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와 ‘여름여자’를 보러 가자던 약속은 여름이 다 지나서야 지킬 수 있었다.
미자는 여름 내내 휴가철을 맞아 귀향한 손님들로 손을 놓을 새가 없었고 정순이 역시 방학 내내 동생들 눈치가 보여 화장을 하거나 구르프를 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승일 미용실 원장이 늦은 휴가를 떠난 뒤에야 미자에게도 비로소 틈이 생겼고 정순이 또한 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난 다음에야, 그토록 미뤄왔던 작당 모의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은 내리쬐는 햇살 아래 불어오는 바람 끝자락에서 일렁일렁 가을 냄새가 났다. 엄마가 사주신 노란 구두를 들고 미자네 집에 가는데 자꾸 가슴이 울렁거려 꼭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콩닥이는 심장을 다독이며 미자네 집 대문을 슬쩍 밀었다. 미자네 부모님은 모두 밭일을 하러 나가고 없고, 화장을 끝낸 미자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싱긋 웃음 짓던 미자는 정순의 팔을 잡아 제 방으로 이끌었다. 미자의 방안에는 향긋한 냄새가 가득했다. 작은 상 위에 화장품이 가득했고 그 위로 거울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정순이는 이방인처럼 괜히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여러 번 빨아 해진 셔츠는 색이 바랬고, 소매 끝은 올이 풀려 있었다. 미자는 그런 정순이를 힐끔 보더니 말없이 장롱을 열었다. 옷들이 가지런히 걸린 틈에서 잠시 손이 머물렀다.
“이거 입어볼래?”
미자가 꺼내 든 건 머스터드 빛깔의 원피스였다. 목둘레에는 작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허리선 아래로 풍성한 치마자락이 떨어졌다. 프릴로 장식이 된 소매를 보는 순간 정순이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니여, 나 이런 거 입어본 적도 없은디…”
“아따, 빼지말고! 이 정도는 입어줘야 된단께!”
미자는 정순이 품에 원피스를 밀어 넣었다. 정순이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미자가 뒤에서 정순의 허리춤을 꽉 조여 매주자, 투박한 일복에 가려졌던 가냘픈 선이 드러났다. 정순이 거울 속 제 모습이 낯설어 빙그르르 돌아보자, 원피스 자락이 나비 날개처럼 펼쳐졌다.
“정순아, 너 겁나게 예쁘다잉. 영락없는 서울 여자여!”
미자의 호들갑에 정순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미자는 신문지에 돌돌 말린 무거운 쇠막대기를 꺼냈다. 미용실에서 몰래 가져온 고데기였다.
미자는 부엌에서 연탄불 위에 고데기의 쇠 부분을 올렸다. 달궈진 고데기를 꺼내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어 온도를 조절했다.
“가만히 있어 봐, 뜨거우니까.”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미자의 능숙한 손놀림에 힘없이 처져 있던 정순의 머리카락이 탱글탱글 살아났다.
변신의 마지막 단계는 화장이었다. 미자는 분통을 열어 정순의 얼굴에 분칠을 시작했다. 뙤약볕에 타버린 정순의 얼굴이 뽀얗게 덮이고, 손가락에 찍어 바른 붉은 루주가 입술 위에 얹어졌다.
“이제 됐다. 진짜 예쁘다.”
정순을 바라보던 미자는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운 양 흐뭇하게 웃었다. 미자가 들이민 거울 속에는 낯선 소녀가 있었다. 웃지도 않았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정순이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모습으로 영화관에 들어가면,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아무도, 생선 상자를 나르는 정순이를 떠올리지 못할 거라고.
찬장 위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었던 노란 구두 위로 발을 올렸다.
정순이 그동안 상상만 했던 멋진 일들이, 오늘은 생길 것 같았다.
“가자! 장흥 땅 벗어나믄 아무도 모른당께.”
미자가 정순의 손목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혹여라도 동네 어른들을 마주칠까 봐 두 소녀는 뒷길을 돌아 읍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정순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자락에 먼지라도 묻을까, 노란 구두가 흠집이라도 날까,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다.
두 소녀가 올라탄 것은 목포로 향하는 버스였다. 덜컹거리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매일 보던 논밭 풍경조차 오늘따라 더 눈부셨다. 그래서인지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정순의 심장도 함께 흔들렸다.
“야, 너 루주 지워질라. 입술 그라고 깨물지 마.”
미자가 옆에서 키득거리며 거울과 루주를 내밀었다. 정순은 입술 위에 루주를 덧바르며 자꾸만 새로운 인물이 되는 듯한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장흥을 벗어나 산모퉁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집안일이며, 동생들 뒷바라지며, 비린내 나던 좌판의 기억들이 하나둘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목포 시내는 장흥보다 훨씬 북적거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목포에 사는 친척 언니를 따라 여러 번 와봤다는 미자의 소매를 잡고 따라간 커다란 극장 앞에는 ‘여름여자’의 간판이 걸려있었다. 파도를 배경으로 요염하게 웃고 있는 여배우의 모습에 정순은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이 넘어갔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스무살이다이. 알겄냐?”
미자가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매표소로 걸어갔다. 정순은 혹시라도 누가 학생 아니냐고 물을까 봐, 가르쳐 준 대로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매표소 구멍으로 돈이 들어가고, 이내 입장권 두 장이 손에 쥐어졌다. 검표원 아저씨가 무심한 눈길로 두 사람을 훑었지만, 미자의 화려한 뽀글머리와 정순의 짙은 분칠 덕분인지 별다른 제지 없이 문이 열렸다.
어두컴컴한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두 소녀를 감싸안았다. 밖은 여전히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었지만, 이 어두운 공간만큼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곧이어 영사기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이 시작되고 한 줄기 빛이 스크린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그 빛을 따라, 정순은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서울 여자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심이 언니에게서나 들었던 도시 남녀의 사랑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의 대담한 애정행각에서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아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손으로 눈을 가렸다. 미자는 쿡쿡 웃으며 정순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굴이 발그레해져 극장 문을 열고 나오자, 바다 냄새와 함께 아직 식지 않은 목포 시내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영화 속 서울 여자들의 삶에 흠뻑 젖어 있던 정순은 눈앞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아가씨들!”
극장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장발의 사내 둘이 다가왔다.
나팔바지를 입고 셔츠 깃을 한껏 세운 꼴이 딱 봐도 동네 건달 같았다.
“영화 잘 봤어? 우리도 방금 보고 나오는 길인데, 저기 '콜롬보 다방' 가서 코오피 한 잔 어때?”
정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낯선 남자가 자신을 '아가씨'라 부르며 다가오는 상황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무서운 마음과 함께 묘한 전율이 일었다.
“됐거든요! 우리 바빠요.”
미자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사내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길을 막았다.
“아따, 얼굴은 인형처럼 이쁘게 생긴 아가씨가 성질머리 한번 쥑여주네. 오늘 오빠들이 재밌게 해준다니까? 응? 아가씨, 이름이 뭐여?”
사내 하나가 미자의 어깨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정순은 반사적으로 사내들을 쏘아보며 미자의 팔을 꽉 잡았다.
“아따, 오빠들 성질도 급하시네. 숙녀들한테 시간도 안 주고? 우리 화장실도 안 다녀왔는디…… 잠깐만, 저기 전봇대 밑에서 기다리고 있음 안될까?”
미자가 능청스럽게 눈웃음을 치며 사내들을 안심시켰다. 정순은 미자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사내들은 소녀들에게 찡긋 윙크를 한 뒤, 기세등등하게 담배를 물고는 전봇대 쪽으로 물러났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자, 미자가 정순의 팔을 확 채 잡았다.
“야, 정순아! 뒤쪽 쪽문 보이지? 글로 튄다!”
두 소녀는 까치발을 들고 숨을 죽인 채 화장실을 나와, 뒷벽에 난 좁은 쪽문을 밀고 나갔다.
어두컴컴한 극장 뒷골목은 쓰레기들과 깨진 연탄재들이 굴러다녔다.
정순은 빌려 입은 원피스 자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미자의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가에 다다르자 미자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바보들, 지금쯤 전봇대 밑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겄지?”
화장은 땀에 번지고, 고데기로 말았던 앞머리는 이마에 달라붙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자야! 나 심장 터질 것 같아! 하하하!”
목포 시내 한복판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바다 습기 가득한 거리 위로 흩어졌다. 어른들을 속였다는 해방감, 낯선 남자들을 따돌렸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친구. 정순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근사한 '여름여자'가 된 것만 같았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장흥 터미널에 들어섰다. 창밖은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루가 길었는지, 짧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려오는 사람들 틈에 섞여 미자와 나란히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내일 사장님 오는 날인께, 고데기 정리 좀 해놓고 가야 쓰겄다.”
미자는 읍내 쪽을 가리켰다.
“너는 얼른 가라이. 동생들 밥 해야제.”
정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자는 손을 흔들며 먼저 돌아섰다.
정순이는 혼자 집을 향해 걸었다. 터미널을 벗어나자 길이 한산해졌다. 다리를 건너는데 버스에서도 식지 않았던 몸의 열기를 씻겨 주려는 듯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미자네 집 거울 앞, 영화관의 어둠, 남자들, 달아나던 골목, 가슴이 터질 듯 뛰던 순간.
이 모든 일이 단 하루만에 있었던 일일까.
생각할수록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 때문에 구름 위를 둥둥 떠서 걷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야.”
현철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모으고 정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반사적으로 멈춰 선 정순은 잔뜩 날을 세우고 현철을 노려보았다.
현철의 시선이 정순의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머스타드 빛깔의 원피스를 지나, 화장기가 남은 얼굴에 머물렀다. 그 순간, 현철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순에게까지 들릴 듯했다.
“하아…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줄 아냐?”
정순이의 뽀얀 얼굴과 붉은 입술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발목과 가녀린 허리선에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저렇게 예쁘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질투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현기증이 났다.
“야, 그 머리랑 화장은 다 뭐고… 너랑은 하나도 안 어울려!”
아무렇게나 터져나온 현철의 말을 듣자, 정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타올랐다.
“니가 무슨 상관인데!”
“앞으론 이런 거 절대로 하지 마라. 알겄냐?”
현철은 떨리는 제 마음을 감추려 더 크게 윽박질렀다. 그러면서도, 정순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기만 알고 싶은 보물을 다른 사람이 가로챌까,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가시가 돋친 말로 나오고야 말았지만.
정순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미자와 함께 누렸던 황홀함이 시궁창으로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니가 뭔데 하라 마라야! 내 인생, 내 자윤데!”
정순은 씩씩거리며 현철을 거칠게 밀치고 지나갔다.
몇 걸음 떼고 나서야, 정순의 눈가에 부끄러움 같기도 하고 억울함 같기도 한 눈물이 핑 돌았다.
현철은 멀어져 가는 정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제 이마를 툭툭 쳤다.
‘하… 미친놈, 나 진짜 구제 불능이네.’
현철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양은 산 너머로 천천히 기울었고 분홍빛으로 번지던 하늘은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점이 아직 여물지 못한 벼 이삭을 쓰다듬으며 여름의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현철의 뺨도 스치고 지나갔다. 일렁이는 들판 사이로 이 계절의 끝을 알리는 듯 풀벌레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고 말았던 말들을 후회하는 소년의 마음속을 더욱 어지럽게 휘젓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