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아니라 근육인데요?
내 동생 금동이는 키 180에 ‘낼모레 100키로’라고 놀릴 정도로 체격이 크다. 하지만 외할머니 눈에 금동이는 훤칠한 장군감이고 눈에 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그런 귀한 손주다. 반면에 ‘여자 금동이’인 키 169에 적정체중인 나는? 외할머니에겐 엄마처럼 다이어트를 해야 할 관리 대상이다. 할머니의 외모 차별은 밥상 앞에서 더 두드러진다.
외할머니는 원체 식욕이 없고 깡마른 편이신데 밥 먹는 걸 즐기지 않으시는 게 분명하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해녀로 횟집에서 일해 요리 솜씨가 매우 좋아 지금도 노인정에서 다른 할머니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계시지만, 그런 외할머니 댁에 가도 나는 배불리 밥을 먹은 적이 없다. 인터넷에는 할머니 댁에 보냈더니 몸이 확대된 손주들의 이야기가 유머처럼 올라오지만 나의 할머니는 밥상 앞에서도 절제를 강요한다.
“이제 재기(그만) 먹어도 될 텐데.”
내가 밥 한 그릇 더 달라 청하면 외할머니는 나의 식욕을 꺾어 버린다. 반면에 금동이는? 왜 더 먹지 않냐며 먹는 걸 절제할 줄 안다며 기특해하신다. 그 꼴을 보는 나는? 환장한다. 정말.
반쪽 사랑은 거절합니다.
나 또한 외할머니의 편애를 묵인하지 않는 손녀다. "엄마 난 할머니 보러 안 갈래. 할머닌 금동이만 있으면 되잖아." 이 말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아니라며 팔짝 뛰셨지만 그 후 난 바쁨을 핑계로 할머니를 방문하지 않았고, 할머니 또한 코로나로 가족들과 거리두기를 하며 나와는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 중이시다.
금동이 결혼 전 마지막 명절. 엄마는 곧 잔치에서 볼 텐데 하며 금동이를 제주에 오지 못하게 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할머니는 금동이를 위한 명절상을 거나하게 차려놓았다가 펑펑 우셨다고 한다. 엄마는 못마땅해하며 내게 그 소식을 전했고, 나는 엄마가 한가득 포장해온 음식을 보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한 번은 내게만 밥을 덜 먹으라는 할머니에게 직접 따진 적이 있다. “할머니! 뚱뚱한 금동이나 살 빼야지. 왜 나만 밥 먹지 말래?" 할머니는 말한다.
"느가 왕따 당할까 봐 그렇지…"
여자는 예뻐야 하나요?
할머니 옆집의 손주는 과체중인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부모가 맘고생을 했다. 그러니 그 사정이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 입에도 올랐을 거다. 하지만 그 학생이 왕따라는 소문은 할머니들 입에서 부풀려진 소문일 확률도 높다. 다만 내 할머니가 동네 학생이, 것도 '여자가', 남들보다 통통하다는 사실만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부정적 원인'으로 보는 건 확실하다.
감귤밭에 귤 타러 갈 때조차 곱게 화장을 하고 가는 할머니. 그 할머니는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의 외모를 지적하고, 적정 체중인 나에게도 밥 두 공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엄마는 20대에 숏컷을 하고 톰보이처럼 입고 다녔다. 그러나 엄마 또한 외할머니의 외모 강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했다.
“키만 크면 됐어. 얼굴은 싹 고치면 되니까. 넌 외모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