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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Dec 04. 2023

한낮의 박쥐

-bat

오늘 엄청 뜨거웠어요. 한낮 온도 37도, 그늘 안은 시원한데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역시 선샤인 스테이트로구나 싶은 이 열기.


아버지, 햇볕엔 아버지의 흰 발목이 생각나요. 우리를 위해 한낮 땡볕에 일하시느라 까맣게 타버린 아버지 얼굴 그리고 팔다리. 올려진 바짓단 아래로 아버지 발목의 흰 피부가 드러났을 때 웃기기보다는 마음이 짜르르했어요. 선크림 좀 바르세요!라고 잔소리하는 척했지만 아버지께 무언가 미안했어요.


얼마나 많은 낮 아버지는 머리 위에 태양을 이고 다니셨을까.


이 뜨거운 낮에 전깃줄에 거꾸로 매달린 저것, 분명 박쥐였어요. 야, 이거 아빠한테 또 보내야지 하면서 황급히 차를 세우고 카메라 줌을 당겨봅니다. 거꾸로 매달려도 눈 데굴데굴 보이는데 꼼짝도 않고 매달려 있어요. 새삼 어지럽겠다 너는 싶다가도 네 발로 줄을 꼭 쥔 채 시커멓게 달린 날개가 만만해 보이지 않아요. 새라고 하기엔 무언가 괴물 같기도 하고 흡혈하는 동물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데 잠깐, 지금 이글거리는 한낮인데요.


동굴에서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너는, 어둠을 좋아하지 않니?


배트맨 영화 덕분에 그나마 이미지가 개선되었지 사실 박쥐는 음침하고 컴컴하기 마련이에요. 제 몸을 감싼 그 날개 속에 얼굴을 묻고 어둠의 말을 내뱉고 있는 것 같은 모습. 저 날개 속에는 찍찍거리는 소리와 기다란 이빨 그리고 오래된 전설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 네가 한낮의 전깃줄이라니.


역시나 박쥐는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였어요.


새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기도 저기도 이름도 모를 날것들은 일단 찍어 두곤 했는데 새와 같이 나는 것이 맞지만 포유류였네요. 맞아요, 언젠가 아빠가 저건 새는 아니야-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동물이라면 다 좋아하는 아빠는 그 박쥐마저도 남달리 들여다보셨을 거예요. 극지방이 아니면 어디든 산다는 박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했어요. 그다지 동굴에 또는 폐광에 갈 일은 없었으니까요. 여기 호주에서는 동네에도 관광지 사람 많은 곳에도 박쥐들이 마구마구 몰려들어 있어요.


양팔의 날개로 몸을 감싸고 거꾸로 선 그들은 장관이에요.


거꾸로 매달려 모두가 함께 철봉을 했어요. 우리 집 앞에는 학교가 있고 저녁 먹고 한 바퀴씩 걷고 돌다가 철봉에 하나 두울 하고 올라서면 아빠가 잡아주시곤 했죠. 우리 가족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그 모습 누가 찍었더라면 그 또한 장관이었을 거예요. 떠올려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이쁠 것도 없었던 그 평범한 매일과 그 운동장이 아주 정답게 남아 있어요. 네, 아빠 걱정 마세요. 우리는 그때 행복했어요. 시끄러운 학교 앞으로 이사 왔다고 이전 집보다 작다고 미안하다 하셨지만 그 시간도 운동장과 치킨과 문방구 구경으로 실컷 즐기면서 남게 되었답니다. 이제 박쥐를 보면 무섭다고 도망가지 말고 거꾸로의 날들을 생각할래요.


박쥐의 몸 안도 밖도 눈도 갈퀴 같은 저 손도 발목도 온통 까맣지만 그래서 두 날개를 한껏 쳐들어도 검을 뿐이지만 말이죠. 아버지의 두 손과 두 발은 까맣게 탄 곳과 하나도 타지 않은 곳의 경계가 분명하겠죠. 저는 그 경계가, 사라지지 않는 그 선이 많이 미안해요 아빠. 그렇게 오랜 시간 가족만을 위해 일하셨던 아빠, 이제는 해변가의 모래밭도 즐기시고 같이 볕을 쬐며 아이스커피도 한 잔 하기로 해요. 네, 아버지는 설탕 많이 달달한 스타일로- 그러나 선크림은 꼭 바르시고요. 편히 쉬는 내일을 불안해하지 않기로 해요.


-땡볕마다 아버지의 발목을 생각하는 딸.



[1편 까마귀]에 대한 아버지의 코멘트

지난주 까마귀 글을 올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링크를 보내 드렸어요. 어느 독자보다도 제겐 떨리더라고요 ^^; 아버지가 주신 설레는 답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검고 못생긴 흉조라 말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까마귀는 햇볕을 받을 때 아주 짙은 군청색의 아름다운 새이며 해충을 잡아먹는 길조이다. 그리고 어미가 아기을 사육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먹이를 물어다 부모에게 주고, 머리가 굉장히 영리한 똑똑한 새이며 아이큐가 어떤 동물보다 높아 하는 행동까지 여유가 있는 새이다. 일본에서는 길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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