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같은 비가 여름비처럼 내리는 금요일 아침이다. 시커먼 비구름이 깔려 여느 아침 시간에 비해 더 어두운 작은산 초등학교. 운동장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겹쳐 찍혀있는 아이들의 발자국들 위에 빗물이 고여있고, 그 곳에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모차르트 소나타 1악장 Allegro con brio가 휘몰아치듯 연주되는, 우산을 든 남자의 귀에 꽂힌 이어폰.
“우르릉…”
속이 꽉 체한 거인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같은 천둥이 떨리는 스피커처럼 고인 물에 와 닿아 파문을 만든다. 교문을 통과해 회색 시멘트로 포장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오는 검정 우산 하나. 검정 우산을 든 남자의 검은 구두는 운동장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빗물을 뱃머리처럼 가르며 오르고 있다.
“철벅 철벅”
교문에서 운동장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다 오른 검정우산은 잠시 서서 비가 내리는 운동장을 잠시 바라본다. 그리고 운동장의 가장자리의 붉은 보도블럭을 지나 동쪽 현관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는 검은 바지.
그 길의 왼쪽에는 늘어선 소나무들이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빗방울을 모아 떨어뜨리고 있고, 그 그늘 아래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사자, 기린, 호랑이, 곰이 울부짖는 표정으로 검은 안경을 쳐다보고 있다. 먹이를 코앞에 둔 짐승들처럼 비를 맞은 청동 짐승들의 송곳니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길을 지나 동쪽 현관으로 우산을 털며 들어가는 검은 색 옷의 남자. 현관으로 남자가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4층 가장 왼쪽에 있는 교실의 불이 노란 빛으로 환하게 켜진다.
“다음 곡은 김건모의 다섯번째 앨범, <Myself>에서 골랐습니다. 12월이 되면 누가 뭐래도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데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여러분 각자의 크리스마스에 얽힌 추억들을 떠올리며 들어보시죠. rainy christmas.“
남자의 이어폰 속 라디오 dj가 소개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이고, 추버라. 무슨 겨울비가 장마처럼 오네. 벌써 크리스마스 노래가 나오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선 검정 남자는 이 교실의 담임인 진희다. 진희는 옷에 묻은 물을 털어내며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컴퓨터의 비번을 입력하고 부팅이 되는 동안 물티슈를 뽑아 아이들 책상을 하나하나 알콜소독제를 뿌려가며 닦는다.
“여러분만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보셨나요? 혹시 그 추억 속에 한 아이가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내가 찾았던 그 아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집니다. 함께 듣겠습니다. 연애소설 ost에서 골랐습니다. 손예진의 내가 찾는 아이.“
책상을 다 닦은 진희는 기름걸레로 교실 바닥과 아이들 자리 사이사이를 밀며 바닥 청소를 한다.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나나나나…“.
이어폰 속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진희는 쓰레기통 앞에서 기름걸레를 탁탁 털고 빗자루로 쓸어모아 쓰레기통에 먼지덩어리들을 버린다. 그 다음 진희는 교사 책상 옆에 있는 커피메이커의 필터와 유리용기를 들고 교사연구실로 가서 씻어 물을 채워 온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그때 그 아이를 마음 속에 두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겠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겠지요.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늘 자리잡고 있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이소라의 노래로 들어보겠습니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쓸쓸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귓 속 라디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진희는 자리에 앉아 커피원두를 갈아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린다.
“쪼르르르르르“
유리용기에 뜨거운 커피가 떨어지고 머그컵에 한 잔을 부어 입으로 가져가는 진희.
“후… 후릅! 하… 좋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 없는 밤은 너무 쓸쓸해. 그대가 더 잘알고 있잖아요.“
“그때 그 아이라…”
진희가 나즈막히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