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밖에 나오면 서로 엄청 챙기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부모님 말이다. 그렇다고 살갑게 대하냐면 그건 아니다. 앞뒤좌우 1m 간격 유지는 기본, 서로 싫어하는 음식은 알아서 패스해 주며 '당신 취향은 내가 제일 잘 알지'라는 당당한 눈빛 교환이 두 분의 의사표현 방식이다. 60년을 같이 살면 이렇게 되는 건가!
엘리베이터 교체공사 덕분에(?) 14층에서 걸어 내려온 아내를 위해 아부진 엄마의 전용 유모차를 내밀며 시장을 한 바퀴 돌자셨다. 얼굴에 화색이 돈 엄마의 콧바람 여행 시작이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만 몹시 화가 나거나 아주 기분 좋을 때 남대문 시장에 갔었다. 동행자는 주로 막내인 나였다. 그건 카드가 없던 시절 몇 만 원을 손에 쥔 엄마의 유일한 사치이자 힐링이었다. 덕분에 난 다양한 무늬의 노란 옷을 많이 입었다. (그래서 지금도 노란색을 좋아하나 보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만 남대문 시장에 들러 옷과 소금사탕을 사 온다. 이렇게 시장투어에 몸이 단련된 터라 그때만은 허리통증도 엄마를 이기지 못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히 물 만난 고기다. 이 날도 그랬다. 키가 작아 잘 안 보이기에 난 밀착해서 남편과 아부지는 큰 원을 그리며 엄마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미장원이 새로 생겼으니 가보자 해서 위치를 묻자 그냥 시장 골목에 있단다. (이 시장 생각보다 많이 넓어 나도 살 때 온전히 투어한 적이 없었다) 우린 그냥 찾아댔고 운 좋게 그냥 찾아졌다. 위치 파악 후 턴~다음번 염색장소가 결정된 순간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엄만 다음 목적지들을 하나씩 방문했다. 족히 스무 개 이상 튼실하게 달려있는 바나나와 감자, 고구마를 사고 떡집으로 향했다. 수많은 곳 중 엄마에게 선택된 이곳. 유독 어르신들이 많다. 이유를 알았다. 어르신들에게만 1+1이다. 어르신의 기준은 음~주인장의 눈대중인 듯 싶다.
떡 하나를 입에 넣고 몇 걸음 가다 어느 노점상 앞에서 우린 동시에 멈춰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엄마와 난 이 분을 어떻게 아냐는 궁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할머니 아직도 계시는군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아주 오랜만의 조우다. 그 할머닌 밤과 고추, 파 그리고 마늘만 파신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아이 어렸을 때 하도 크고 맛있어 늘 여기서 밤을 사며 맵지 않은 꽈리고추도 덩달아 사갔었다. 엄마 역시 맵지 않고 연한 꽈리고추를 사러 늘 여기에 오신단다.
"두 분이 모녀지간이셔? 이런 인연이 있나. 고마워요"
그때의 내 단골집이 15년 후 엄마의 단골집으로 이어지다니. 같은 물건을 또는 같은 장소를 공유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됐을 때의 신기함과 기쁨이란! 게다가 그 대상이 엄마라니. 텔레파시가 통한 건지 아님 유전자의 힘이 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날부터 할머니의 노점상이 엄마와 나의 랜드마크가 된 건 확실하다.
시장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났다. 엄마의 총기는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우리 셋은 슬슬 피로가 몰려왔다. 이때다 싶은 뽀글 머리 김여사께서 약국에 가서 박카스와 피로회복제를 먹자 신다. 이어서 한 말씀. 지난주 약사님이 집에까지 박카스를 배달해 주셨단다. 연신 고마움을 전하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난) 약사님에게 아이스커피를 사다 드렸다. 약국을 나와 두 분 좋아하시는 두릅까지 산 후 시장투어를 마무리했다.
두 분과 같이 14층 계단을 오르내리고 같이 시장 가고 같이 물건 사서 나누고 그리고 같이 피로해소음료를 마셨다.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남편과 난 오랜만에 엄마아부지와 하루를 '같이'했다. 두 분의 '가치'를 생각하며.
슬슬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걸어가신다. 거리에 걸려있는 연등이 해님과 더불어 두 분을 밝게 비춰주고 짤막한 그림자가 한가롭게 주인장을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