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롯드에 말린 소문

by 라라

머리를 한껏 구불 거리게 만 미자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쓸고 있었다.

미용실에는 의자마다 알록달록 보자기를 쓴 손님들이 도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승일이 엄마, 저번에 말은 머리는 금방 풀려블대. 이번엔 쪼까 더 쎄게 말아줘브러”


승일이 엄마는 미자가 일하는 승일 미용실의 미용사였다.


“하아따, 반년 만에 빠마하러 옴시롱 금방 풀려븐다고 하믄 쓰겄소? 여기서 더 쎄게 말아블믄 머리카락이 삘갛게 타븐단께는. 돈 애낄 생각 말고 자주 오란께?”


현란한 가위질을 끝낸 미용사는 손님의 머리에 파마약을 뿌렸다.


“그란디 승일이 엄마 피부가 번질번질한 것이 겁나 좋구만? 뭐 바른거여?”


거울로 미용사를 슬쩍 쳐다보던 손님 하나가 말했다.


“좋소? 어제 미스김한테 콜드크림 하나 샀제잉.”


미용사는 귄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아모레 미스김? 그 여자 요즘 신수가 아주 훤해졌든마?”


미용실 한구석에서 찐 고구마를 먹던 아줌마가 열무김치를 입에 넣다 말고 말했다.


“자식 없는 과부가 뭔 걱정이 있겄소? 지 몸땡이만 단속하면 되는디.”


“그것이 아닌께 그라제... 아조 동네 남자들 볼 때마다 요상시럽게 웃는 것이 화냥끼가 잘잘 흐르드만. ”


칙- 물이 뿌려진 머리카락이 롯드에 돌돌 말려 고무줄로 고정됐다.


“그란께. 그 여자가 팔자를 고칠라고 맘을 먹어브렀으까? 뭔 남자가 드나든다는 말이 있던디.”


꼬리빗으로 적당히 가른 머리카락 위로 다시 흰 종이가 올라갔다.


“그라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디 과부 수절이 웬 말인감? 적당한 남자 있으믄 팔자 고쳐야제?”


“읍내에 삼시로 아직도 못 들었는갑네이. 그 백씨 있잖은가? 그 남자랑 딴 살림 차렸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란께.”


빗자루질 하던 미자의 손이 멈칫했다. 궁시렁거리는 입방아 속으로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종복이라믄 이쁜 마누라 얻었다고 떠들썩했던 그 남자 아니여?”


“부잣집 외아들 장가들면 계집 자랑 아니면 첩 자랑이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거이 아니란께. 반반하믄 멋한 단가? 그 집 시어매가 손주, 손주 노래를 불러싼디 애기가 그라고 안 들어 선갑든만. 그란께 그 집도 복장이 터지제.”


“백 영감 댁 며느리가 처음 결혼할 적만 해도 그라고 이쁘더만, 요즘 장에서 한 번씩 보믄 많이 상해 브렀대. 그 시집살이가 말도 못 한다고 하드라고. 눈치로는 아들이 어디 계집질이라도 해서 손주를 봤음 하더란께. ”


미자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미자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예뻤던 사람이 연순이 언니였다.

그 언니가, 그 시리던 봄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오열하던 모습이 지나갔다.

찬하 선생님과 강변을 거닐면서 말갛게 웃던 언니도 지나갔다.

언니가 내놓은 복숭아를 먹으며 삼키지 못하고 뱉어낸 말이 떠올랐다.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이 풀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아야, 미자야! 뭣 한디 그라고 얼이 빠져서 서 있냐? 저쪽 아짐 중화제 좀 뿌려라.”


롯드를 다 만 미용사가 그 머리 위로 보자기를 올리며 말했다. 미자는 그제야 꿈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덜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허둥거렸다.


오늘은 정순이를 만나러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정순아-, 미자가 삐걱거리는 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정순은 마루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미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 꼭 심하게 더위 먹은 사람 같았다. 정순이는 부엌에서 설탕을 듬뿍 넣은 미숫가루를 찬물에 개어 타왔다. 사발 가득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고소하고 달콤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자, 달아오르던 속이 한결 가라앉았다. 그러고서도 미자는 한참 뜸을 들였다.


“…요즘 연순이 언니는 좀 어짠대?”


미자가 그릇을 천천히 흔들며 바닥에 남은 알갱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언니가 왜?”


정순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형부와 함께 웃던 여자의 목젖이 왜 생각 났을까.


“아, 아니… 결혼한 지 꽤 됐잖애. 언니 닮은 이쁜 조카 보고 싶어서 글제- 얼마나 이쁘겄냐? 내가 똥 기저귀는 다 갈아 줄거여-”


미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니가 뭣이라고?”


“야! 말이 너무 서운한 거 아니냐. 느그 언니는 우리 언니고, 느그 조카믄 내 조카제. 잉?”


미자의 말에 정순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동석이 업고 키우느라 똥기저귀는 이골이 난다. 언니 애기 낳으면 기저귀는 너한테 양보할게.”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꺄르르 웃어댔다.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도 가슴 한켠에서는 눌러지지 않은 서늘함이 울컥, 올라왔다.


“요즘 펜팔은 잘하고 있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었지만, 미용실 아줌마들의 그 독한 입방아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 입안이 까칠했다.


“응. 오늘도 한 통 썼어. 내일 우체국 가려고. 너는?”


“나도 하고는 있는디, 자꾸 휴가 때 한번 만나자고 해싼께 좀 성가시다야?”


“오메! 진짜로?”


정순이 반짝 눈빛을 빛냈다.


“…근디, 너… 말이여.”


미자가 윗입술에 묻은 미숫가루를 침으로 축이며 자꾸 말을 골랐다.


“뭔디 니가 이라고 뜸을 다 들여? 뭐, 딴 군인이라도 또 소개해 줄라고?”


정순의 맑은 눈을 보고 있자니, 롯드에 말려가는 머리카락처럼 자꾸만 더해가는 그 소문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미자는 결국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렸다.


“너, 나랑 영화 보러 안 갈래?”


“갑자기 무슨 영화?”


“야! 이번에 읍내 극장에서 그 장미희가 나오는 ‘여름여자’ 개봉했잖아! 그거 아주 죽여준다고 손님들이 그러던디?”


정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여름여자면 그거 어른들만 보는 거잖애?”


“흐이구, 그라고 순진해서 우찌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래? 잉?”


미자가 손가락으로 정순이를 머리를 슬쩍 밀며 싱긋 웃었다.


“이 언니 뒀다 뭐 할래? 머리 좀 굵게 말고 루주 좀 바르고!”


“바르고?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들어가믄 돼. 아- 무도 모른다잉”


미자는 연순에 대한 소문을 어른의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자꾸만 따끔거리는 미자의 속도 모른 채, 정순은 금지된 것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둥둥거렸다.



그날은 우체국에 가는 길이었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와 볼 옆에 맺혔다. 7월의 열기가 길 위에선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영호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빠, 오늘 학교 빨리 끝났네?”


더위에 발그레해진 정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오늘 시험이라 빨리 끝났어. 너는?”


“나는 우체국 좀 들렸다가 엄니한테 좀 가려고.”


“나도 오늘 생선 좀 사 가야 했는데, 같이 가자.”


함께 걷고 싶던 영호는 결국, 정순이가 편지를 부치는 것 까지 보고 말았다. 봉투 위로 일병 장도영, 이라는 반듯한 글씨가 자꾸만 속을 긁어댔다.


“… 장도영이 누구여?”


가만히 입을 뗀 영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미자가 소개해 준 군인 아저씨. 나 펜팔 하거든. ”


그날,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그 편지가 떠올랐다.

그 녀석의 것일 거라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곤 웬수라는 말에 마음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한 이에게 여태껏 흘러가고 있었다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식은땀으로 흘러내렸다.


“왜? 오빠 어디 아파?”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 나도, 편지 쓸 줄 아는데… 편지, 받고 싶다 정순아. ”


그동안 꾹 눌러왔던 마음이 입 밖으로 터져버렸다.


“에이- 나는 또 뭐라고. 갑자기 무슨 더윗병 난 줄 알았잖애. 오빠는 공부해야제. 나한테 편지 쓸 시간이 어딨다고.”


웃는 정순이 얼굴 위로 백일홍 같은 홍조가 어렸다.

그 모습에 영호는 화가 나는데도 화를 낼 수 없어 자꾸 가슴이 울렁거렸다.


정순은 그 얼굴을 보면서 왜 찬하 선생님이 생각이 났을까.

정순이가 무너지는 가정속에서 그것을 짊어져야만 했던 아이가 아니라 소녀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줬던 선생님. 선생님은 이 더운 날 잘 계실까?

그러다가 왜 연순이언니에게로 생각이 흘러버렸는지는 모르겠다.

웃고 떠들었지만 빙글 빙글 굴리던 미자의 눈동자에서 뭐라고 이름할 수 없는 찝찝함이 명치끝에 걸려있었다.


언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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