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었다. 쨍쨍해진 햇살 아래 텃밭에서 손톱같은 아기 고추가 맺히기 시작했고, 호박은 담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잡풀들도 덩달아 키재기를 하듯 자라났기에 정순의 호미질은 쉴 틈이 없었다.
“편지요—”
생각지도 못한 편지였다. 그날 이후, 편지를 쓸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몇 번이나 편지지를 펼쳤다가도 할 말을 찾지 못해 금세 내려놓고 말았다. 빼앗긴 편지에 담았던 수다를, 다시 되풀이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편지를 빼앗겼던 이야기를 꺼내자니, 자연스레 현철이, 그 녀석이 떠올랐다. 동생들까지 폭력 사건에 휘말리고 나자, ‘ㅎ’자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일병, 장도영.
답장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온 편지라니. 무슨 말이라도 채워 보낼 것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안녕하세요, 정순씨’로 시작된 편지에는 동생들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는 형과 누나뿐인 집안의 막내라 늘 동생이 갖고 싶었다고 했다. 장사하시는 정순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의 어머니가 더 그리워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어머니는 교편을 잡고 계신다고.
중간고사 기간이라 답장이 늦어진 건 아닌지, 시험은 잘 봤는지, 혹시 공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다며, 그래도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군 생활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는 말로 편지는 끝을 맺었다.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정순은, 다 읽고 나니 손에 힘이 빠졌다. 가슴 위에 큰 바위 하나가 얹힌 것 같았다. 그날 내던진 편지는 어떻게 그의 손에 들어간 것일까. 현철이가 주워 대신 보낸 걸까. 내가 그에게 썼던 편지에 ‘학생’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을수록 마음이 울렁거렸다.
편지 속에서만이라도 학생이 된다는 것. 생선을 파는 아이가 아니라, 시험 점수에 연연하며 안달하는 여학생이 된다는 것이 왜 그렇게 달콤했을까. 흙 때가 잔뜩 낀 손톱을 숨긴 이정순이 아니라, 옆구리에 소설책을 끼고 다니는 문학소녀이고 싶었던 마음. 그것이 이렇게 큰 거짓말로 번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너무 달콤해서, 굳이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은 정순은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편지 속에는 중간고사를 봤다는 말이 빠졌을 뿐, 학생이 아니라는 말이 빠졌을 뿐, 제대로 된 거짓말은 단연코 없었다.
야학 수업이 끝나고 교회를 나서려던 참이었다. 정순을 불러 세운 선생님이 두툼한 책 꾸러미를 꺼내 놓았다. 끈으로 단단히 묶인 꾸러미 맨 위에는 ‘검정고시’이라는 글자가, 그 아래로는 손때 묻은 ‘4학년 국어, 산수’ 교과서들이 보였다.
“정순아, 너도 이제 국민학교 검정고시 한번 봐보자.”
“검정고시요?”
“내년 5월 시험을 목표로 잡는 거여. 일 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될 것이다.”
선생님이 건넨 책 꾸러미를 안자, 묵직한 무게감이 쿵쿵, 심장을 두드렸다. 내년 5월. 교회 문을 나서 밤길을 걷는 정순의 마음위에 초록빛 새싹이 마구 돋아나는 것 같았다.
‘인제부턴 만석이 공부할 때 나도 옆에서 공부해야지. 만석이가 공부를 잘한께 모르는 게 있으면 다 가르쳐 줄 거여.’
모든 것이 빛나 보이는 착각 속에선 늦은 밤 골목길도 스산하지 않았다.
초여름의 풀벌레 소리마저 응원가 같았다.
그때였다. 불쑥, 커다란 그림자가 골목 어귀에서 툭 튀어나왔다.
혹시나 생각하기도 싫은 그 녀석일까, 발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을 쏘아보았다.
“정순아—”
잔잔한 목소리, 영호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깜짝 놀랐잖아. 시험은 잘 봤어?”
“그럼. 오늘 결과 나왔어. 니 말대로 일등.”
담담한 영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엄마의 걱정을 뚫고 나오기 위해선 이 성적표가 필요했다. 영호에게 일등은 정순의 곁을 지켜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면죄부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많이 핼쑥해졌네.”
따스한 정순의 시선에 그간 긴장했던 마음이 툭, 풀렸다. 푹 꺼진 볼 위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요즘엔... 친구랑 같이 안 다녀?”
친구라는 말에 정순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걔는 앞으로 꺼내지도 마. 친구 아니여. 웬수라면 모를까.”
어두운 길에서도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다 느껴져 영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어? 내 친구는 앞으로 미자뿐이여! 그리고 오빠까지.”
정순은 부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 선생님이 주신 책 꾸러미를 영호에게 펼쳐 보였다. 내년 이맘때는 꼭 합격할 거라는 재잘거림이 밤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신이 난 그 목소리에 귓가가 간질거렸다.
“그래, 정순이 너라면 금방 붙을 거다.”
정순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찰나였다. 영호의 시선이 정순의 어깨 너머, 전봇대 뒤편, 짙은 그림자에 머물렀다. 어둠 속에서도 그 서늘한 눈빛은 짐승처럼 번뜩였다. 영호는 슬며시 몸을 틀어 정순을 가로막았다.
“수업 끝나고 혼자 가는 거, 이제 보니까 위험하네.”
“뭐가? 이 동네 골목골목 내가 모르는 데가 어딨다고.”
영호는 어둠 쪽을 슬쩍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공부한다고 의자에만 앉아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더라. 자꾸 잠만 오고. 앞으론 야학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가 올게. 겸사겸사 운동도 하고 잠도 깨고.”
“에이, 오빠도 피곤할 텐데….”
정순은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럼… 오빠 운동하는 거 내가 제대로 감독해 주지!”
장난스레 대꾸하며 다시 꾸러미를 당겨 안았다.
뜨거운 시선이 등 뒤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
그날 밤, 정순은 잠이 오지 않았다.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학생이 된 것 같았다. 가슴속에서 자꾸만 돋아나는 새싹들 때문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정순은 자려다 말고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고쳐 앉았다.
성냥을 그어 남포등에 불을 붙이자, 매캐한 석유 냄새와 함께 누르스름한 불빛이 방 안을 채웠다. 정순은 조심스레 편지지를 펼쳤다. 올해는 여름이 일찍 찾아온 것 같다며,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훈련은 어떻게 받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결국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말은 끝내 적지 못했지만, 편지 끝에 다짐 하나를 덧붙였다.
요즘은 공부하는 시간이 참 좋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공부, 라는 단어를 적었을 뿐인데 가슴께가 묘하게 부풀어 올랐다. 내년 오월,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는 날이 오면 그때는 당당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정순은 남포등 불빛이 그린 제 그림자를 보며, 내년 오월을 그려보았다.
정순을 무사히 집으로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영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오늘 낮, 성적표를 내밀었을 때 엄마는 아들 걱정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공부도 좋지만은, 몸 상해가면서 하지는 말어라.”
엄마의 안심보다 더 값진 것은, 이제는 집을 나설 수 있다는 당당함이었다.
보폭을 줄여 정순과 맞추어 걷는 시간은, 영호에게 가장 달큰한 휴식이었다.
그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한편, 어둠 속에 서 있던 현철은 내내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동안 정순이 가는 길을 먼발치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멀대가 나타난 것이다.
도대체 뭐지? 이게 뭘까.
화끈화끈한 불덩이가 자꾸만 치밀어 올랐다.
제 까짓게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긁는지.
멀어지는 정순과 멀대를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하굣길이었다. 교문을 벗어나 얼마쯤 내려왔을 때, 길가에 서 있던 그림자가 창석이를 붙잡았다. 창석은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현철이었다.
“야.”
짧은 부름에 창석의 어깨가 다시 한번 굳었다. 소각장에서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
“너, 그림 잘 그리더라.”
뜻밖의 말이었다.
“…그때는… 고마웠어요.”
현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뭐, 시끄러워서 그런 거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현철은 발끝으로 돌멩이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라믄 말이여… 니네 누나 그림 한 장만 그려주라.”
그 말에 창석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렸다. 소각장의 기억은 아직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가슴팍으로 날아들던 발길질의 공포와, 그것을 멈추게 한 또 다른 발길질의 고마움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미친개라는 소문이 정말일까. 그러면서도, 그날 눈을 찡긋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눈빛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그 호의가 누나, 정순이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그림 한 장쯤은 내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창석은 다시 연필을 쥐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건네고 싶은 그림, 상납이 아닌 선물이기를 바라는 그림이었다. 몰래 누나를 훔쳐보며 선을 땄다. 책을 안고 웃던 얼굴, 편지를 쓸 때 꿈꾸는 듯 아득해지는 얼굴, 화가 날 때마다 더 도드라지던 주근깨까지.
현철을 위해서라도, 누나를 그리기 때문에라도 더 잘 그리고 싶었다.
일수를 찍듯 그림을 받아 가던 상구와 달리, 그림을 그려주라던 현철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철을 마주쳤던 그 골목을 몇 번이고 서성였지만, 만날 수 없었다. 누나를 그려주라고 했을 때 은근하게 스쳤던 그의 기대는 착각이었던 걸까.
그렇게 전해주지 못한 그림을 가방 속에 품고 며칠이나 지났다. 골목 어귀에서 친구들과 건들거리던 현철과 드디어 마주친 것이었다. 창석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현철을 불러냈다.
“그림은 진작 그렸는디… 형을 좀처럼 못 만나서요.”
창석은 가방에서 책 사이에 반듯하게 간직해 두었던 그림을 꺼냈다.
그림을 받아 든 현철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야… 진짜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종이 위에서 웃고 있는 정순은, 지난날 냉랭하게 돌아서던 모습과는 달랐다. 따스해 보였다.
“… 잘 그렸다…”
짧은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창석의 가슴은, 누군가를 만족시켰다는 안도감으로 느슨하게 풀렸다.
건네 받은 그림을 두고두고 바라보던 소년의 여름도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