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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늘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통과 축복 사이에서

by 최국만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아니, 길게 느껴졌다기보다 매일이 버텨내야 하는 하루였다.

서울 아산병원에 아내의 항암 표적치료를 받으러 숱하게 오르내리던 겨울.

어떤 날은 MRA 촬영 때문에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섰고,

또 어떤 날은 하루 먼저 서울에 올라 숙소에서 잠시 몸을 누인 뒤 진료를 받았다.


괴산에서 서울까지, 병원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네 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아내는 병중인데도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준비했다.

밖은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이고, 찬바람이 유리창을 흔들었다.


그 겨울, 추위도 두려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빨리 서울에 도착해서 진료를 잘 마치는 것.’


아내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더 힘들었지. 나는 차에서 잠만 자면 됐잖아.”


그 고마운 말을 들으며 나는 더 아팠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 계절이었는지,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낸 날들이었다.


새벽 고속도로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각자 목적지가 있고, 가야 할 길이 있는 사람들.

그 중 한 대가 바로 우리가 탄 차였다.

운전대를 잡고 서울을 향해 달리며 나는 생각했다.

모두가 각자의 겨울을 견디고 있겠구나.


나의 겨울들은 늘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고비는 유난히 겨울에 찾아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겨울.

친구들은 배정받은 고등학교의 이름을 들으며 설렘으로 겨울방학을 보냈지만,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갔다.

그 겨울의 바람은 유독 차가웠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된 일들을 했다.

여성 봉제 공장에서 일해 보기도 했고,

험한 일터에서 육체를 소모하며 버틴 적도 있다.

하루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쫓겨난 날도 있었고,

일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포기하고 걸어서 한 시간을 울며 내려오던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삶의 의지도, 목표도, 꿈도 없었다.

그저 망가지지 않은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절망의 순간마다 겨울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삶의 방향을 새로 잡을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계절이었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이성은 또렷해졌다.

그 겨울의 결단은 내 삶을 바꾸었다.


고졸 검정고시 합격, 대학 입학,

대학에서 만난 아내,

그리고 방송국 입사.


이 모든 전환점도 신기하게 겨울이었다.


지난겨울은 고통의 계절이었지만, 올해 겨울은 축복이다


지난해 겨울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아팠던 계절이었다.

하지만 그 혹독한 계절을 지나고

지금 맞이하는 겨울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아내는 다시 움직이고,

우리는 예전처럼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

아내의 작은 회복, 작은 웃음, 작은 걸음 모두가

차가운 겨울 위에 수놓아지는 한땀 한땀의 희망이다.


나는 안다.

겨울은 늘 나에게 한과 고통을 주었지만,

그러면서도 매번 새로운 축복을 함께 가져다준 계절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 겨울은 두렵지 않다.

우리가 함께 버텨냈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아내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겨울은 결국 지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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