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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04. 2023

한국말을 참 잘하네

지난 겨울 신혼여행으로 동남아시아를 도는 동안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필리핀?"

하루는 필리핀에서 왔냐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의 축하를 받기도 했다.

붑커>> 하하, 축하해.  나라가 더 추가됐네!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필리핀... 여러 나라가 언급되었지만, 한국에서 왔죠?하고 한눈에 맞히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았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이미지가 있듯이 한국인도 딱보면 한국사람인 것 같은 태가 다는데. 왜 나는...




지리산에서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만난 한 아저씨께서는 우리가 초콜릿을 권하자 고마우셨는지 분홍빛이 도는 소금을 한꼬집씩 나눠주셨다.

"혀 밑에다 넣고 녹이면 힘이 날 거예요."

"감사합니다~!"

"근데 어디서 왔어요?"

아저씨께서 남편을 향해 물으셨다.

"모로코!"

"오오~ 모롸코!"

아저씨는 눈 동그랗게 뜨며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아참. 이번에 지진이 났던데가 모로코 맞던가? 그쵸? 가족들은 괜찮아요?"

"앗, 네 괜찮아요. 감사해요."

감사하게도 모로코의 가족 안부까지 물어봐주시는 맘씨좋은 아저씨. 곧이어 남편에게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냐며, 우리 둘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하셔서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굉장히 흥미로워하시며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셨다. 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또 여행 좋아하는 우리또래의 아드님 이야기를 하시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던 그 때.

"아니 근데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 어떻게 배웠어요?"

네에? 분명 남편이 아닌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나>> 아하하, 저 한국사람이에요!

크흡..!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아~ 어쩐지 한국말을 네이티브처럼 잘하신다 했네. 아니 난 둘다 모로코에서 온 줄 알고, 모로코 사람치고 되게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네요."

세상에나 이렇게 편견 없는 분이 계시다니. 왠지 홍어를 잘 먹는 콩고왕자에게 자네 부모님이 광주사람이냐고 물으시던 어느 티비 프로그램의 편견없는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산행이 한층 더 유쾌해졌다.



지난 주말에는 집 근처 공원에 놀러갔다가 주차장에서 어느 택시기사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헬로. 웨얼 알유 프롬?"

거침없이 영어로 물어오시는 기사님. 영어를 하셔서 나는 굳이 통역할 필요가 없이 옆에 서 있었다.

"암 프롬 모로코."

"오오~ 모로코, 굿굿. 유얼 걸프렌드?"

기사님은 나를 가리키며 여자친구냐고 물으셨다.

"쉬즈 마이 와이프."

"오오~ 와이프."

기사님은 영어회화가 고프던 참에 마침 외국인을 만나 신나신 것처럼 보였다. 이번엔 나를 보며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유얼 보이프렌드, 직업? 한국에서 무슨 일해요?무슨 잡?"

남편 직업 물어보신다. 근데 왜 나한테도 영어를 섞어 쓰시지?

"엔지니어예요."

"오~ 엔지니어."

"네~"

"응? 아니, 한국말을 잘하네?"

"아~ 저 한국사람이에요, 하하하하."

"아 한국사람이구나. 어쩐지~ 하하하."



한국인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난 외모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다. 외국인 남편과 함께 다녀서 더 그런가? 덕분에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생겨 지루한 일상을 깨는 변화구가 되기도 한다. 국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받기 어려운 칭찬인 한국말이 유창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짜릿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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