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눈엔 그라데이션 외모
똑 닮은 남매
자존감과 관련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내 남동생이다. 스물한 살부터 비혼 주의자를 자처해 온 내가 제주에 오니 역시나 ‘왜 결혼을 하지 않냐?’는 주변의 우려를 빙자한 잔소리를 듣고 있다. 문제는 그 잔소리의 주체가 내 부모님이 아니라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혼을 앞둔 동생의 말에 의하면 ‘누나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연애를 못 해. 나는 내가 없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거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결핍이 많아 겹겹이 세운 벽으로 나를 보호하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자신의 존재가 약하다고 평하는 동생이야말로 제 부족한 점마저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이 ‘짜식 좀 멋지네.’하고 생각하게 한다.
자의식이 큰 나와 약한 내 동생. 우리는 다르면서도 똑같이 생겼다. 남매가 닮은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언젠가 친구가 내 집에 와서 같이 잔 적이 있다. 기상 후 아침 식사에서, 내 친구는 식탁 맞은편에 앉은 내 동생을 보며 ‘왜 문는이가 머리를 잘랐지?’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반씩 나눠 상안부와 하안부를 따로따로 대 봤더니 너무나 똑같아서 충격을 받았더랬다. 이렇게 똑 닮은 나와 동생이지만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훤칠하게 잘생긴 사내애. 나는 동네에서 소문난 못생긴 여자애였다.
“말다! 느 손주 못생겼쪄.”
대학생이 되고서도 나는 화장을 늦게 배운 편이다. 취업을 하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길래 3학년이 돼서야 친구들의 지도로 화장을 시작했다. 팩트를 꺼내 퍼프를 얼굴에 톡톡 두드리는 나를 보고 외할머니는 눈망울이 촉촉해지셨다.
“아유 우리 문는이가 화장을 하네…”
망사로 된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감귤밭에 귤 타러 나갈 때조차 정성 들여 분칠을 하는 동네 멋쟁이 외할머니 눈에 자신을 가꾸는 손녀딸이 기특해 보이나 하고 생각했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동네 할머니를 찾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손녀 못생겼다고, 그렇게 놀려대더니 걔네 손주 봐봐! 지금 뭐하고 사나!”
나중에 엄마한테 듣기로 외할머니의 분노는 꽤 오래전 발생한 것이었는데, 세 살짜리 나를 등에 업고 놀러 간 자리에서 니 손주랑 내 손주랑 결혼시키자는 할머니의 농을 동네 할머니가 진담으로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말다! 느 손주 못생겼쪄.”
농담 한 마디가 가족 싸움으로 번진 그날의 일 때문인지 외할머니는 내가 멀끔한 모습으로 할머니 댁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얼굴도 모르는 동네 할머니의 손주 안부를 묻곤 했다.
제주 00동 연예인의 악성팬
외모를 가꾸고 부지런한 외할머니를 닮아선지 나의 엄마도 연예인 못지않은 삶을 산 적이 있다. 기상 후 동네 사우나에 가서 한 시간 운동을 하고, 씻고 나와 화장을 하고 미용실에서 이모님 손에 드라이까지 하고 출근하던 엄마. 나는 쉬는 주말에도 엄마의 맨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던 엄마는 늘 화장을 곱게 하고 옷을 차려입었었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가 외할머니로부터 엄마에게 물려내려온 집안의 기질인가 보다 하면서도, 정작 그 피를 갖고 태어난 나는 엄마나 외할머니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지도, 남을 위해 외모를 정성껏 가꿔 본 적도 없다.
젊은 애 치고 잘 꾸미지 않는 내게 엄마는 불만이 많은 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꾸밈새에 불만이 많은 건 외할머니다. 엄마가 홀로 친정을 방문할 때면 외할머니는 매의 눈으로 엄마의 전신을 살피고 '살이 붙었네.', '눈가에 주름이 늘었네.' 하는 말로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나에게 ‘자기 정도면 괜찮지 않냐.’는 대답을 요구하며 나를 들들 볶는다. 요즘 연예인들은 관심과 애정을 빙자해 외모를 지적하는 팬들 때문에도 고생이라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그런 악성팬을 달고 있는 엄마가 안쓰럽지만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까 싶기도 한 게 내 본심이다.
이제는 잊힌 금동이를 추억하며
누구보다도 외모에 엄격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의 벽을 허무는 건 내 동생 금동이다. ‘금동’이는 동생의 아명이다. 이름은 본래 남을 위한 거라던데, 금동이는 금동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주인에게 한사코 부정당하며 잊혀지길 강요당해왔다. 동생은 ‘금동’이란 이름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해 그 이름을 여기 적으면서도 동생의 원망이 두렵다.
어쨌든 그 금동이가 금동이가 된 데는 귀한 아들로 태어난 손주의 이름을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는 어르신들의 당부에 부모님이 이름 짓기를 고심하다가 어느새 7년을 금동이로 살아버린 탓이다. 결국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돼서야 금동이란 이름은 사라졌다.
'금은동' 중에 금과 동이 들어갈 정도로 얼마나 아까웠으면 외할머니는 대뜸 태어난 손주에게 금동이라 했을까? 그런 금동이를 만날 때면 매섭던 외할머니의 눈은 반달이 되고 연신 금동이의 몸을 금불상을 쓸어내리듯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