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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18. 2023

아임 코리안!

차타고 근교로 나들이 가는 길.

나>> 여기서 좌회전 해야하지 않아?

붑커>> 헐~ 지금 나한테 우리 동네 지리를 가르치려 드는거야?

운전을 하던 남편이 하이틴 영화 여주인공 말투로 새침하게 쏘아붙인다.

하 참. 이래봬도 내가 이 동네에 산지 10년일세. 음.. 근데 자네 말이 맞구만.

나>> 아 맞네. 이제 완전 마스터했구나 하하.

붑커>> 당연하지!

대한민국 생활 1년차. 남편은 이제 요동네 뿐 아니라 옆동네 뒷동네 산너머동네까지 웬만한 길은 꿰고 있다. 토박이인 나보다 훨씬 낫다(사실 난 길치라서 비교대상도 안되긴 하지만).

남편은 평소에 카카오 지도에서 여기저기 갈만한 곳을 체크해 뒀다가 주말이 되면 데려갈 곳이 있다며 날 안내한다. 이쯤되면 누가 한국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년 전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남편을 마중나갔을 때가 생각난다. 와서 며칠간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로한 몸을 쉬면서 지냈지만, 기운을 되찾자마자 남편은 일을 하고 싶어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나중에 일하게 되면 쉬고 싶어도 못 쉬니까 지금 많이 즐겨둬야 한다고 그렇게 설득을 했지만 남편은 '내 힘으로 번 돈'이 수중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스타일이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집에만 있으면 빚을 지는 것 같고 손님으로 지내는 느낌이라나. 그러다가 다투기도 몇번 했다.

나>> 누가 번 돈인지가 뭐가 중요한데. '우리 돈'이라고 몇번이나 말 했잖아.

붑커>> 여보는 내 맘을 몰라. 나는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을 책임지고 싶다고. 게다가 집에서 놀고만 있으면 얼마나 우울하고 무기력한지 알아?

그 당시에는 내가 가장 역할을 임시로 하고 있었기에, 모로코에서 자기 앞가림도 야무지게 하면서 가족들도 챙기는 든든한 아들이었던 남편에게는 큰 상실감이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맘을 이해하려 무척 골이 아팠다. 아니 이제 막 낯선나라에 들어온지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하는데 일을 하겠다니. 천천히 생활에 적응도 하고 한국어 공부도 하면서 지내면 좀 어때서!

하지만 이건 내 마음이었고 남편 마음은 또 그게 아닐테니 어쩔 수 없이 따라주었다. 지방이라 외국계 회사의 일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으니, 구하려면 한국어를 못해도 근무가 가능한 회사에 구직을 해야했다. 당연히 사무직은 취직할 수 없었고, 각종 어플, 페이스북, 관공서, 지역신문의 구인란 등을 통해 생산직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남편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일이 너무 늦게 끝나거나 조금이라도 다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결코 반대였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할만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력사무소를 가본 것은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아침을 먹고 6시 즈음 택시를 타고 인력사무소에 가면 아직 깜깜한데도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남편은 그곳에서 구한 아르바이트로 자동차 공장, 닭공장, 건설현장 등에서 일을 몇번 해보았다. 그렇게 새벽부터 출근을 시키고 나면, 일은 할만 하려나, 말도 안통하는데 잘 하고 있으려나, 밥은 잘 나오나 하고 하루 종일 걱정이 되었다.  


한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고 있는 지금은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붑커>> 그때 미안했어. 내가 너무 조급해서 여보를 힘들게 했지? 지금 생각해보니 여보가 왜 '놀 수 있을 때 놀아둬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 한국사람들 일 너무 열심히 해 흑흑.

나>> 으이구 거봐 내가 뭐랬어~!


일자리를 구하는 문제로 스트레스 받았던 날들이 지금은 언제 그랬었나 싶게 아득하기만 하다. 올해도 벌써 추석이 지났다. 남편이 막 도착했을 때가  추석 연휴였는데. 한해가 지나는 사이 남편은 열심히 저축해서 올 추석엔 엄마아빠께 용돈도 드렸다. 투에 자기 싸인을 한 편지지까지 넣어서. 남편은 우리 이름이 아니라 꼭 자기 이름으로 용돈을 드리겠다며 싱글벙글하며 편지를 썼다. 행복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제 좀 알 것 같다. 일년 전 남편이 일하고 싶어서 안달 났던 건 이런 걸 바랐기 때문이구나.



남편은 새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가끔은 남편이 예고 없이 한국말을 써서 장 동료들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도와드릴까요?" "수고하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같은 예의 바른 말.

"보고싶었어요~" "나, 너, 사랑해~" 같이 애교 있는 말.

"확인해요, 확인." "조심해요." 같은 꽤 어려운 단어까지.

아직 문장을 구사한다기 보다 단어를 조합하는 정도이긴 해도 처음에 비하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집에서 둘이 있을 때 한국말로 대화하는 연습을 자주 했더라면 더 빨리 늘었을텐데, 내가 게을러 렇게 도와주질 못했다. 앞으로 조금씩 한국어 대화의 비중을 늘려가 볼까.


하루는 남편이 물어봤다.

붑커>> 여보야. 카페에서 여보가 '에스프레소 하나랑~' 하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나>> 아 그거? '에스프레소 하나 and~ 뭐뭐 주세요.' 이렇게 쓰는거야.

붑커>> 아하!


그 뒤로 카페에 가면 주문하려는 나를 휘휘 손을 저어 가로막고 남편이 선수를 친다.

"안녕하세요~ 에스프레소 하나랑~"

그러고는 '이제 너 차례'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면 나는 못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나머지 주문을 한다.

"네, 그거랑 자몽차 따뜻한 거 하나 주세요."

남편은 날보고 턱을 치켜들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하. 하. 하.
어때? 아임 코리안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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