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이었다. 애초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것이 상구의 철칙이었다.
“하, 이 새끼. 오냐오냐 봐주니까 말이 많네. 야, 너 따라 나와.”
상구는 창석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거칠게 끌어냈다. 포승줄에 묶인 죄수처럼 질질 끌려간 곳은 학교 뒤 소각장이었다. 그곳은 비명도 연기에 묻혀버릴, 상구만의 처형 장소였다. 자비 없는 발길질이 창석의 무력한 가슴팍으로 사정없이 날아왔다.
“진짜, 이게 최선이야...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창석이 흙바닥을 뒹굴며 제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
“이 새끼가 하라면 할 것이지, 어디서 눈을 똑바로 떠!”
바닥에 침을 카악 내뱉은 상구가 다시 창석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만석아, 만석아! 큰일 났다! 큰일 났단 말이다!”
자리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던 만석에게 다급하게 달려온 건 용남이었다.
“넌 또 뭔 큰일이냐? 별일 아니기만 해봐라.”
만석은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느… 느그 형이, 지금 처맞고 있다고야!”
그제야 만석이 눈을 부릅뜨며 용남을 쳐다봤다.
“우리 형이? 누구한테!”
“지나가고 있는디… 그림 잘 그리는 형이 처맞고 있다고 해서… 그림 하면 창석이, 느그 형 밖에 없잖애! 느그 형이란께!”
용남이는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그 말을 듣자, 하굣길에 형을 에워쌌던 무리가 떠올랐다.
“거기가 어디여? 어디냐고!”
소각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만석은 청소함에서 빗자루 하나를 낚아채 뛰쳐나갔다. 소각장이 가까워질수록 형의 비명이 가슴을 후벼팠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고 빗자루를 쥔 손바닥에서 둥, 둥, 심장 소리가 울렸다.
상구가 쓰러진 창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치켜든 순간이었다. 둔탁한 통증이 상구의 등 위로 떨어졌다.
“으윽!”
상구가 고개를 돌리자, 어린놈이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움켜쥔 빗자루를 놓지 않고 서 있었다.
“우리 형… 우리 형 그만 괴롭혀!”
악에 받친 목소리에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상구는 가볍게 몸을 풀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빙 돌렸다. 상구의 눈빛이 무자비하게 이글거렸다.
“이 새끼들, 반란은 애초에 싹을….”
바람을 가르는 주먹이었다. 상구의 무지막지한 주먹질에 만석은 맥도 못 추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우… 우리 형, 그만 괴롭히라고… 가…만 안 둬!”
쓰러진 채로도 만석은 형을 가로막으며 빗자루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휘두를 틈도 없이 상구의 발길질이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창석이 비명을 지르며 만석을 온몸으로 감싸안았다.
그때였다. 굵직한 발 하나가 허공을 갈라 상구의 옆구리에 박혔다.
“거, 겁나 시끄럽네. 니가 상구냐?”
예상치 못한 급소 공격에 상구의 안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상구는 옆구리를 움켜쥐며 상대를 확인했다. 이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윗 학년에서 ‘미친개’로 불리던 현철이었다.
상구도 깡다구 하나로 버텨온 놈이었다. 애초에 위아래 따위는 없는, 상구만의 왕국이었다. 그는 밭은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자마자 현철의 안면을 향해 주먹부터 날렸다.
“하, 이 새끼 봐라?”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낸 현철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현철의 몸놀림은 바람처럼 날쌨고, 그의 주먹은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두 형제가 서로를 감싸안은 채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현철의 발아래에서 상구는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하늘 아래 무서울 것 없던 왕국의 몰락이었다.
그들의 개싸움은 몽둥이를 든 학생주임 선생님이 들이닥치고서야 겨우 일단락이 났다.
아침나절부터 정순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동생들을 학교로 보내고 난 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며 빨래를 치우고 나니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굽은 허리를 펴며 땀을 닦아내던 그때, 이장님이 다급하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정순아! 정순아, 집에 있냐!”
정순은 젖은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장님, 무슨 일이여요? 숨 넘어가시겄어요.”
“마을 회관으로 학교서 전화가 왔단 마다! 지금 학교서 큰일이 난 것 같드라!”
손에 들려있던 양은 대야가 챙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 큰일이라고요?”
“학생주임인가 뭔가 하는 양반 목소리가 겁나 험하더라고. 아무래도 싸움이 크게 난 모양인디 얼른 가봐라!”
이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치마를 벗어 던진 정순이 집 밖으로 튀어 나갔다. 불안으로 요동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정순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는 줄도 모르고 읍내학교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교무실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개를 숙인 창석과 만석, 그리고 현철이었다. 현철을 보는 순간 질긴 악연에 소름이 돋았다. 그 건너편으로는 덩치가 소만 한 남학생 하나가 엉망이 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는 교무실 바닥에 떨어진 제 핏자국을 운동화로 거칠게 문질러 지웠다.
“선생님, 제가 창석이 만석이 누나 되는디요… 무슨 일인 건지…”
“부모님이 오셔야 하는디 어째 누나가 왔어?”
정순을 올려다본 학생주임이 신경질이 가득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엄니는 지금 장터에 일하러 가셔가꼬요….”
학교, 라는 공기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정순이 허리를 더 깊게 숙였다. 그때였다.
“선생님, 근데 요 애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
현철이 터진 입술에서 배어 나온 피를 닦으며 내뱉었다.
“뭐, 뭣이여?”
“야, 상구. 그래, 안 그래? 이것들이 너를 그라고 만들었다고?”
현철이 상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저 형이, 저를….”
상구는 현철이 무섭기도 했지만, 똘마니같은 녀석들에게 당했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러니까, 왜 때린 거냐고!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이유가!”
“아, 자고 있는디 하도 시끄럽게 하잖아요.”
뒷목을 잡던 선생님이 교무수첩으로 현철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고는 정순을 돌아보며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일단 동생들 데리고 나가봐.”
재수가 없으려니…. 정순은 현철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교무실을 나왔다. 누나를 뒤따르던 창석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현철의 시선이 교무실을 나서는 그들을 쫓고 있었다. 그러다 창석과 눈이 마주치자, 현철은 씨익 웃으며 한쪽 눈을 살짝 찡긋했다.
교무실을 나온 정순이 동생들을 살폈다. 안에 있던 상구라는 아이보다야 덜했지만, 동생들의 몰골을 보니 다시 울화가 치밀었다. 현철이 이제 동생들까지 괴롭히다니, 정말 악연 중의 악연이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저벅저벅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다. 우리상회 사장님이었다. 사장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정순은 난처한 마음을 숨긴 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사장은 고개만 슬쩍 까닥이고는 굳은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갔다.
며칠 뒤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교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석은 책상에 엎드린 채 눈을 감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야, 들었냐? 상구 정학이래.”
“정학? 조용히 지나가는 거 아니었어?”
“아니여.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던디?”
누군가 창석의 책상 옆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창석아 너도 그만 자고 일어나봐! 걔가 그동안 그림 뺏어간 거 다 들통났다드라.”
“창석이뿐이냐? 우리 반만 해도 시다 노릇 한 애들이 한둘이 아닌디.”
창석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당한 애들 중에 육성회장 아들도 있었는갑서. 상구가 잘 못 건드린거제. 한번 불기 시작하니까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왔다던디. 이번엔 선생님들도 그냥 못 지나간거제.”
상구의 왕국 아래 억눌려 있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때 소각장에서 3학년이랑 붙은 것 때문이 아니고?”
“현철이 형? 그 형이 성격은 개 같아도 그 집이 겁나 부자잖냐. 상구 깽 값은 그 집에서 댄 것 같고 그 형은 근신 처분만 받았다던디?”
현철의 이름이 나오자 창석의 귀가 번뜩 뜨였다.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이 창석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그 형이 상구한테 삥 뜯길 일은 없을 거고. 도대체 왜 그런 거래? 너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알 거 아니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몰려들었다.
“야, 그 형이 상구한테 맞고 다닐 위인이냐? 공부하라고 보낸 서울에서 깡패짓 하다가 내려왔다던디.”
“그건 그래. 그때 쥐어터진 상구 얼굴 봤냐? 그 형은 기스하나 난 게 다더구만. 창석아, 말 좀 해봐. 왜 그란 거래?”
창석은 상구에게 무자비하게 맞던 그날을 떠올렸다.
“… 잠자는디… 시끄러워서 그랬다던디.”
창석의 말을 듣고도 아이들은 의문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친개라는 소문이 맞긴 하구나,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 아이들은 수업 종이 울리자 자리로 돌아갔다. 창석은 자신을 보며 장난스레 눈을 찡긋하던 현철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것은 둘만의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