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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합의 부부, 서로를 비추는 두 철학의 궤적

“ 서로 달라서, 그래서 완전해진 인연에 대하여”

by 최국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내와 나의 삶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하나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겉으로 보면 우리는 정반대의 사람 같다.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변화된 세상을 꿈꿨고,

아내는 세상과 부드럽게 화해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았다.


나는 진취적인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감성이 풍부하다.

아내는 야리야리한 천생여자처럼 보이지만,

머리의 회전이 빠르고 추진력이 대단하다.

나는 세상과 싸우는 법을 배웠고,

아내는 세상을 품는 법을 알았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끝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정의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진실을 드러내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약자의 눈물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세상은 진실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진실을 감싸줄 사람의 온기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 온기를, 바로 아내에게서 배웠다.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한 길을 걸었다.

그녀는 싸우지 않고도 세상을 바꾸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보다 눈빛으로,

논리보다 온기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병든 길고양이를 품에 안고,

이웃의 사정을 듣고,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과 자수는

삶을 꿰매는 예술이자, 고요한 기도의 형태였다.


아내의 신앙은 불교의 연기(緣起)를 닮았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오고, 인연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픔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세상의 교회를 떠난 뒤에야 신의 진짜 얼굴을 본 것 같다.

하나님은 건물 안에 있지 않았다.

말 못하는 장애인을 돌보는 순간,

홀로 기도하듯 누군가의 등을 토닥이는 그 시간 속에 있었다.


아내는 불교의 철학을 통해 같은 진리를 보았다.

신의 이름은 달랐지만,

우리가 믿은 것은 결국 사람과 생명의 존엄이었다.

그녀는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겼고,

나는 신앙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길에서 같은 빛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정반합의 관계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아내는 세상을 품어 안았다.

나는 강함으로,

그녀는 부드러움으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싸우지 않아도 서로를 닮아갔다.


아내의 부드러움이 내 언어를 따뜻하게 만들었고,

나의 신념이 그녀의 삶을 단단하게 했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자, 서로의 쉼터가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믿는다.

신앙이란 특정한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일이라고.

그 사랑이 곧 종교이고, 철학이고, 예술이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세상의 빛을 기록했고,

그녀는 그 빛을 손끝으로 꿰맸다.

나는 외부를 향한 정의를,

그녀는 내면을 향한 자비를 선택했지만,

결국 그 둘은 하나의 언어로 이어졌다 ,사랑이라는 언어로.


삶이란 결국 서로 다른 빛이 만나

하나의 세상을 이루는 일이라고.

아내와 나는 그 빛의 궤적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왔다.

젊은 날의 불꽃은 사그라졌지만,

대신 오래된 등불 하나가 남았다.

그 등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를 비추는 믿음이며,

끝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인연이다.


나는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진실의 언어와 사랑의 손길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지점에,

내가 사랑해온 한 사람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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