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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Sep 06. 2023

바이크 타고 제주 한 바퀴

제주 바이크 여행 #첫째 날 - 10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유난히도 무더웠던 8월 첫째 주. 남편도 나도 출퇴근의 쳇바퀴에 이골이 날 때 즈음, 4일간의 단비같은 휴가가 주어졌다. 디를 놀러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주도로 의견이 모아졌다. 남편은 4년 전 홀로 가서 섭섭했던 제주도에 드디어 같이 가게 되었다며 기뻐했고 나도 오간만의 제주도가 기대되었다.

제주공항 도착!


제주도에 처음 가 본 건 살 때였다. 그때의 여행은 내가 계획한 게 아니라 뭣 모르던 시절 가족들을 따라 쫄래쫄래 따라갔던 거라 그런지 어렴풋한 꿈처럼 잔상이 남아있다. 희미한 장면들 속에서 몇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들도 있다. 겨울이었음에도 제법 따뜻하던 공기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녹던 가루눈. 태어나서 처음 봤던 야자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우도의 맑디 맑은 바닷물. 도로를 가로질러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 기다려주던 차들의 진풍경.

두 번째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스무살,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느 날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떠난 제주여행이었다. 천지연 폭포 앞에서 사진도 찍고, 서귀포 시장에서 회를 시켜놓고 늦게까지 깔깔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관광보다는 제주도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소년기의 소중한 추억을 구들과 함께 곱씹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다시 10년 후. 남편과 함께하는 제주도는 어떤 모습일까. 남편은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따라 바이크로 일주하자고 했다.

짠!

일기예보에서 태풍 카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서 바이크 타다가 비만 쫄딱 맞는거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바이크를 포기할 순 없었다. 왜냐.

주차하기 편해서 어디든 멈춰설 수 있,

이 좁아 차들이 못다니는 길도 달릴 수 있,

리면서 바다냄새온 얼굴로 맡을 수 있다.

이걸로도 이유는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바이크는 지난 신혼여행을 몽글몽글 떠올리게 했다. 우린 그때의 낭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날씨는 우리편이어서 여행 내내  한방울 맞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 이튿날부터 는 쉬지 않고 며칠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날 한번 기가 막히게 잡았다.


우리는 서쪽에서 시작하여 한바퀴를 돌아 동쪽으로 향하는 루트를 잡았다. 왼쪽엔 풀밭, 오른쪽엔 검은 돌들 위로 부서지는 파도. 머릿속에 그려왔던 제주의 풍경 그 안에 우리가 들어와 있었다.

정오가 넘어가자 햇볕이 더욱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무더위를 피해 카페로 모여들었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창가 자리 인기가 많아 빌 틈이 없다. 하지만 오랜시간 앉아있는 사람은 드물다. 창밖의 빛나는 바다를 감상만 하고 있기엔 발도 한번 담그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어 몸이 근질거려서일까. 우리도 잠시 앉았다가 땀만 식히고 곧 일어섰다. 적한 에어컨 바람도 좋지만 바이크 위에서 맞는 짠내 섞인 바닷바람이 더 좋다.  



겹겹이 쌓인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절벽을 볼 수 있는 수월봉 지질트레일. 원래 이곳은 아주 먼 과거에 폭발한 화산의 분화구인데 시간이 지나 바다가 차오르면서 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사가 기록되기 훨씬 전터의 방대한 시간이 녹아들어있을 빽빽한 지층을 보니 새삼 이 땅의 나이가 실감된다. 에 비하면 인생은 정말이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에 남방큰돌고래 나타나는 곳이 있다고 해 가보았다.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가보니 태풍이 오는 중이라서인지 파도가 꽤 거세 수영은 안되겠다. 눈을 깜빡이며 열심히 돌고래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대신 멋진 파도 사진 하나는 건졌다.


근처 도로변에 작은 카페가 있어 들어가봤다. 한라봉 주스도 맛있었지만 귀여운 소품 장식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흰 벽면에는 남방큰돌고래가 벽을 뚫고 나올 듯 물 위로 뛰어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돌고래를 보기가 쉽지는 않아요. 운이 좋은 날에는 볼 수 있을 거예요." 카페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파도가 너무 세서 깊은 바닷속으로 숨어버린걸까?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겠다. 그때는 만날 수 있길.


해가 지기 전 서둘러 송악산으로 갔다. 송악산 둘레길 꼭 가보라는 사람들이 많아 지도에 표시해 두었는데, 직접 가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산책로 주변으로 풀밭이 넘실넘실 파도치고 절벽 아래 바위에는 바다가 시원하게 찰방인다. 초원에서 풀을 어 먹으며 돌아다니는 말들이 풍경을 더욱 평화로워 보이게 한다. 편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벌레소리 흉내도 내면서 걷다보 느새 둘레길 한바퀴를 다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춤추는 풀밭의 물결이 노을빛이 되어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중문에 있는 숙소로 달려가는 길은 해가 져서 조금 쌀쌀했다. 제주도의 바람은 예측할 수 없다더니 갑자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바람이 세졌다.

붑커>> 아얏! 배 그만 꼬집어..!

나>> 앗 미안해.

바람이 너무 세게 부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서 안고 있던 남편의 뱃살을 움켜쥐었나보다.

나>> 바람 때문인지 속도가 빠른 느낌이라 조금 무섭네..

붑커>> 태국에서 바이크 탈 때는 이거 보다 더 빠르게 달렸는데도 안 무서워 하더니. 오랜만이라 안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나>> 그런가봐 하하.

두려움을 떨치려고 딴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 갔던 곳들을 찬찬히 떠올려본다. 주도가 이렇게까지 예뻤던가. 솔직히 그동안 몰랐다. 울의 제주도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명한 색채를 가진 여름의 제주는 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역시, 이곳에 다시 오길 잘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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