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에서 한 빵집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했는데 포르투갈의 전통 빵이 어떤 것인지 물어봐서 주문했다.
위의 동그랗고 작은 빵은 계피맛, 아래의 네모진 빵은 단호박맛이 강하게 났다. 둘 다 안에 달콤한 앙금이 가득했다.
빵, 그중에서도 디저트류의 빵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포르투갈이 최고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디저트 카페는 프랑스어로 이름 짓는 경우가 많던데, 그보다는 포르투갈어로 짓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트라에서 산책하기
이슬람 집권 당시에 지어진 무어의 성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해변으로 가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인 호카곶이 나온다. 언뜻 보면 제주의 섭지코지 같기도 한 것이, 이국적이기 보다는 친숙함이 더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과거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인들에게 있어 호카곶은 그저 경치 좋은 땅끝 전망대가 아니라, 미지의망망대해로 나아가려는 야망을 타오르게 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호카곶 기념비에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라는 16세기 포르투갈 시인의 자못 비장한시구가 적혀있다.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호카곶
호카곶을 거닐다가 둘이서 사진을 찍고 싶어 주변에 찍어줄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기념비 앞은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여긴 조금 떨어진 곳이라 걸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 마침 저쪽으로 걸어가는 한 커플이 보였다.
나>> 엇? 저분들은!
붑커>> 왜? 누구야?
나>> 아, 아까 지나치다가 들었는데 한국분들이시더라고.
붑커>> 그래?!
한국인이라는 말에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냉큼 그쪽으로 달려간다.
붑커>> 저기요~! 저기요오~!
말릴 새도 없이 남편은 '저기요~' 하면서 커플을 불러세운다.
'저기요'라고 하니까 남편이 한국에 막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한 때가 생각난다. 그날은 남편이 일 끝나고 회식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날이었다. 집에 온 남편은 나에게 한국말을 새롭게 배웠다며 자랑했었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는 '자기야'라고 하는 거지? 근데 왜 '자기야'라고 해? Honey라는 뜻 아니야?"
오 마이 갓. 까딱했다가는 남편이 밖에서 아무에게나 고백을 해버리게 생겼다. 그날 나는 '자기야'와 '저기요'의 차이점을 남편에게 완벽히 숙지시켰다.
그후로남편은 아주 신나게 '저기요'를 남발하며 기회만 생기면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침없이 불러댔다.
여기 포르투갈에 와서도 예외는 없었다.
붑커>> 저기요~~!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두 분이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저기요'라며 다가온 사람이 외국인인 걸 보고는 한번 더 흠칫하신 것 같았다.
붑커>> 안녕하세여~ 잘 지내세여?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남편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잘 지내냐고 물어본다. '잘 지내세요?'는 영어의 'How are you?'처럼 인삿말 뒤에 꼬리로 붙어오는 말이 아님을 언젠가는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귀엽기도 해서 아직 굳이 고쳐주지는 않고 있었다.
붑커>> Picture, 해 주세요?
"아~ 네네 찍어드릴게요!"
이제 남편은 내가 없어도 한국말로 웬만큼(?) 소통이 된다.
역시 사진은 우리나라 분들이 최고로 잘 찍어주신다.
카스카이스는 신트라 아래에 있는 해변도시인데 갈까 말까 하다가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남아 들렀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 바다가 예상외로 너무 예뻐서 안들렀으면 섭섭할 뻔했다.
지옥의 입이라고 불리는 곳. 이날은 바다가 잔잔한 편이라 수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 거대한 바위 아래 구멍으로 거센 파도가 치는 날에는 정말 지옥의 입구처럼 보일만도 하겠다.
작고 한적한 카스카이스의 해수욕장
붑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여기서 1박 했을 텐데.
나>> 그러게 말이야.
붑커>> 나중에 여기만 따로 며칠 와서 쉬면 좋겠다.
나>> 그래, 담에 꼭 다시 오자.
해가 슬슬 넘어가려는데도 카스카이스 해변에는 아직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도 바다에 들어가려다가 두 명의 동양인 청년들이 놀고 있는 걸 보았다. 가까이 가니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나>> 여보야, 저기 한국사람들이다.
붑커>> 진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은 성큼성큼 다가가 인사를 한다.
붑커>> 안녕하세여~! 잘 지내세여? 나는 한국 사람!
반죽도 좋다.
남편이 한국말을 하자 두 분은 '오우 뭐야!'하고 깜짝 놀랐다가 껄껄 웃으며 '한국에서 오셨어요?'하고 남편에게 묻는다.
붑커>> 네~ 한국 쵸아여~ 진짜!
짧은 단어지만 한국말을 하는 남편이 신기했는지 두 분은 연신 '우와 우와'하고 감탄을 했다. (역시 언어는 자신감이 있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구나.) 한국말로 하나된 세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악수에 가벼운 포옹까지 나누고 헤어졌다.
여행 중 한국사람을 만날 때에도 모로코사람을 마주칠 때만큼 반가워하는 남편.집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하는 그가 가끔은 나보다도 더 한국사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