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이면 집을 샀지

가난했던 구 무주택자의 서러움

by 문는
안끄레와 바끄레, 독립적인 두 가족


이사하기 전까지 나는 성할망(친할머니의 제주 방언)이 사는 ‘안끄레’에서 다섯 걸음이면 닿는 ‘바끄레’에 살고 있었다. 제주에는 ‘안끄레’와 ‘바끄레’가 있는데 안집과 바깥 집은 마당을 공유해 살지만 부엌이 따로 있고 두 가족의 생활은 독립적이다. 그래서 안끄레에 사는 성할망과 성하르방은 제 밥을 손수 챙겨드셨지만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와 내 동생의 끼니를 챙겨주지는 않으셨다.


태풍 매미에 아빠가 다친 날, 길어질지 모르는 부모의 부재라는 긴급상황에 딱 한 번 안끄레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횡횡한 바람이 내 몸 안팎에서 몰아치던 그날 저녁, 성할망이 처음으로 차려준 밥상에는 덩그러니 흰밥과 계란후라이가 올라왔었다.


가난은 물리적 거리를 만든다.

나의 조부모님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으신데, 성하르방은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셨고 성할망은 동네에서 소문난 백치셨다. 그리고 땅부자들로 둘러싸인 김 씨 집성촌에서 성이 달랐던 나의 친가는 지독히도 가난했다. 엄마는 지독한 가난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했다. 촌에 사는 배움이 짧은 가난한 시부모. 엄마는 친정보다 기울어진 결혼을 하며 어느 정도 시집살이를 당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을지도 모른다.


가난해서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 우리 가족과 조부모님의 관계는 늘 데면데면했다. 내 기억에 성하르방은 말이 없는 조용한 분이셨고 자식들한테 해 준 게 없기 때문에 그다지 요구가 많지도 않으셨다. 육지 시부모처럼 다달이 용돈을 달라 하거나 안끄레에 와서 밥을 차리게 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안끄레로 간식을 갖다 드리거나, 가족 식사를 하러 좋은 식당에 모시고 가면 왜 허투루 돈을 쓰냐며 오히려 성내시는 분이셨다.


“큰며느리가 아니면 누가 하냐!”

하지만 그런 하르방도 큰며느리가 생기자 본인이 손수 차리던 제사를 당연하게 큰며느리에게 넘기셨다. 요리라곤 해본 적 없이 귀하게 자란 엄마는 결혼하고서야 요리책을 샀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외할머니에게 연락해 조리법을 물어봐야 했다. 그렇게 1년에 8번. 엄마는 10년 넘게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로서 홀로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들의 밥상을 차려야 했다.


내 기억 속 점잖았던 하르방과 엄마의 기억 속 큰며느리를 몰아세우던 시아버지. 그 간극이 커서 엄마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그 둘이 동일인물이 맞았나 싶기도 하다. 가진 게 없고 그래서 나눠 줄 것이 없어서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했던 하르방. 바끄레에 사는 손주들에게 말 한마디조차 편히 못 걸었던 하르방. 요망지고(‘야무지다’의 제주 방언) 독한 큰며느리가 어려워 안끄레, 바끄레의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멀었던 하르방. 그런 하르방조차 조상님들의 밥상 차림에 한해선 단단한 벽이었다.


그 돈이면 집을 샀지.


알뜰한 엄마는 매일 가계부를 기록한다. 빼곡하게 적힌 생활비와 경조사비, 특수 지출비 등. 지난해 가계부에 적힌 지출 비용과 대조하여 올해의 예상 경비를 책정하기도 한다. 제사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작년 제사 참석 인원과 음식량, 상에 올라갈 산적 수 등을 헤아려서 목록화 한 뒤 예상 비용을 정하고 그에 맞춰 장을 본다. 물가가 오를수록 장보기 비용도 늘 테지만, 엄마의 상차림 비용은 다년간 쌓인 데이터로 인해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 덕분에 음식 준비에 드는 시간도 짧아지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도 줄어든다.


이렇게 요망진 엄마도 30년 넘게 무주택자였는데 제사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할 때마다 하는 말이 ‘그 돈이면 집을 샀지’다. 참여하는 가족의 수와 차리는 제사상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사 준비에 드는 비용은 평균 30만 원 이상이다. 엄마는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없는 살림을 쥐어짜며 ‘조냥(절약)정신’을 발휘해야 했다. 그럼에도 큰며느리로서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엄마는 가난한 시가로부터 어떤 격려의 말도, 상차림비도 받지 못했다.


아무리 당시에 물가가 낮았다 해도 8번의 상차림 비용을 저축했으면 목돈이 됐을 것이다. 그때는 저축 이자가 높았기 때문에 상차림비를 더 유용한 곳에 투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난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도, 가난을 물려준 조상님들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려야 하다니. 자본주의적 사고에 찌든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다.


도대체 제사상을 차리고 제례를 행하는 데는 어떤 강력한 믿음이 있는 걸까? 이미 고인이 되신 하르방과도, 평생 제 손으로 제사 음식을 만든 적이 없는 성할망에게도 물어볼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에겐 제 죽음보다 무서운 게 죽어서 조상님에게 혼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