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맥도날드에서 느낀 불평등
가난과 제사를 연관 지어 생각할 때면 인도가 생각난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모두가 설레는 마음을 품고 유럽으로 떠날 때, 내가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향했던 나라는 인도였다. 모든 여행자들마다 인도에 대한 낭만과 감상이 다르겠지만, 당시 내 눈엔 인도 빈민층들의 눈에 띄게 가난한 삶과 그럼에도 집안 곳곳과 일상생활에 신들이 함께한다는 믿음이 생경하면서도 신기했다.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라마 신은 알고 계신다.)
무교에 불신론자였던 나에게 ‘신’은 아주 먼 존재였지만, 바라나시 화장터 근처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은 ‘신을 향한 믿음’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다. 어둡고 더러운 숙소 침대에 누워있으면 수시로 상여꾼들이 지나갈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갠지스강을 뒤덮은 죽음의 장막이 너무 커서였을까? 그 강을 끼고 벌어지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에 저마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밥값으로 느낀 불평등
삶과 죽음 사이, 점선이 그려진 것 같은 바라나시의 풍경과 그에 대한 감상은 여러 여행자들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삶에 대한 경이보다 자본주의에 찌든 현대 사회의 배낭 여행자의 눈으로 본 바라나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 닿기 전 나는 뉴델리, 자이푸르, 아그라를 거쳤는데, 뉴델리에서 자이푸르로 향하던 기차에서 본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한다. 사막으로 향하는 황무지를 지나는 기찻길 옆으로 쓰레기가 이룬 둔덕들이 늘어서 있었고, 화장실이 없는지 주민들은 둔덕 곳곳에 점과 점으로 띄어져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소년이 보여준 학교 영어 공책에는 ‘난 학생이에요.’라는 말 대신 ‘1달러 주세요.’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2011년 2월 당시, 1달러로 약 44루피를 환전할 수 있었다. 인도인들이 즐겨 마시던 짜이는 5루피. 내가 사 먹은 라씨는 30루피. 커리와 난으로 이뤄진 백반 정식은 45루피. 뉴델리 쇼핑몰에서 산 맥도날드 버거는 84루피였다.
당시 경제에 무지했던 나는 각 나라의 물가를 비교할 수 있는 빅맥 지수가 뭔지도 몰랐고, 인도의 빅맥지수가 세계 최하위라는 것도 당연히 몰랐지만, 뉴델리 쇼핑몰에서 사 먹은 맥도날드 햄버거가 그간 인도에서 먹었던 밥 중 가장 비싸게 느껴졌다. 계산대에서 상류층으로 보이는 인도 남자가 햄버거를 가득 포장해 몇 백 루피가 넘는 금액을 카드로 결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도의 빈부격차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한 현세 < 백지 수표 내세
임종을 위해 인도 전역에서 바라나시로 몰려드는 데는 갠지스 강에 묻혀 카르마(업보)를 끊고 싶은 인도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마다 제단에 꽃을 바치고 초를 켜고, 강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가트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호하면서도 경건하다. 그 단단한 믿음으로 가난한 현세의 고통과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 하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알 이즈 웰!(모든 게 다 잘 될 거야!)'을 외친다.
그러나 그 종교 바깥의 이방인으로서 나는 그들이 의식을 치루기 위해 사는 꽃이나 촛불값 등을 아끼면 끼니 걱정은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화장터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면, 자신을 네팔 유학생이자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가난한 인도인들을 위해 돈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심지어 한번은 가난해서 장작값을 사기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을 한다고 '호스피스' 병동을 보러 가지 않겠냐 해서 찾아간 곳에서, 강제로 인도인들에 둘러싸여 몇 백 루피를 뜯기기도 했다. '알 이즈 웰!'을 외치고 신들을 사랑하면서도 외국인들에겐 숨쉬듯 사기를 일삼는 인도인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종교가 대체 뭘 가르치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기를 치는 대담함이 왜 기득권들에 대한 원망의 불씨로 쓰이지 않나 했다.
내 눈엔 그들의 가난한 현세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불확실한 내세를 위해 현재에 순응하고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