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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l 21. 2022

어머님의 2대 독자 막내아들

 남편은 어머님의 소중한 2대 독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님에게 있어 남편은 그야말로 금지옥엽이었다. 동네 구멍가게에 남편을 위한 전용 장부를 만들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 거리며 돈걱정 없이 과자를 먹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겨울이면 남편이 좋아하는, 그 당시 꽤나 비쌌던 귤을 얼굴이 노래질 정도로 사 먹였다고 한다. 시누이들과도 대놓고 차별을 해가며 남편은 그렇게 어머님의 과잉보호 하에 자랐다.


 어머님은 남편의 외모가 영화배우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총각시절 얘길 하실 때면 어머님의 얼굴은 함박꽃처럼 환해진.

 "예전에 아범 총각시절에 말이여. 아범이 차이나카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동네에 들어서면 다들 어디서 영화배우가 왔냐고 그랬었어. 인물이 얼마나 좋았었는도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어머님 포 옛날 어르신들이 느끼는 잘생김의 기준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금지옥엽으로 자란 어머님의 귀한 2대 독자 막내아들과 내가 결혼을 했다.어머님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신혼집으로 들고 다. 커다란 보따리 속엔 남편의 어릴 적 사진들과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입었던 보이스카웃 단복까지 이것저것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는 어머님이 보따리를 들고 왔던 그날, 작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셋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서

 " 너 김치찌개 잘 끓였다. 밥 한 그릇 더 줄래?" 

 남편의 수저질이 잠시라도 끊기면 입맛이 달아나 버릴 것 같은 조바심에 나는 얼른 옆에 미리 퍼놓았던 밥을 남편 앞에 냉큼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어머님이 대뜸 화를 내는 거였다.

 "너는 남편한테 찬밥을 주니? 어서 가서 다시 뜨거운 밥 퍼서 줘라!"

 소리 내어 그게 뭐 어떠냐고 대꾸하진 못했어도 속으론 구시렁구시렁 하루 종일 혼잣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찬밥 좀 먹을 수도 있지. 그리고 방금 전에 퍼놓은 밥인데 왜 찬밥이라고 하시는 거지?'

 그게 화낼 일인가 의아했고 밥솥에서 바로 퍼서 먹는 밥 외엔 다 찬밥 취급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림이 서툴렀 나는 그 후로도 몇 번 어머님께 핀잔을 들었던 것 같다. 그저 살림이 많이 서툰 탓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신부수업을 듣고 온 것도 아니었고, 친정에서 딱히 살림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던 나에게 살림 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중 가장 난이도 상을 찍는 집안일 중에 하나는 바로 다림질이었다. 특히 남편의 와이셔츠 다림질이 그랬다.

앞판을 다리면 뒤판이 구겨지고, 뒤판을 다리면 앞판이 다시 구겨지고, 집중해서 신중을 기해도 왜 와이셔츠 팔에 칼주름은 늘 두 줄이 생기는 건지......

 "넌 와이셔츠가 그게 다니?"

 어머님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남편을 향해 말했지만 다림질을 한건 나였기에 당연히 그 꾸중은 남편을 비껴 나 옆에 있던 내게로 비수처럼 꽂혀버렸다. 역시 나는 뒤돌아서 혼잣말을 해댔다.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겉에 양복 입으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깨끗하게 빨았으면 된 거지 뭐.'

 사실 깨끗하게 빨았는지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 나이 40에 나는 남편과 닮은 3대 독자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 내 아들이라 이쁜 건지, 아이 자체가 이쁘게 태어난 건지 구분도 안될 만큼 나를 홀딱 빠지게 만드는 아들. 어머님의 언어를 빌려서 기하자면 정말 징그럽게도 예쁘다. 아들이 3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애기야'라고 부를 만큼 내 눈엔 아기 같고,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요즘은 가끔 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장가보내지?"




 어머님은 이제 나에게 모든 걸  맡기셨다고 생각하는지 남편에게 찬밥을 주든 더운밥을 주든 신경 쓰지 듯하다. 남편이 다림질 안되어있는 옷을 입었다고 언짢아하시지도 않는다. 이젠 더 이상 남편이 영화배우처럼 잘생겼었단 말씀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원빈이 나오는 광고를 보더니

 "오메. 쟤 왜 저렇게 잘 생겼다니?"

 그때야 비로소 어머님미모를 제대로 줄 아는 안목있구 싶었다.


 어디다 갖다 놔도 반짝반짝 빛보이는 아들에게 나는 식감이 좋지 않고 딱딱한 찬밥은 먹이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잘 보이게 하고 싶어 옷 입히는 것도 꽤나 신경 쓰면서 키우고 있다. 내 옷은 안 사 입어도 아들 옷은 나름 비싼 걸로 사 입히려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 늘 새로 한 밥을 정성 스레 지어먹이면서 키운 3대 독자 아들에게 누군가 찬밥을 먹이고, 다림질이 제대로 안된 옷을 입게 한다면 마음이 좋을 리 만무할 것 같다. 아니 억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게 며느리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며느리고 뭐고 따질 것 없이 그냥 미울 것 같다.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울 것 같다.


 그땐 내가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서툴렀던 처럼 어머님도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을 손에서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되어 마음의 준비가 미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신혼 때의 핀잔도 단지 내가 살림이 서툴러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날 보따리를 들고 오셨던 어머님의 마음이 어떤 거였는지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도 먼 훗날 아들을 누군가에게 일임할 때 그 서운함과 걱정은 어머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이제야 그때의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님의 그 모든 핀잔과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남편의 생일상 앞에서 어머님과 영상통화를 했다.어머님은 "그래. 수고했다. 고맙다."라는 말한다. 내 남편의 생일상을 내가 차려주는 게 당연한 건데 어머님은 굳이 고맙다는 말다. 하지만 이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어머님의 2대 독자 막내아들에게 어머님 대신으로 생일상을 차려준 거니 고마울 수도 있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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