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제사장의 k-장녀

조상님도 눈칫밥 얻어먹기 참 힘들다

by 문는

우리나라의 제사도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그럴까?


젊은 사람들에게 제사는 생소하고 불편한 전통이며 논란거리다. 제사를 지내는 집과 지내지 않는 집의 문화 차이가 심할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집들끼리도 가풍에 따라 규범과 절차가 다르다.


나의 친가에서도 제사는 늘 뜨거운 감자인데, 홀로 10년 이상 제사상을 차리던 엄마가 ‘큰 형님’이 되고 작은 엄마들이 생기면서 엄마가 차리던 제사상의 수도 점차 줄었다. 나는 ‘프로 제사장’의 k-장녀답게 제사 음식에 한해서는 훌륭한 주방 보조다. 하지만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 두부와 동그랑땡을 부치고, 조기살이 분해되지 않게 혼신을 기울이며 매운 연기를 마시다 보면 주방 보조로서의 자부심보단 불평불만이 입을 삐집고 나온다.


제사상 한 상차림을 위해 필요한 음식과 술, 떡, 과일. 제사 음식을 다 준비한 것만으로 엄마들의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제를 올리는 아빠들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순서에 맞게 음식을 내오고, 제를 지낸 후 다 같이 음복할 밥상을 차리고, 과일을 깎아내야 하고, 이후 상을 치우고 모든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닦아야 한다. 오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제를 올리고 가족들을 먹이고,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엄마들의 노동의 수고스러움을 아빠들은 알까?


눈칫밥 얻어먹기 참 힘들다


제주로 귀향 후 나는 희귀병에 걸린 엄마의 간병을 딸에게 떠민 아빠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엄마가 오랜 시집살이로 맘고생을 했기 때문에 희귀병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큰아들보다 '큰며느리의 의무'로만 여겨지는 제사가 무척 싫었다. 설에 합제 문제로 어르신들과 아빠들의 갈등이 있었는데, 난 여기에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목소리는 낄 틈도 없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났다.


급기야 나는 조상님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개수도 따지는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제사에 대해, 왜 그 제사를 차리는 엄마들의 의견은 묻지 않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진동하던 수면 위로 폭탄이 던져졌고, 펑! 펑! 바닷물이 용솟음하듯 군데군데 소란이 벌어지며 몇 번의 고성이 오갔고, 그로 인해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생겼다. 그 소요 속에서도 처음 폭탄을 던진 장본인인 나는 생각했다.


'조상님들도 밥 먹다 체하겠네.'


한 지붕 두 가족


이 일에 대해 나는 가족 누구에게도 죄송하다고 한 적이 없다. 언젠가 누군가는 그 불합리를 지적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제사를 차리는 주체인 엄마, 아빠들이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상님의 밥상차림과 관련해 제사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데는 불만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날의 나의 분노와 지적을 받아준 어른들의 관용 정신에 감사하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선지 우리 가족의 제사 문화는 쭉 변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친가 일원 중 누가 제사 찬성파인지 반대파인지를 유심히 살폈다. 특이한 점은 비교적 제사에 대한 의무감을 크게 느끼는 첫째와 둘째들은 제사로 벌어지는 갈등을 불편해하고 제사를 간소화하려는 입장이었고, 오히려 그 동생들이 제사를 옹호하는 파였다. 거기다 예상외로 내가 두둔했던 엄마는 제사를 지내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엄마와 자식들 사이엔 제주에서 서울만큼의 의견 차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맡은 제사는 엄마 손에서 끝내기로 했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엄마에게 제사를 계속 지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빠가 며칠간 혼수상태였을 때 우리가 조상님들을 잘 모셨기 때문에 아빠가 살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앞으로 자식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제주 바다 건너 자식 둘을 유학 보낸 엄마는 그 자식들이 육지가 너무 좋아 영영 제주는 돌아보지 않을 것을 걱정해왔던 것이다.


물론 엄마의 생각은 틀렸다. 나는 현재 제주에 있고 내 동생은 육지에 살지만 제주가 좋아 틈틈이 제주를 방문한다. 거기다 우리가 제사가 아니고선 부모님의 안부도 묻지 않고 제주를 안 찾을 모진 자식들도 아니다. 다만 엄마의 첫 번째 믿음에 대해선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어렵다. 조상님들이 후손들을 지켜준다는 믿음. 신화에 가깝게 조상신들이 후손들을 돌본다는 종교적 믿음을 갖는 엄마에겐 장애를 남긴 아빠의 사고가 가족과 인생을 뒤흔든 큰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도 인간도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이 닥치면 신을 찾는다. 그토록 냉철하고 이해타산적이던 엄마조차 아빠의 사고 후 점집을 찾아 부적을 맞추고 그도 부족해 부처님을 찾아 절에 다녔다. 인도인들 또한 그럴까? 개인의 힘으론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사회. 그 속에서 태어난 내 처지를 원망하기보다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무력한 현실 속 개인의 고통을 달래주는 신이 주는 위로를 살짝은 알 것 같다. 제단을 장식하고 초를 켜고 진심을 다해 기도를 드리는 것. 제례 의식은 그 신에게 위로를 청하고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나와 가족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믿음을 좇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치는 타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겉으로 내세우는 구실은 조상님의 밥상 차림이더라도, 그 음식을 나눠먹는 후손들이 함께 하는 식사가 즐겁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제사를 지내는 가족 모두가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먼저다. 상차림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적 노동이 없어진다면, 자식들 또한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온 제사 문화와 그 속에 담긴 가족들의 염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제사의 주역이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이 아니라, 제례를 지내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가족끼리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