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공정하지 않은 1점
더운 여름은 더욱 깊어 갔고 만석이에게도 그 시간이 흘러 드디어 수학 경시대회 날이 되었다.
채점 결과는 99점.
백 점을 못 만들게 한 그 1점이 아쉬웠지만 더 잘 본 아이는 없었으니 어쨌든 일등이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수학 경시대회 결과와 대표 학생을 발표했다.
“…은철이가 대표 학생으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아, 만석이는 장학금을 받는 것으로 됐고. 그럼, 이상.”
‘은철이가 대표라고? 그럴 리 없어. ’
귀를 의심했다. 떠들썩한 교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만년 2등이던 은철이의 이번 시험점수는 98점이었다. 그 아이가 학교 대표로 나간다니, 무슨 일일까?
친구들이 놀자는 것도 물리치고 방구석에서 문제집을 풀었던 시간, 그런 자신을 응원해 주었던 누나, 공사장에서 보았던 형의 땀이 스쳐 지나갔다. 시험도 끝났으니 이제는 놀자고 매달리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로 들어갔다. 손은 식은땀으로 젖었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선생님, 지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일을 보시던 선생님이 돌아보았다.
“어어, 그래. 만석아. 무슨 일이냐?”
“채점했을 때 지는 99점이었고 은철이는 98점이었는디요…”
“으흠…”
“왜 지가 대표 학생이 안 된 것인가… 그게 궁금해서요.”
선생님은 안경을 벗으시더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깊은숨을 내쉬던 얼굴 위로 난감한 표정이 지나갔다.
“만석아, 이건 선생님들과 다 회의한 결과야. 시험은 니가 더 잘 보았지. 하지만 대표 학생이 되려면 그것 말고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단다.”
“그것이 뭣이단가요?”
“단순히 머리 좋은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란다. 노력이 필요해.”
“선생님, 저도 이번에는 진짜로 노력했어요. 진짜로요. 앞으로도 할 자신 있고요.”
“경시대회는 중학생도 못 풀만큼 어려운 문제들이 나와. 학교 공부만으로는 어렵다는 거지. 노력도 필요하고 도움도 필요해. 근데 너는 이것을 도와줄 사람이 있니?”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인디 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지…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디요. ”
“잘 들어, 만석아. 이런 말까지 하긴 그렇다만 은철이는 따로 과외도 받으면서 엄청나게 노력했더라. 학교 처지에선 상을 탈 만한 학생을 내보내야겠지. 너의 그 일 점으로 이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선생님들도 고민을 많이 했단다.”
“…”
“이쯤이면 알아들었을 것 같은데? 너는 영특한 아이니까.”
만석이는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대신 선생님들과 협의해서 장학금은 점수순으로 주기로 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선생님은 벽이었다. 그 무엇으로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하고 거대한 벽. 실력이라는 단어 앞에서 늘 자신감이 넘쳤던 만석이의 세상이 그 앞에서 힘없이 허물어져 내렸다.
교문 앞에서 용남이와 봉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고개를 숙이고 애먼 돌멩이만 차고 있는 만석이가 걱정됐다.
“만석아, 뭔 일이여? 채점이 잘못됐다디?”
“아니여…”
“그라면 왜 대표가 안 된 것이여?”
“… 백 점을 맞았어도 그랬을까? 우리 집이 잘살았어도 그랬을까? 하… 은철이는 즈그 엄마가 자모 회장이잖애. 과외도 받고 있다고 하고, 나는 안 되는 건갑지…”
“야! 뭔 소리여? 시험을 더 잘 본 사람은 넌디! ”
“그냥 잊을란다. 느그들도 인제 내 앞에서 시험 야그 꺼내지 말어라.”
노력이란 것을 처음 해 본 아이에게 주어진 결과가 너무 썼다. 친구들은 더 이상 만석이를 붙잡지 못하고 축 늘어진 어깨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만석이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방에 들어가 벌러덩 누웠다.
“만석아, 학교 다녀왔냐이. 오늘 결과 나왔지야?”
“…”
아버지와 마실을 다녀온 누나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저 얼굴을 웃음 짓게 하고 싶었는데… 목에 뭔가가 턱, 하고 걸린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따― 괜히 긴장되게 하지 말고. 뭔 그라고 뜸을 들인다냐.?”
“…못했어…”
“이번에는 공부를 그라고 했는디도 못했다고야?”
“…누나, 나 피곤해서 잠 좀 잘라네. ”
“그…그랴. 어려웠는갑네. 속상해하지 말고. 다음에 잘하믄 된께. 알았지야?”
그 일은 가족들에게만은 비밀이어야 했다. 엄니, 누나, 형아가 알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가 더 커질 것 같았다.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지나가고 싶었다. 정순이는 이렇게까지 속상해할 아이가 아닌데 싶으면서도 힘없이 시무룩한 동생의 모습이 계속 걸렸다. 열심히 했던 만큼 실망이 컸던 걸까, 위로를 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한편, 집에 오는 길에 용남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났다. 머리 하나는 제대로 타고나서 늘 부러웠던 친구 만석이가 이번에는 놀지도 않고 주야장천 공부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덕분에 저도 놀고 싶은 것 꾹 참고 체질에도 안 맞는 수학 문제를 몇 개나 풀었는데… 점수도 더 높았으니 1등이고 대표 학생이고 그것은 당연히 만석이 것이었다. 일등과 대표 학생이 자모 회장과 부자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생각할수록 부글부글 끓어올라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종복이 아저씨한테 가봐야겄어.’
연순이 누나한테 죽고 못 사는 그 아저씨라면 뚜렷한 수가 나올지도 몰랐다.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빠져나와 아저씨 집으로 갔다. 아저씨는 평상에 앉아 연순이 누나와 함께 수박을 먹고 있었다.
“아저씨한테 지가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저 둘을 볼 때마다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야 할 말을 잊지 않았다. 종복이는 꽤 진지한 표정의 이웃집 아이를 보고선 호기심이 일었다. 연순이가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방으로 들어가고 둘만 남게 되자 아이는 만석이의 그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만석이가 일 등을 했는디 그것을 다른 애가 가로챘다는 것이여?”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가슴은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학교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야 그 불을 억누를 수 있었다.
늘 논일이나 밭일을 하러 다니느라 거적때기만 입고 다니던 종복이가 오랜만에 양복으로 차려입었다. 숱 없는 머리를 빗어 넘기고 기름칠도 하고선 구두도 닦아 신었다. 해야 할 일이 천지인데 아침부터 어디를 나가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귓등으로 넘겼다. 연순이에게는 읍내에 볼일이 있다고만 하고 집을 나섰다. 절룩이는 다리로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두 눈은 비장함으로 이글거렸다.
“안녕하신가요. 저, 만석이 매형 되는 사람입니다.”
교장실로 들어선 종복이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셨을까요?”
“제 처남이 공부 하나는 기갈나게 하는디요, 이번 수학 경시대회에서도 일 등을 했다고 하고 만요. 그것 알고 계시지라?”
“아… 네, 참 영특한 학생이지요.”
“그런디도 대표로 뽑히지 않았더라고요?”
“아무래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시험이라서… 학교 처지에선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추천하는 게 맞는데… 일 점이라는 그 점수가…”
교장선생님은 중언부언하며 말끝을 흐렸다.
“준비고 노력이고, 좌우지간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그 말씀이지라?”
“아, 네? 네네… 뭐 그런 말도 되긴 합니다만,…”
“그거라면 제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는 거, 그거 말씀 드릴라고 왔습니다. 거― 실력대로 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겄습니까? 일 점이 높은 것도 높은 거니께 만석이가 대표로 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니겄나 하는디요. 이렇게 할 거였으면 애당초 시험을 왜 본 건가 싶고요.”
“그… 그렇습니까? 그것은 다시 선생님들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종복이의 조리 있고도 강단 있는 말에 교장선생님은 진땀이 났다.
“그라고 제가 이런 말까지 드리긴 쪼까 그러긴 한디요, 제가 가진 것이 돈밖에 없어서라. 필요한 것은 뭣이든 충분히 해줄 수 있으니께요. 만석이 한티도 든든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면 좋겄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다시 잘 협의해 보겠습니다. ”
종복이는 다시 정중하게 인사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연순이와 그 가족들이 무시당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그 마음이 더욱더 뜨거워졌다.
다음 날 만석이가 대표 학생으로 추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억울했기에 잊고 싶었던 만석이는 이 소식이 기쁘면서도 결과가 이렇게 뒤집힐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야, 야! 만석아, 너 그거 들었냐?”
눈이 휘둥그레져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봉식이가 숨도 못 고르고 말했다.
“교장선생이 은철이를 대표로 내보내라고 해서 우리 선생님이 대판 하셨다드라? 그래서 시말선가 머신가도 쓰셨다던디…”
“뭐라고?”
만석이가 느꼈던 벽. 거대하고 견고한 그것을 선생님이 먼저 부딪쳤고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이 가슴을 쿵, 때렸다.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근디도 그렇게 된 거를 어제 느그 매형이 학교 와서 뒤집어븐 거제. 매형 온 거는 알고 있제?”
억울했던 기억들, 꾹 눌러 참았던 순간들이 매형의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뒤집혔다니. 가슴에서 뜨거움이 다시 치밀었다. 뒷배가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만석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져본 것이었다.
‘올 여름방학은 진짜 작정하고 해볼 테니께’
지금까지는 무엇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분명해졌다. 더는 아무도 자신을 얕보지 않게 하겠다는 것. 가을에 있을 전라남도 경시대회에서 만석이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곧 죽을라고 하드만은 오늘은 또 뭔 일이다냐?’
학교가 파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만석이를 참 별나다며 보는 정순이었다.
만석이를 보니 정순이는 ‘야학’이 생각나 또 심란해졌다. 어제도 미자가 정순이 집에 찾아와 야학에 같이 가자는 것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물렸다. 수군거릴 아이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마음이 안 났다. 또 찬하 선생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생각하면 아득해졌다.
아무래도 내일은 일찍 서둘러 언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