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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Sep 27. 2023

고것 참 폭포가 뭐라고  

제주 바이크 여행 #둘째 날 - 폭포 때문에 싸운 날

모든 것은 정방폭포를 보러 가려다 소정방폭포 쪽으로 길을 잘못 들면서 시작됐다. 주차장에서 왼편으로는 소정방폭포로 향하는 길이 있고 오른편으로 가야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난 길이 예쁘길래 별 생각없이 그 쪽으로 간 것이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보니 눈 앞에 떡하니 있는 안내지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와본지가 한참 되어서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이 길은 아닌 것 같은 감이 왔다. 어쨌든 좀더 걸어가니 콸콸 폭포소리가 들렸다.

붑커>> 나왔다!

나>> 엥?

그제서야 이건 소정방폭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왔으니까 내려가봐야지.

근데,

나>> 여기 가면 안된대.   

요 며칠 물살이 거세져서인지 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막혀있었다. 멀찍이서 보기에도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모양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 못 들어간대. 돌아가자.

붑커>> 에이 한번 가보자. 괜찮아.

나는 어려서부터 겁이 꽤 많고 소심한 성격이어서 (아닐 때도 있지만) 아주 작은 규칙을 어기는 것에도 전전긍긍하는 타입이었다. 조금 나이를 먹고 세상살이에 잔뼈가 굵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반항심과 패기를 갖추게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는 주의였다.

나>> 하지 말란 거 괜히 해서 좋을 게 없어. 게다가 진짜 큰 폭포는 저쪽에 따로 있다니까? 그냥 가자.

붑커>> 진짜 괜찮대도~ 절대 위험하게 안할게. 무서우면 나 혼자 가서 보고 올까?

이때부터 약간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내가 내 몸 다칠까봐 가지 말자는 거야? 위험할까봐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때 한 대가족이 폭포를 보러 왔다. 그 분들도 폭포 쪽으로 내려가려다 팻말을 보고는 '내려가지 말라고 써 있네?'라며 웅성거렸다.

나>> 봐봐, 저 사람들도 안 내려가잖.. 

붑커>> 봐! 다들 보러 간다.  

에엥? 망설이던 사람들은 한 번 내려가보는 쪽으로 그새 합의를 보았는지, 막아놓은 입구를 하나둘씩 넘어가고 있었다. 이.. 이게 아닌데!

나>> 그..래도 안돼! 저기 봐, 파도가 너무 세서 위험해 보여. 굳이 왜 보려는 거야?

붑커>> 혼자라도 한번만 보고 오면 안될까..?

계속해서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거듭 부탁하는 남편. 내가 끝까지 가지 말자고 했으면 남편은 안 갔을 터였다. 근데 왠지 모르게 속에서 보글보글 화가 끓었다.

나>> 그러던지.

그랬더니 남편은 해맑게 '그럼 금방 올게~' 하면서 신나게 폭포로 내려간다. 가란다고 진짜 가냐. 나는 나보다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건데 내 맘도 몰라주고.. 혼자 보고 오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 갈거면 나랑 같이 가던지..우쒸.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가지마!' 라던지 '그럼 나랑 같이가!' 라던지 했으면 됐을텐데 이상하게 꼬인 심사는 점점 더 베베 꼬여만 갔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보러 가는데 나만 유난 떠는 것 같아진 이 상황에 화가 났던 것도 같다.

남편을 그대로 두고 증기기관차처럼 칙칙폭폭 씩씩거리며 먼저 그 곳을 나와버렸다. 걸음을 떼면서도 혹시나 갑자기 파도가 크게 쳐서 위험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뒤통수가 근질거렸지만 이미 토라진 발걸음은 점점 빨라질 뿐 멈출 줄 몰랐다.

남편은 얼마 안돼서 왜 먼저 가버렸냐며 나를 따라 나왔다. 내려가봤더니 별로 위험하지 않아서 나랑 같이 보려고 날 데리러 왔었는데 이미 없어졌더라며.

나>> 흥, 몰라 나 혼자 폭포 보러 갈거야.

콧방귀를 뿡뿡 뀌면서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따라오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혹시나 정말 안오면 어쩌지 했다. 내려가기 전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물론 두 사람 것으로. 가만 생각해보니 남편은 딱히 잘못한 게 없었다. 유치하게 화를 내버린 것 같아 살짝 민망해졌다. 렇다고 바로 표정을 는 건 또 그것대로 겸연쩍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하게 낙하하는 물줄기가 곧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기 드문 장관이었다. 당장이라도 우와 여보야 저기서 사진찍자 하면서 남편의 손을 잡아 끌고 싶었지만...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돌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편도 내 옆에 앉았다. 우리 둘 다 한동안 말없이 폭포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붑커>> 포 진짜 멋있다. 사진 찍을까?

나>> 흥.

아이고 또 '흥'을 해버렸다. 그날따라 왜 이리도 뒤끝이 길었는지 모르겠다. 삐져있던 건 난데 불안한 것도 나였다. 이러다가 진짜 같이 사진도 못찍고 돌아가게 될까봐. 지금 봐도 내가 우습다.

다행히도 착한 붑커는 나를 또 달래주었다.

붑커>> 내가 미안해잉. 화 풀어.

나>> .....나도. 맘대로 먼저 가버려서 미안..

붑커>> 히히. 이제 사진 찍는거지?

나>> 쩝. 그러지 뭐. (휴.. 다행이다!)

마지못해 찍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도 참 바보같다. 고놈의 폭포가 뭐라고 못나게도 성을 냈을까.

남편은 여러 바다와 폭포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폭포와 바로 이어져 바다가 펼쳐지는 곳은 처음이라며 감탄을 추지 못했다.

아이 좋아라.
이날의 화근이 되었던 소정방폭포.
소정방폭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소라의 성이라는 북카페가 나온다. 잠시 쉬어가면서 창밖의 바다도 구경하고 방명록도 작성할 수 있다.




정방폭포에 가기 전 먼저 보러 간 천지연폭포.
잠시 들렀던 쇠소깍. 카약을 타는 사람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는 아까웠다. 바다 수영을 좀 하고 싶었는데 날씨가 영 도와주지 않았다. 남쪽 해안은 태풍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아서인지 해수욕 포인트라고 지도에 표시된 곳들 몇군데에 찾아가봤지만 살벌하게 철썩이는 파도로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렇게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굉장 곳을 발견했다.

계획 없이 도착한 곳이라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황우지 해안인 것 같다. 소용돌이 치는 파도의 기세가 실제로 보면 더욱 압도적이다.
한 폭의 그림 같다.


태풍으로 인해 수영은 하지 못했지만, 태풍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하였을 경이다. 다보면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그 때가 히려 기대하지 않던 값진 것을 얻는 때가 될 수도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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