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이름모를 보랏빛의 신비로운 꽃나무가 즐비한 포르투의 거리는 더운 날씨에도 자꾸만 걷고 싶어진다.이왕 많이 걸을 거면 알차게 뭐라도 배우면서 걷는 것이 낫겠기에워킹투어를 신청했다.
우리는 스무명 남짓 되는 그룹에 섞여 현지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포르투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라 놓친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래도 분명 유익한 시간이었다.
투어는 포르투 대학 앞의 분수대 에서 시작되었다. 흰 우산 겸 양산을 들고 갈색 페도라를 쓴 가이드님이 반갑게 오늘의 신청자들을 맞아주었다. 왠지 이탈리아의 남성들과 비슷해 보이는 차림새의 가이드님이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이탈리아 사람이셨다. 포르투에서 오랜 기간 살면서 그에 대한 지식을 쌓아 지금은 가이드로 일하신다고 했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고전적인 미가 느껴지는 포르투의 길거리 풍경
포르투 대학 앞 작은 광장에 있는 분수대.
포르투 대학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학교 앞 분수대에서 쉬는시간을 즐기는 세명의 여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의 옷과 비슷한 검정 망토 형태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의하면 학생들은 각자 리본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전공에 따라 색이 달라서 리본의 색을 보면 어느 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생들이 과마다 점퍼를 맞춰서 입고다니는, 일명 '과잠' 문화가 떠올랐다.
교복이 굉장히 클래식하고 예뻤는데.. 거의 영어 듣기평가를 치를 때처럼 귀기울여설명을 듣느라 교복 입은 학생들의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쉽다.
알마스 성당의 아줄레주
포르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줄레주'다.
아줄레주는 그림이나 문양이 그려진 도자기 타일 장식을 일컫는 말이다. 건물의 외벽, 내부, 천장, 부엌, 바닥, 의자 등등 포르투의 어딜가나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과거에 성행했던 인테리어 방식이다.
아줄레주는 일반적으로 푸른색이어서 스페인 또는 포르투갈어로 파란색이라는 뜻인 '아줄'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잘못 알려진 것이다. 진짜 기원은 이슬람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이슬람권 지역에서زليج(Zellij. 즐리쥬. 곱고 매끄럽다는 의미라고 한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것이 포르투갈로 넘어와 아줄레주가 되었다.
모로코는 아줄레주 장식이 시작된 지역에 속한 나라 중 하나이다. 따라서 모로코 역시 고성이나 오래된 집들에서 아줄레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와 다른 점은 그림보다 주로 기하학적 무늬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줄레주가 저렴해져서 누구든지 집안을 타일로 꾸밀 수 있지만, 예전에는 아주 고가의 장식에 속하여 부유한 집의 상징이었다고 남편이 덧붙여 알려주었다.
상벤투역의 아줄레주
다음 이동한 장소는 한 공원이었다. 가로수길이 특이하여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독특한 가로수
가이드님은 이 나무가 놀랍게도 플라타너스라고 했다. 플라타너스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보았는데 왜 이렇게 모양이 다른걸까. 의문을 갖자마자 가이드님이 설명을 해주었다. 거대한 나무 둥치는 사실 나무에 사는 박테리아 때문에 모양이 변형된 것이었다. 박테리아가 나무를 괴롭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외형만 보면 마법에 걸린 나무처럼 기묘하여 특별한 인상을 준다.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벤치에 앉거나 누워 웃고 있는 남자들의 동상이 있다. 이는 낮에 보면 웃는 표정으로 보이는데, 캄캄한 밤에 조명만 켜진 상태에서 보면 더이상 웃는 게 아니라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보인다는 점이 감상 포인트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작픔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하다. 웃음 뒤에 나름의 고통을 숨기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가?
좀더 걸어가면 건물들 사이로 잔잔히 흐르는 도우루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우루강이 등 뒤로 보인다.
도우루 강변. 동루이스 다리 앞에서.
도우루 강에는 동루이스 다리를 비롯하여 6개의 다리가 가로놓여 있다. 시간이 많다면 다리 하나 하나 걸어보면서 조금씩 다른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을 따라 1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으면 바다에도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날 바로 포르투를 떠날 예정이라 이번에는 시내에만 머물기로 했다.
도우루강 옆의 다닥다닥 붙은 주홍색 지붕의 건물들은 포르투가 왜 낭만의 도시인지 보여준다. 앉아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촉촉해지면서 머릿속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자동 재생된다.
우리가 신청한 워킹투어는 온라인으로 무료 또는 1유로만 내면 예약이 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투어를 마무리 하면서 각자 원하는 만큼 가이드님께 팁을 드린다. 가이드님은 우리를 배려해서 누가 얼마를 주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우리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팁을 드렸다.
어스름이 내리면 낭만이 더해지는 포르투
포르투 대성당(좌), 동루이스 다리 위의 야경(우)
동루이스 다리에서 내려보는 야경은 어둡고 아득한 강물 때문에 아찔하면서도 눈을 떼기 어렵게 아름답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어서 트램이 다리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다리의 미세한 떨림에도 오금이 저렸다. 그럼에도 빛나는 포르투의 밤은 자꾸만 아래를 내려다보게 만들었다.
밝은 오전의 동루이스 다리
다음날 아침. 포르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배낭을 매고 길을 나선다.
떠나기 전 모로 공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도우루강이 한눈에 보이는 모로 공원은 아마 포르투에서 제일가는 명소일 것이다. 맞은편 따사로운 붉은 지붕의 연속과 언덕 위에 흐르는 부드러운 버스킹 기타소리에 떠나는 발걸음을 떼기 어렵다.
어제 만난 워킹투어 가이드님은 이탈리아 사람임에도 포르투에 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분이 이 곳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까닭이 따로 있겠지만은,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만한 포르투의 풍경도 크게 한몫 했을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