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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Aug 20. 2024

바이크 타고 아말피까지

이탈리아- 포지타노, 아말피

포지타노에서 1박이라도 했어야 했다. 별 생각없이 나폴리에만 숙소를 잡아두고 당일치기로 포지타노와 아말피를 다녀오려니 상황이 영 갑갑하게 되었다. 바이크로는 가고 싶은데 왕복운전을 하는 데에만 6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나폴리가 숙소가 저렴하고, 포지타노와 아말피는 허름하고 후기가 심상치 않은 호스텔이 아니면 가격이 말도 안되게 치솟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결정했던 나폴리 3박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냥 그 호스텔이라도 예약할걸 하고 살짝 후회가 되었다.

어떡하지? 그냥 기차타고 갈까. 기차표랑 바이크 대여 비용도 얼추 비슷했다. 그렇지만 비용만의 문제 아니었다. 우리는 바이크로 아말피 해변을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어떻게 할까? 찾아보니까 하루만에 왕복하기는  힘든 것 같아. 일단 그렇게 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라고 남편에게 말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해내기 어렵다' 또는 '해낼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청개구리처럼 도전정신이 발동하는 남편의 기질이 단숨에 바이크 대여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좋아. 되든 안되는 일단 해보자!"



바이크 대여점에 막상 도착해서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그럼요. 하루만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요!"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직원분은 많이들 그렇게 한다며 우리를 격려해주셨다. 그렇게 하루 동안의 대여가 시작되었다.


포지타노 가는 길


나폴리에서의 드라이브는 우리나라에서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었다.

우선 나폴리 중심가를 달릴 때는 궁둥이가 매우 아프다. 옛날식 돌로 포장된 도로라서 바퀴가 덜컥덜컥 굴러가며 골반뼈를 울려 윽악윽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폴리의 도로에서는 부산 저리가라 할만한 레이싱이 펼쳐진다. 차들과 바이크들이 닿을듯 말듯 마주쳐 지나치고, 서로가 서로를 추월하는 아슬아슬한 주행에 정신이 다 혼미해진다. 처음에는 남편이 중앙선을 넘어 다른 차들은 마구 추월하길래 경악을 했다. 그런데 가만보니 모든 바이크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포지타노로 가는 커브길에서도 같은 식으로 운전한다는 것이다. 불과 몇뼘만 벗어나면 천길 낭떠러지인 도로에서, 살살 달려도 오금이 저릴 판에 앞서가는 차를 추월하면서 슝슝 달려나가는 바이크들을 보면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다.

붑커>> 이것이 나폴리식 드라이브다.

나폴리의 복잡한 교통속에서 바이크가 가지는 메리트를 십분 활용하려면 현지인들이 타는대로 따라해야 한다. 바이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날씬한 몸으로 꽉 막힌 도로도 요리조리 빈틈을 뚫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점을 굳이 살리지 않는다면 렌트카를 빌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포지타노 가는 길에 잠깐 멈춘 곳, 천연 수영장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청록색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니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갈 길이 머니 이만 가던 길을 재촉한다.



몇몇은 저렇게 먼 바다까지 나가서 수영을 즐기던데 어우 나는 저것까지는 무서워서 못하겠다.


포지타노, 아말피의 해변도로에는 사진으로 담기 어려운 절경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비디오를 첨부했다.


남편은 단언컨대 여지껏 살면서 드라이브를 해본 곳 중에 최고의 장소라고 했다. 나에게도 그랬다.




드디어 도착한 포지타노의 해변. 장장 3시간을 거의 쉼없이 달려 골반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발가락도 먹먹했다. 나도 이럴진데 운전까지 한 남편은 더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크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위의 드라이브와 따개비처럼 해안절벽에 붙은 파스텔톤의 집들이 자아내는 이색적 풍경은 그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마 포기했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아 그냥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에라 모르겠다 뛰어들까.'라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한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다. 예전에 수영복 없이 바다수영을 한 후 젖은 옷 그대로 바이크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가 호되게 감기를 앓은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이라고 물에 젖는 것 쯤은 우습게 봤다가 생긴 일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오늘은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목이 타서 오렌지 주스 한잔을 마셨다.


지나가다 본 클래식한 차량과 같이 한 컷.


쨍한 파란색의 바다를 배경으로 남편과 같이 셀카를 한장 찍어보려고 팔을 길게 뻗을 때였다.

"사진 찍어줄까요?!"

지나던 행인 한 분이 쩌렁쩌렁 호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사실 바이크에 탄 상태로 찍고 싶었는데 마침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지다니 아주 반가웠다.

"네네! 감사합니다!"

중년의 나이에 비해 더 어려보이는 스타일로 멋을 낸 유쾌한 성격의 남자분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우리의 포토그래퍼는 카메라를 가로로 했다 세로로 돌렸다 하며 성심성의껏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때 우리 바이크의 뒤편으로 다가오던 차량이 빼액 경적을 울렸다. 문을 내린 운전자는 창밖으로 왼손을 내밀어 딱 봐도 불만이 가득한 손동작과 함께 이탈리아말로 소리를 질렀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해완료. '길 막지 말고 좀 비켜!'라는 뜻임이 분명했다. 우리의 포토그래퍼가 촬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도로쪽에 너무 가까이 서 있었던 것이다.

포토그래퍼는 이에 지지 않고 소리쳤다. 역시 이탈리아 말이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해완료. '넌 누군데 소리를 지르냐! 좋게 말하고 지나갈 것이지!'

두 사람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누가 들어도 욕인 것이 분명한 어조의 말들을 쏘아대며 손가락 욕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

"@;#×*+~;ㅗㅗ!!"

차가 떠난 뒤 우리는 미안해서 포토그래퍼에게 사과를 했다.

"오우 아니예요. 당신들이 미안할 일이 전~혀 아니예요. 노 프라블럼. 돈워리 돈워리!"

그러고서 그는 다시 유쾌하게 사진을 몇장 더 찍어주고 갔다.

이탈리아 남부의 사람들.. 정말 쿨하고 화끈하다.  

찍어주신 분이 뻐큐까지 날려가며 남겨준 멋진 사진!


졸음이 솔솔 와서 아말피의 한 커피숍에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남녀 한 분씩, 두 분의 바리스타가 일하고 계셨다. 여성분은 주문하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전 한국에서 왔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동공이 커진다.

"와!!저는 K드라마 팬이예요. K팝도! Bts, 블랙핑크!"

그분은 데시벨과 옥타브가 동시에 높아진 목소리로 자신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발랄하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갈 때에 옆의 남자직원분이 "나마스떼"하고 엉뚱한 인사를 하자, 그녀는 '내가 대체 뭘 들은거지?'하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나마스떼~?!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인도고, 코리아는 그거 아니야!"

우린 이탈리아에서 만난 K문화 지킴이의 살가운 배웅을 받으면서 키득키득 웃으며 카페를 나왔다.


절벽 사이에 놓인 아찔한 다리


아말피 해변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경. 오전 9시 즈음 출발했으니 운전한 시간만 하면 정말 6~7시간이 걸렸다. 나도 그렇고 특히나 남편은 다녀와서 땀범벅이 되었지만,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풍경을 사진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남긴 특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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