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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Aug 12. 2022

며느리의 외모

뭐든지 한번 빠지면 무척이나 열성적이 본인이 좋다고 확신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시누이가 얼마 전부터 8 체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이론에 대해 신빙성을 느끼지 못하고 무신경으로 일관하던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치다가 체질을 알게 되면 살을 빼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한마디에 솔깃해져 버렸다.

평상시 먹는 걸 좋아하고 몸뚱이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탓에 다이어트는 늘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고 마는 나는 살 빼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에는 늘 귀를 쫑긋 세우곤 한다. 그게 설령 매번 속고 속이상술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 번 더 속아보자는 마음으로 또 귀를 기울이곤 한다. 그런데 심지어 8 체질은 의학론이기에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져버렸다.


내가 관심을 보인다는 걸 눈치챈 시누이가 이때다 싶었는지 후다닥 예약을 잡았고 나는 이끌리 듯 예약 날짜에 한의원으로 가게 되었다.

한의원에 들어서자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친근감 있는 외모의 직원 혼자 데스크에 앉아있었다. 접수를 하며 이름을 얘기하자

 "아! 박○○씨 올케 되시는 분이시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요." 라며 말을 걸어왔다.

말 한마디에 병원의 공기가 훨씬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니, 근데 어쩌면 아들 딸이 다 그렇게 잘생기고 이뻐요. ""

"어! 저희애들 보셨어요?"

"사진으로 봤지요. 그때 시누이랑 어머님이 같이 오셨었는데 어머님이 사진 보여주셨어요. 어쩌면 둘 다 이렇게 인물이 훤하냐니까 어머님 말씀이 엄마가 이뻐서 애들이 다 이쁜 거라고 하시던데요?

며느님이 원래는 진짜 이뻤는데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요."후후후

"아...... 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분의 눈빛이 내 외모를 살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좀 하고 올걸 그랬다.


한의원을 나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중 계속 되뇌어진 생각 중 하나는 환자들을 친근하게 대해주그들의 말에 기울여주는 직원 특별한 서비스에 마음이 흡족했고 또 하나는 어머님이 밖에 나가서 나에 대해 좋게 얘기한다는 걸 알고 나니 온몸이 훈훈해졌다.


어머님을 처음 뵌 건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였다. 

처음 시부모님을 뵙기로 한 날. 그날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이 옷 저 옷을 입고 벗고를 해가이쁘고 단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굉장히 설레었던 날이었다.

신촌에 있는 S호텔 커피숍에 나란히 앉아있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첫인상은 내게 푸근하게 다가왔다.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말은 많이 하는 게 좋을지, 적게 하는 게 나은 건지, 얼마나 웃어야 가벼워 보이지 않고 성격이 좋아 보일지...... 예상했던 것처럼  자리는 신경이 쓰이고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런 탓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속에서 시계를 꺼냈다. 그렇게 초재기만 하고 있던 그때.

"엄마. 어때? 선희 맘에 들어?" 훅 들어오는 남편의 질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왜? 내가 맘에 안 든다고 하면 네가 결혼 안 할 거냐?"

'이게 무슨 의미인 거지? 맘에 안 드는데 네가 결혼한다니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얘 긴 건가? 아니지. 이미 며느리로 확정된 거고 그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뜻이 내포된 건가?'

어머님의 대답은 아리까리하게 뒤끝을 남겼다.




큰애를 임신하고 나는 몸이 정말 많이 불었었다.

갑자기 불어난 몸매에 괴리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출산일을 기다리고 있던 임신 막달에 시댁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푸짐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어머님의 소소한 집안일을 돕고 있는데 이모님이 방문했다.


이모님과 나는 눈을 맞추며 1분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으며 만날 일도 별로 없을뿐더러 가끔 뵐 때는 늘 불편하고 어색한 그런 사이였다. 목소리가 크, 말도 워낙 거침없이 , 입바른 소리도 잘해 고의가 아닌 말로 상처를 주기 도하는 그런 분이다.


그날도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이모님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내 귀에 들려왔다.

". 우리 조카가 인물이 아주 훤하잖아. 그에 비하면 며느리가 외모가 좀 딸리는 거 아니야?"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아시면서 저런 얘길 하시는 건가?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그래, 어디까지 씀하시나 들어보자.'

내가 빨래를 널고 있는 건지 건조대 그냥 얹고 있는 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젖은 빨래를 만지작 거리며 두 분의 대화에만 귀가 열려 있는데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런 소리하지 말어. 우리 며느리 인물이 보통 물인 줄 아니? 지금 몸이 불어서 그런 거지 우리 아들 인물은 댈 것도 아니여."

그 얘기를 듣자마자 흩어져있던 내 몸의 모든 기능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젖은 빨래를 야무지고 힘차게 털어대며 건조대 하나하나 예쁘고 가지런히 널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안 있어 빠진 출산용품을 좀 더 사기 위해 남편과 어머님과 함께 백화점엘 간 적이 있었.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유니폼 차림의 날씬한 아가씨가 안내를 해주었고 안내에 따라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나는 느닷없이 어머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전에 이모님과 어머님의 대화를 듣고 나서 어머님을 살짝 떠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머님. 저도 저렇게 날씬했었잖아요.  기억하시죠? 그리고 제가 저 아가씨보다 훨씬 이뻤죠. 그렇죠?"

당연히 수긍하는 답변을 바랐건만

"지금은 아니잖아. 네 몸을 좀 봐라 얘."

역시 어머님은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내 앞에선 수고했다 외에 그 어떤 칭찬도 하시는 분이 아니었. 늘 그렇게 칭찬에는 인색한 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들어 알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나의 한창 예쁠 때 모습을 기억하고는 어디 가서 늘 며느리가 예전에는 예뻤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겉으로는 차갑게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따뜻한, 앞에서는 무뚝뚝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마디를 던져서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만드는 어머님이야말로 요즘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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