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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Jun 06. 2022

시어머니의 김밥은 달다

시어머의 김밥엔 특별한 맛이 있다.

평범하지만 남기지 않고 꼬다리까지 다 먹게 되는 맛.

다른 김밥을 먹지 못하게 만드는 맛.


남편과 연애시절에 둘 이 서울랜드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온갖 재료들을 넣고 정성스럽게 김밥을 준비했고  김밥을 먹어본 남편은

"와~ 이거 네가 쌌어? 정말 맛있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리엑션으로 반응해주었고 나는 속으로 '재료를 10가지 가까이 넣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 하고 으쓱했었다.

그렇게 리엑션이 좋았던 남편, 남편을 위해 김밥을 정성스럽게 쌌던 나. 그렇게 우리 둘은 결혼을 약속했고, 달달한 시간을 지나 웨딩 촬영하는 날이 왔다.

그날 점심을 먹을 틈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김밥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힘들 테니 고생 말라며 극구 나를 말리고 본인이 김밥을 준비해왔다.

그 김밥은 며느리 배고플까 봐 정성스럽게 다는 말씀함께 시어머니가 준비해 보내신 김밥이었다.

같이들 나눠먹으라며 밀폐용기도 아닌 찬합에 김밥을 싸주신 어머니. 열어보니 거의 20 줄 가까이되는 김밥에  총각김치가 가득 들어있었다.

김밥은 뭐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재료는 단무지, 계란, 당근, 맛살, 햄, 시금치...

식욕을 자극하는 비주얼도 아니었기에

별 기대 없이 김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정말 혼자서 4줄은 먹은 것 같다.

6가지 전형적인 재료들이 서로 너무 잘 어울렸고 그리고 어머님의 김밥에서는 특이하게

마지막에 살짝 달큼한 맛이 느껴졌다.

그 달큼함이 사라질까 봐 입에 또 넣게 되고, 또 넣게 되고...

그리고 중간중간 베어 무는 총각김치는 짜장면과 단무지, 치킨과 치킨무, 피자와 피클보다 

더 절묘한 콜라보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시어머님표 김밥의 비법을 전수받게 되었고 그게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특별하거나 노력이 많이 어가는 비법은 아니었다.

관건은 모든 재료의 수분기를 쫙 빼는 데 있었고 그러기 위해  단무지까지 프라이팬에  볶는다는 것과  그리고 특이하게 밥에 식초를 살짝 넣는다는 게 였다. 어마 무시한 비법은  아니지만 작은 차이는 신기하게도 김밥의 맛을 뒤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시댁에서는 꼭 무슨 날이 아니어도 김밥을 싸는 일이 많았고 그날은 점심과 저녁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점심엔 김밥을 싸서 뜨끈할 때 바로 먹고,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계란물을 둘러 프라이팬에 구워서 저녁으로 먹고...


언젠가는 형님댁에 모여서 시어머니표 김밥을 싸서 먹고 있는데 믿어지지 않지만 형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올케. 그거 알아? 내 동생이 말이야. 남이 싼 김밥은 입에도 안 댄다. 오직 엄마가 싼 김밥만 먹어.

학교 다닐 때 걔가 인기가 많았거든. 소풍만 갔다 오면 가방에서 김밥이 몇 통씩 나오고 그랬어. 그게 다 여학생들이 싸다 준 김밥이었거든.

근데 걔는 하나도 안 먹고 그냥 다 가져와서 내가 다 먹고 그랬잖아. "


갑자기 연애시절 서울랜드 김밥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남편의 리엑션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그날 김밥을 먹은 게 아니라 김밥을 먹어준 거였다는 것을.

그제야 아!! 그래서 웨딩촬영 날도 극구 자기가 김밥을 싸오겠다고 했던 거였나 싶었다.


연애시절엔 솜씨가 없으니 오직 재료만 많이 넣고 만들면 맛있을 줄 알았고 그렇게 만든 김밥이 남편의 입맛에 맞았을 리 만무했다.

어머님의 달큼한 김밥 외엔 남이 싼 김밥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그 까다로운 남편이 그걸 먹어주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 사람이 내가 그렇게 좋았나?'


이제 남편은 내가 싼 김밥 외에 다른 김밥은 먹지 않는다.

하지만 단서조항이 하나 있다. 꼭 시어머니의 총각김치와 함께여야 한다는 것.

양념이 어찌나 맛이 있는지 무를 익히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익지 않은 무의 아삭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시어머니의 총각김치.

그런데 난 그 비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직까지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다.

게으름 좀 실컷 더 피우다가 한 10년쯤 뒤에 본격적으로 필기도구 준비해서 시어머니께 비법 전수받으러 가볼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내가 비법을 전수받으러 가는 그날까지도  총각김치를 향한 어머니의 열정과, 총각김치를  몇 통씩 담그실 수 있는 어머니의 근력과, 김밥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총각김치의 그 맛까지 모두가 한결같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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