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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14. 2023

제주 바다에 안기다

제주 바이크 여행 #셋째 날 - 첫 바다수영

내일 아침 이른 비행기로 제주를 떠날 예정이다. 근데 아직 바다에서 수영을 못해봤다. 동쪽 해안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영할 만한 좋은 장소를 찾아봐야겠다.

오늘이 드라이브 마지막날이라는 아쉬움이 섞여서인지 유달리 예뻐보이는 바다.


가는 길에 물 가운데로 난 특이한 길을 만났다. 이름은 '배고픈 다리'. 한라산에서 내려온 천과 바다가 이어지는 부분에 놓인 다리이다. 밑으로 푹 꺼져 다리인지 아닌지 아리송 하게 생겼다. 그 모양을 귀엽게 해석하여 이름도 참 잘 지었다. 배고픈 다리. 다리가 배가 많이 고팠던 덕에 이 다리를 건널 땐 마치 물 위를 달리는 느낌이 든다.



무성한 풀로 뒤덮인 여름날의 섭지코지는 생기롭다. 광활하면서도 어딘지 처연한 느낌이 들던 겨울철의 섭지코지와는 확연히 다른 그림체로 변해있다. 성한 머리숱으로 변한 섭지코지가 오랜 벗처럼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오래간만이야. 우리도 반가워!


저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한컷.


우도 땅콩이 들어간 커피를 한잔 마셔보았다. 고소하고 적당히 달큰한게 맛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사알짝 기울어 더위가 주춤할 즈음, 수영하기 딱 좋아보이는 바다가 나왔다. 수심이 꽤 깊은지 사람들이 모여 너도나도 신나게 점프를 하고 있었다. 피서객으로 보이는 람들부터 제주 토박이 학생들로 보이는 청소년들과 초등학교 입학도 전인 것 같은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수영을 즐기는 중이다. 

우리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뛰어들 준비를 했다.

남편은 잠깐 바다에 들어가 수심을 체크하더니 나보고 들어오라고 한다.

나>> 점프하라? 으앙 나 못해~

옆에는 고등학교쯤 다닐 것으로 보이는 새까맣게 탄 학생들이 맨몸으로 점프를 해대고 있었다. 그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도 구명조끼를 입고 겁도 없이 퐁당 바다에 뛰어든다. 으 하지만 난 구명조끼 없이 바다수영은 처음이라구! 수심이 친절하게 적혀있는 수영장에서는 적어도 발이 안 닿아 꼬르륵 가라앉을 일은 없기에 맘놓고 수영했지만, 다이빙도 가능한 깊은 바다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때 먼저 들어가 수영하고 있던 다른 분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수영할 줄 아세요? 도와드릴까요?"

나>> 흐엉.. 수영은 배웠는데 이런 바다는 처음이라 너무 무서워요..!

친절하게도 한 여성분이 손을 잡아줄테니 우선 들어와보라고 했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좀 안심이 되었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들어가보자.

나>> 엇. 뜬다 뜬다!

붑커>> 엄청 잘하네!

소금을 머금은 바다는 수영장 물보다도 훨씬 가볍게 내 몸을 받쳐주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어느새 혼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그렇게 연습해도 안되던 입영이 실전에서 한번에 되다니!

내친 김에 다이빙도 해보려 했지만 머리부터 물속에 꽂아넣는게 무서워서 몇분을 망설였다. 남편의 끈질긴 응원 끝에 마침내 어설프게나마 바다에 뛰어들긴 했다. 비록 예쁜 다이빙은 아니었지만 해냈다는 짜릿함이  몸을 휘감았다.

나>> 와 나 뛰었다!

붑커>> 진짜 잘했어 하하.

이미 다이빙에 익숙한 남편은 좀더 높은 계단 위에서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스크류바처럼 몸을 휘리릭 돌며 다이빙하는 남편을 본 주변 사람들이 오오 하며 탄성을 질렀다.

"와 방금 겁나 멋있었어. 와우 유 베리 핸썸 가이! 쏘쿨!"

옆에 있던 유쾌한 남학생들이 남편을 향해 다이빙을 엄청 잘하는 핸썸가이라며 칭찬을 해댔다.

날아라 붑커!

나의 첫 바다수영은 성공적이었다. 겁많은 와이프를 끝까지 격려해준 남편과, 손도 잡아주고 같이 응원해준 이름모를 여행객들, 잔잔한 물결과 적당한 수온으로 나를 둥둥 안아올려준 착한 제주바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이날 이후 나는 스스로 어느정도의 레벨에 도달했다 싶었는지 수영연습을 게을리 하게 되었다. 수영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목표가 바다수영이었던지라 목표를 이미 달성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이래선 안되겠다. 아직 접영을 못하니까 접영을 연습한다던지 아니면 프리다이빙을 배워본다던지 하는 새로운 목표를 얼른 만들어서 다시 수영장에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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