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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Dec 11. 2023

무엇이든 따오기

ibis

내 햄버거야 가까이 오지 말라고!


아이는 긴 부리를 내밀며 다가오는 새 때문에 많이 놀란 표정이었어요. 자기 허리를 넘길 만큼 작지 않은 새가 시커멓고 긴 부리를 들이대며 다가오니 애는 물론 어른도 흠칫 놀라 일어나기 바빴죠. 아니 저건 무슨 새인데 저렇게 겁이 없어. 풀숲도 놀이터도 아닌 브리즈번 시내 한가운데 퀸스트리트의 보도블록과 벤치 위를 사람처럼 다니는 저 새들, 문득 도시 곳곳을 후두둑 날아들던 비둘기가 떠올랐어요. 좀 더 크고 길지만 말이죠.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그 새는 커다란 몸통에 까맣고 긴 머리와 부리가 여간 징그럽지 않아서 저 징그러운 새 또 있네, 여기도 저기도 있네 하고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주로 널따란 주차장이나 전깃줄에는 까마귀가 많이 보였다면 앞마당이나 동네 길가에 까치가 많았고 이 새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심에 많았어요. 마치 자기가 그 길의 주인인 듯 브리즈번 시내 한가운데를 유유히 걷고 있는 모습이란, 이제 막 브리즈번에 온 우리보다도 길을 더 잘 아는 것 같았죠. 맥도널드나 헝그리잭(우리나라의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점 앞에는 반드시 있었어요. 어슬렁거리며 무언가 먹을 것을 채갈 듯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 사람이고요. 우리나라 비둘기는 저쪽에서 떨어진 걸 먹거나 사람이 오면 도망가기 바쁜데 이 거만한 몸짓이라니. 못생긴 너는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무엇이든 있구나 따오기 그러면서 그냥 싫었어요.


아빠 아빠 저 새 뭐예요?
따오기야


호주에 오신 아부지께 기다렸다는 듯이 여쭤봤죠. 저게 따오기...? 내가 아는 따오기는 따옥 따옥 처량한 소리 그 따오기가 아니던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슬픈 느낌의 동요 속 그 따오기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니. 사실 모르고 있었어요. 따오기라는 노래가 워낙 각인되어 따옥 따옥 울 것만 같지 어떻게 생긴 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아버지 입에서 따오기라는 이름이 나오니 보기 싫었던 새에게서 마음이 조금 열리고 있었어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따오기] 윤극영 작곡 한정동 작사 동요


따오기를 찾아보면 당연한 듯 따오기 동요가 따라와요. 푸른 하늘 은하수-의 윤극영 작곡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네요. '반달'도 그렇지만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의 '고드름'도 이 따옥 따옥 '따오기' 또한 윤극영이 작사나 작곡을 한 노래이니 우리의 어린 시절의 리듬과 가락을 오래도록 윤극영선생님이 남겨주셨구나 싶어요.

아버지도 저 노래 잘 아시죠? 저야 초등학교에서 배웠지 싶지만 아버지에겐 익숙한 노래 익숙한 새일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따오기가 1960년대까지 동네에 흔할 정도로 많았고 1970년대 말 보였던 이후로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니 저야 생김새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면 아버지는 크고 작고 우는 소리까지  잘 아실 것 같아요.


노래처럼 따옥 따옥 운다는 따오기의 울음소리가 동네 곳곳에 울려 퍼지는 모습을 떠올려요. "어머니 가시"고 "아버지"도 가신(2절) 지금, 홀로 남는 아이의 마음은 따오기예요. 그렇게 "처량"하게 울고 있는 자신을 따오기의 울음소리로 구슬프게 말하려는 사람의 심정. 1925년에 발표되었다는 이 노래는 애달픈 민족의 감정이 담겨있어 일제가 금지시켰다가 광복 이후 다시 불렀다고 해요. 나라를 빼앗겼던 이들은 그 노래를 입안에 머금고 서글픔을 참았으리라 싶어요. 나라를 찾은 다음에는 오래 묵은 슬픔을 따오기의 울음소리에 날려 버렸겠죠? 그렇게 민족의 마음을 담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 많았던 새가 멸종이라니 마음이 씁쓸해요.


그 사라진 새가 여기는 이렇게 많아요. 아빠, 호주에서 따오기의 별명이 쓰레기통새, 쓰레기통 치킨이래요. 아빠와 동네와 숲 속을 걸을 때에도 녀석들 반갑게 또 따오기네- 했지만 보셨죠? 여기저기 사람들이 떨어뜨리는 음식 먹으려고 자꾸만 다가오는 거. 시내에도 바닷가에도 무언가 먹을 거 냄새가 난다 하면 모이는 녀석들이 자꾸만 날아오는 파리처럼 귀찮더니, 따오기 노래를 다시금 듣고 보니까 괜히 안쓰러워요. 어떤 녀석은 우리나라 비둘기처럼 다리도 굽고 절뚝거려요. 이들의 서식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런 것들이 많겠죠? 아버지 자라실 적에 가득했는데 사라지고 없어지고 안 보이고 그리운 것들이요. 전쟁 이후 헐벗은 땅을 보셨을 아버지, 그 허허벌판에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순식간에 잘 살게 되었는데. 지금 저 밖의 풀벌레 소리는 제가 살던 서울에서 언제 들어보았을까요? 호주의 많은 것들보다 우리의 많은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땅 넓고 동물 천지고 어디든 동물과 환경이 우선이라 그냥 그대로 두는 이 나라, 새들이 벌레를 먹으며 마당을 누비도록 그냥 두는 이 모습이 부러워요. 저도 따오기를, 여기 희고 검은 호주 따오기 말고 붉은 볏을  가졌다는 그 우리 시골 마을 산골짝의 따오기를 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도 천덕꾸러기 같은 모습의 따오기는 정말 제대로 살아갈 곳, 살아갈 방법을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요.


같은 지구이지만 각각의 계절과 사람이 다르니 식물과 동물도 물론 달라요. 사라진 따오기의 이유에 살 곳을 잃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순식간에 개체수가 줄어 버렸다는 구절에 잠시 머뭇거렸어요. 환경이란 늘 우리가 사는 지금이어서 인식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한 번씩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어요. 도시에서만 후다다닥 살아가던 제가 포천 아부지 집 마당에 가서야 자연이 좋구나 하는 것처럼 말이죠. 다행히 따오기의 복원을 위해 나라 간 협력하고 창녕군에서 따오기 센터를 세워 애쓰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우포늪의 창녕에 아버지와 함께 가서 그 울음소리를 직접 한번 같이 들어봐야겠어요.

 

제가 위에 그냥 싫었다고 했죠. 싫어-라는 말을 안 하면 안 될까? 제가 저의 두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에요. 일단 싫어-라고 하지 말고 돌려 말하면 어떨까-라고 제가 말하면서 저는 까닭도 없이 따오기를 싫어했네요. 그러고 보면 아버지 어머니는 싫어라는 말과 마음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다 받아주시는 분들이구나 싶어요. 긴 부리의 저 뾰족한 새는 물론 길가의 징그러운 이구아나 지저분한 길고양이 등등 저는 으-하는 것들을 두 분은 언제나 이리 오렴 하고 따스하게 대해주시네요. 동물에 대한 따뜻함을 가진 두 분이 제게도 따스한 부모님이셨구나 마음을 담아보는, 여기는 여름 풀벌레가 우는 호주의 밤입니다.


* 따오기는 ibis이며 저어새(spoonbill 숟가락처럼 넓은 부리의 새)과에 속한다. 호주의 따오기는 Australian white ibis(호주 흰 따오기)라고 불리며 몸통은 희고 머리와 부리와 다리가 까맣다. 한국의 따오기는 crested ibis(볏이 있는 따오기)인데 이름처럼 둘 다 몸은 흰색이지만 한국의 따오기는 얼굴과 부리 끝, 깃털 일부에 붉은색이 보인다. 한국의 따오기는 아시아의 따오기 또는 최초 보고자인 일본의 영향으로 일본 따오기로 불리기도 한다. 복원사업과 야생방사를 시도한 창녕에서 촬영한 따오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본다.


   호주 따오기

    Australian white ibis




                                    한국 따오기 

                                           crested i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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