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바이크 달리기를 잠시 쉬고 부산의 바닷가 한 편의점에 앉아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은 로마 콜로세움의 티켓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오픈 시간 정각에 예매를 하기 위해 우리는 둘다 콜로세움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며 온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도 그럴것이 콜로세움 티켓 중에서도 사악한 난이도로 소문이 자자한 언더그라운드예약에 도전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수강신청 때의 감각을 되살리며 나는 티켓이 열리기가 무섭게 예매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전세계의 여행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표를 구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페이지는 계속해서 오류가 났고 우리는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만 하염없이 반복했다. 그사이 남은 티켓은 점점 사라져 얼마 남지도 않았다. 쉽지 않을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남편은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다. 근데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로마, 거기서도 콜로세움은 남편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굳이 힘들게 언더그라운드 티켓을 구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콜로세움 하나만큼은 아쉬움 한톨 남기지 않도록 지하부터 차근차근 관람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2시간 여를 같은 편의점에 앉아서 군것질을 해가며 손가락은 여전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행여 이 기회를 놓칠세라 한단계 한단계 조심스럽게 밟아 나갔다. 마지막 결제까지 완료하고 돈이 정상적으로 빠져나갔을 때 우리는 기쁨에 벅차 환호했다.
남편은 나의 근성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면서 매우 고마워했다. 아마 그날이 결혼 이후로 남편에게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날이었을 거다.
아무튼 그리하여 우리는 로마 콜로세움에, 그것도 지하까지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들고 당당히 입장할 수 있었다.
이글을 읽는 독자님들 중에 콜로세움 언더그라운드 티켓을 구하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첫발에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므로 반드시 재차 시도해 보실 것을 추천하고 싶다. 순발력 싸움일 것이라 생각했던 콜로세움 예매는 알고 보니 인내력 테스트였다.
설령 시간이 이미 많이 흘러버렸더라도 묵묵히 재시도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미 매진된 것으로 뜨더라도 조금 더 기다리면 놀랍게도 취소표가 나오기도 한다.
감동의 콜로세움!
콜로세움 지하 통로
언더그라운드 관람은 스무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가이드와 동행하여 30여 분 동안 이루어진다.
지하에는 글라디에이터가 경기를 준비하는 공간, 쉬는 공간, 몸을 푸는 공간 등이 있고, 맹수를 가둬두는 공간, 아레나로 맹수를 내보낼 때 쓰는 엘리베이터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글라디에이터가 아레나로 걸어나오는 통로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전사들이 실제로 걸어나오는 듯한 영상을 재생해준다.경기 직전, 생사의 기로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하에서 아레나로 이어지는 통로
맹수를 올려보내는 엘리베이터
아레나로 걸어나오면 마치 내가 그 시절 로마제국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은 텅빈 관중석을 바라보며, 상상속에서 함성을 내지르는 수만명의 관중들로 경기장을 채워본다. 그 뜨거운 열기속에서도 서늘한 긴장감을 느꼈을 글라디에이터의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 하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콜로세움의 지하를 이루는 벽돌을 로마의 지하철역 내부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수세기의 세월을 버텨 현대까지 도시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는 위대한 건축물을 시공해준 고대 로마의 훌륭한 건축기술에 감사하다.
콜로세움을 나와서는 주요 명소들을 돌아다녔다. 스페인, 포르투갈보다도 한층 무더운 날씨에 땀이 흐르고 지쳐갔지만 시원한 물이 흐르는 트레비 분수에 다다르니더위도 조금이나마 씻겨내려간다.
나>> 너무 멋있다!
붑커>> 그러게. 근데 여보는 예전에 와 봤잖아.나 빼고..!
남편이 장난스럽게 입을 삐죽 내밀면서 삐친 적을 한다. 실은 이번 여행에서 다니는 유럽 국가들은 남편에겐 처음이지만나에겐 이미 가본 곳들이많다.
나>> 왔던 곳이어도 같이 오는 건 완전히 다르지! 처음오는 거나 다름없어.
붑커>> 오.. 감동이야!
빈말이 아니었다. 추억은 장소보다 사람으로 저장되는 법이라, 같은 곳이라도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다.
재작년에 함께 동남아를 여행할 때에 남편도 자기는 이미 다녀왔던 나라들을 오직 나와의 추억을 쌓기 위해 다시 방문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남편이 했던 것처럼 해주고 싶었다.
예전에 혼자 보았던 트레비 분수는사람들이 농담삼아 '충격과 공포의 트레비 분수'라고 부를 정도로 볼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그 당시 트레비 분수는 하필 보수공사 중이어서 여행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물은 메말라 있었고 주변으로는 철골이 빽빽이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진짜 제대로 된' 트레비 분수는 이번에 남편과 함께 보는 것이 내 인생에 처음인 셈이다.
트레비 분수의 낮과 밤
스페인 광장. 로마의 휴일을 열 번 정도 보았던 나로서는 로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포로 로마노. 과거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허물어진 공백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젤라또이다. 나는 그전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쌀, 레몬, 수박맛을 골랐다. 남편은 티라미수, 라즈베리, 딸기 등을 골랐지만 내가 고른 맛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젤라또는 이탈리아를 방문할 단 하나의 이유로 충분하다'며 만족하는 남편을 보니 뿌듯했다.
내 기준으로 쌀과 수박이 최고인 것 같다. 레몬은 그냥 너무 더워서 시원한 맛에 먹으려고 골랐던 것이고, 쌀과 수박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길을 걷다 종종 마실물이 나오는 급수대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우리는 그냥 마시는 건줄 알았는데 지나가는 시민 한분이 물 나오는 큰 구멍을 살짝 막아 윗부분의 작은 구멍으로 물을 내보내 마시면 편하다고 알려주었다.
"오~"
남편은 나에게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하더니 그대로 따라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붑커>> 우리 이탈리안은 물도 그냥 마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십니다. 자 보세용!
살짝만 막으라고 했는ㄷ..
남편은 이탈리아의 음식, 에스프레소, 사람들, 역사, 언어, 바이크등 모든 것을 사랑한다.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는 나라로 이탈리아를 꼽곤 했다. 특히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현지인들과의 만남,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나폴리, 그리고 피자. 이렇게 3가지는 남편이 이탈리아 여행중 가장 기다리는 것들이다.
이탈리아와의 첫만남이었던 로마. 온 도시가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이 보물같은 장소를 톺아보기에는 너무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