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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Nov 27. 2023

까마귀 날자

- 크로우 Crow

아버지, 오늘은 뭔가 뒤숭숭해요.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그 꽃상여를 따라서 본 까마귀 때문인지도 몰라요. 아이고아이고 종은 치고 노래는 잇고 상여는 온통 꽃으로 장식했는데 모두들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었어요. 여덟 살이던 저는 그냥 따라서 걸어갈 뿐이었는데 머리 위로 시커먼 새가 기억나요. 그날의 하늘은 그래서 제게 흐려요. 분명 맑은 날이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먹구름으로 남아 있거든요. 이것은 진짜인지 생각이 낳은 꼬리인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장례식 하면 까마귀가 떠올라요.



가장 겁 없는 건 아마도 까마귀일 거예요.


까마귀는 날아야 하는데, 그래야 배가 떨어질 텐데 오늘도 저 녀석은 걸어가고 있어요. 남의 집 마당을 걷고 사람들 보행로를 걷고 지붕을 걷고 주차장을 걷고 숲길로 제 것인 양 걸어가고 있어요. 날아야 일이 날 텐데 걸어가다니.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날기는커녕 자기 보폭으로 그냥 걸어가요. 올 테면 와보라지, 뭐 그런 표정이에요. 나는 여기 있고 너는 찍든 말든 하면서요. 그렇게 따라서 걸었는데 제 걸음만 조급할 뿐이지 까마귀는 급하지가 않아요. 그런 저 새도 어떤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사람이 죽었다. 까마귀들이 크게 울며 하늘을 돈다.


이것이 죽음의 장면이잖아요. 보통 저런 장면에선 으레 까마귀가 날아가곤 하니 저 새가 가진 기운은 무얼까 하다가도 좀 안쓰럽기도 해요. 세상 저렇게 존재만으로 재수가 없다고 말을 한다면 그 새의 입장에선 많이 억울할 것 같아요. 배가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아마도 그래서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지나가든 건너 보든 멀리 날아가는 것만 같아도 나도 모르게 오늘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이 까마귀라는 녀석이



이렇게 윤기가 흐를 수가 없어요.


머리부터 반지지르 한 것이 또 저렇게 여유로와요. 제법 큰 수박보다도 크고 아장아장하는 돌배기만 하려나 싶은 게 몸집도 꽤 큰 편이에요. 이토록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맞아요 몸도 눈도 까만 것이. 까마귀 오烏가 그래서 어릴 적 아주 재미있었어요. 새 조鳥에서 새의 눈알이 빠진 게 아니라 눈도 몸도 까마니 눈인지 몸인지 알 수 없다며 한 획을 빼서 글자를 만든 사람의 생각말이죠. 전깃줄에 앉아 있으면 그림자가 하늘을 가릴 것 같아요. 몸집도 그림자도 까만 것이 위가 새인지 아래가 새인지 검은 저 새는,



그러고 보니 혼자 우두커니


다른 새들이 지지배배 같이 쫄랑쫄랑 다니는 모습들에 비하면 혼자가 많아요. 안 그래도 까악 까악 울음소리가 반갑기보다는 귀가 아픈데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은, 검은 눈을 대록대록 굴리며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이런 검은 몸에 젖은 듯 검은 눈동자라니. 많이 쓸쓸해 보였거든요. 그러나 뒷마당 큰 나무 가지에 작은 새가 날아왔는데 저리 가라고 까악 하고 쫓아내는 모습이라니. 네 스스로 외로운 게 맞아요. 



우리에게는 너무나 가까운 새


까마귀 몸집처럼 머리도 제법 크다 했더니 새 중에서는 똑똑한 편이라면서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오래도록 키우시던 구관조와도 검은 몸이 비슷해 보여요. 물론 구관조는 참새목의 찌르레기과 까마귀는 참새목의 까마귀과, 역시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네요. 검고 똑똑한 새들의 눈동자가 더 검고 영롱해 보이기도 해요. 그러나 큰 몸집만큼 커다란 검은 덩어리로 앉은 저 녀석, 흐린 하늘 아래라면 자못 섬칫하겠어요. 그러나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동네에서도 이렇게 또한 익숙한 새가 있나 싶어요. 까악 까악 소리를 내는 까마귀라는 이름처럼요.



까마귀를 보면서 버리는 것


호주에서는 까마귀를 그냥 까치 앵무새와 같은 새로 보더라고요. 운이 재수가 없다고 하지 않아요. 영어 Crow도 찾아보면 기쁨의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나 마구 자랑하는 것을 의미하더라고요. 아마 그 울음소리가 워낙 커서 그렇겠죠? 생각보다 똑똑하고 늘진한 걸음이 여유롭고 그러나 혼자를 좋아하는 저 까마귀를 다시 보곤 해요. 유독 싫어하고 유독 두려워하는 그런 것들이 무엇이 있었나 하고요. 그렇게 마냥 싫다고 고개 돌리지 않으려고요. 다시금 가만히 들여다보려고요. 그러나 저 녀석, 제 차에 또 똥을 싸고 가버렸어요. 너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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