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Oct 02. 2023

고진감래 지리산 등정기

#지리산 등산

지리산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월에도 한번 왔었는데 그땐 하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입산이 제한되고 말았다.  아쉬움을 풀기 위해 추석 연휴를 맞아 재도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등산 전날 저녁, 펜션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일 당일치기 최단코스로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에 오를 예정이다. 펜션 사장님은 연휴라서 주차공간이 부족할 거라며 이른 아침 6시에는 출발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왕 일찍 일어나는 거 새벽 5시에 펜션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주차장에 5시 20분쯤 도착했다.

"와..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부지런해?"

벌써 주차장 대부분의 공간이 차 있었다. 6시에 일어났으면 자리가 없을 뻔했다. 

산 입구에 있는 인카페에서 뜨아를 뽑아 마시면서 몸을 깨웠다.

"이제 출발해볼까?"

"좋아. 5시 40분. 출발!"

날씨는 적당히 쌀쌀하고 산을 타기에 더없이 쾌적했다.


랜턴을 켜고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계곡물소리가 가까워지고 풀냄새가 짙어진다. 첩첩산중 너머로 부연하게 아오는 연보라색 하늘을 시 구경했다.

붑커>> 너무 예쁘다 진짜.

나>> 응, 공기도 너무 좋고. 물속에서 숨 참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와서 숨통이 트일 때, 딱 그 기분이야.

붑커>> 엄마아빠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은 부모님이랑 같이 못 온걸 고두고 아쉬워했다. 엄마는 등산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연휴인데도 바쁜 바람에 같이 못 오셨다. 아빠는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 군대에 계실 때 너무 산을 자주 타서 그런가. 아빠한테 지리산에 같이 가자고 했더니,

"8시간 등산? 야야 8분도 힘들다." 

해서 우리 둘만 오게 된 것이다.

나>> 엄마가 산 타는 거 보면 꼭 다람쥐 같다? 어찌나 가벼운지 바위산도 다람쥐처럼 뽈뽈뽈 달리듯이 탄다니까. 

붑커>> 하하하, 진짜? 엇 저기 봐. 엄마다!

남편이 가리킨 곳에는 엄마처럼 뽈뽈 쪼르르 날쌔게 달려가는 다람쥐가 있.

헥헥. 얼마나 올랐을까.

붑커>> 이제  시간 지났다. 안 힘들어?

나>> 응, 난 올라가는 건 할만해. 내려갈 때 무릎이 삐걱거려서 힘들어 그렇지.

붑커>> 와 체력 좋은데? 나는 내려가는 건 쉬운데 오르는 건 힘들더라.

시간이 좀 더 흐르자 해가 낮은 봉우리들 위로 떠올라서 나뭇잎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이 밝으니 선명해진 산세가 나무 사이로 엿보였다. 정상에 올라서 라보면 얼마나 더 빼어날까 두근거렸다.

스스슥-

갑자기 뒤에서 빠르게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와..!"

일흔에 가까워 보이는 할아버지셨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바위를 뛰어넘는 그 모습은 흡사..

"호랑이! 다람쥐도 아니고 저분은 호랑이다 호랑이."

우리 옆을 빠르게 스쳐가시는 할아버지께 '체력이 대단하시네요.' 하며 감탄했다. 아버지는 '허허 대단은 무슨.' 하시며 무쇠 같은 장딴지로 날듯이 상을 향해 달려가셨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지리산 천왕봉. 등산코스가 어렵기로 유명했지만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솔직히 할만하겠거니 생각했었다. 이래 봬도 우리 모로코에서 금식하면서 6시간 등산도 해봤다고! 라며 자신만만해 있었는데.

나>> 헥헥.. 나 이거 할 수 있는 거 맞지?

붑커>> 헥.. 조금만 더 힘내자.

나>> 헥..여보야, 오늘 가장 똑똑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붑커>> 누군데?

나>> 우리 아빠.

붑커>> 뭐? 하하하하하!

'등산? 뭣허러 고생혀.' 하면서 에서 쉬고 계실 아빠가 오늘의 승자다.


지리산 등산은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아니.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단단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상까지 1km가량을 남긴 마지막 고비가 극악의 난이도였다.

놀랍게도 아까 마주쳤던 호랑이 할아버지는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계셨다.

"와 벌써 내려오세요?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30분 정도만 가면 돼요. 파이팅!"

"하하 네, 감사합니다. 파이팅!"

30분이라는 말에 신이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휴, 30분만 참으면 되겠어!

붑커>> 좋아! 아니 근데.. 30분이 우리 기준이야 아니면 저분 걸음을 기준으로 한 거야..?

.. 아뿔싸.


정상까지 0.9km... 0.8km... 0.7km...

100미터씩 가까워질 때마다 흐트러지는 숨을 고르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두 다리가 물을 잔뜩 먹은 솜 같았다.

그리고 가파른 마지막 계단을 다 오르자 드디어,

"이야 다 왔다!"

화에서 겹 산봉우리 사이를 신비로운 구름이 휘감고 있는 모습은 과장 이 철저히 실제를 바탕으로 그린 거였구나.




나의 favorite.


남편의 favorite.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오르면 이런 비슷한 사진을 줄곧 찍는 남편이지만, 지리산에서 남긴 이 사진이 여태껏 찍은 중에 최고라며 흡족해했다.


지리산 꼭대기에서의 낮잠.

내려오는 길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질병인 무릎도 아프고 발가락도 신발 속에서 팅팅 부어 디딜 때마다 악 소리가 나왔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도 천왕봉이라는 목표가 있어서인지 기쁘게 올랐는데, 내려갈 때는 제발 나 좀 여기서 꺼내주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기 케이블카 없냐구~

내려올 땐 법계사 쪽이 아닌 장터목대피소 쪽으로 약간 돌아서 내려왔다. 펜션 사장님 말씀대로 장터목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했고 풍경도 예뻤다.  


등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를 걸어가는데 다리가 달달달 떨렸다. 내려온 시간은 오후 4시경. 정상에서 1시간 정도 낮잠도 자고 사진도 찍고 점심 먹고 했던 걸 빼도 9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른 새벽에 시작하길 참 잘했다.

나>> 너무 좋았어. 그리고 다신 안 올 것 같아. 너무 힘들어 하하하.

붑커>> 하하, 그것도 잠깐이지. 또 오고 싶어질걸?

맞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오르고 싶어지는 걸 보면. 정상에서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어 장장 8~9시간의 고됨을 감내하게 하는 지리산. 지금과는 다른 계절에 또 한 번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이전 18화 제주 바다에 안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