하나를 사도 명품을 사거나 비싸고 좋은걸 사서 값어치 있게오래 쓰자는주의다. 나는 저렴한걸 사서 자주 바꾸는 걸 좋아한다.
갱년기가 온 건지,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그 얘기가 왜 그리 서글프던지...남편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지 그 길로 형님에게 왜 그런 소릴 했냐고 따져 물었고 미안했던 형님이내게 명품 샌들을사주시기로했다.
모르긴 해도어머님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닌 게 싶다. 이건 지극히 내 생각이지만 어머님께서 사주고나 그런 말 하라는 식으로 얘길 하지 않았을까?
뜻밖의 커다란 혜택이었으나 사실 난 마음이 마냥룰루랄라 좋지만은 않았다. 명품에관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가끔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이쁜 것도 보이지만 그 거액의 값어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