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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희 Sep 30. 2023

명절에 숙소 따로 예약해 혼자 자는 며느리

감사일기

나라는 사람을 담을
그릇을 가진 남자가
대한민국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결혼은 포기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을 로스쿨에 가서
만났으니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진정한 짝을 찾은 것이다.

결혼 생각이 없었으니
결혼해서 명절을 보내는 것은
더욱더 상상할 일이 없었는데

결혼해서도 명절에는
각자의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생은 처음이라> 드라마에

딱 그런 결혼생활이 나온다.

여자는 여자 부모님과
남자는 남자 부모님과
명절을 보낸다.

함께 가는 건
명절이 아닌 때
따로 시간을 낸다.

그러나 나의 막연한 상상과 달리
우리는 어떻게든 양가를 모두 가기로 했다.

남편이 우리 고향집에 안 가면
울 엄마가 자신을 엄청 보고 싶어 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실제로 그렇다! 딸인 나보다 사위가 말을 예쁘게 하기도 하고 음식도 더 맛있게 먹기 때문이다). ㅋㅋㅋ




진짜 속초는
인간적으로 매우 멀다.

세종에서 BRT 버스를 타고 오송역
오송역에서 서울역까지 KTX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KTX
강릉역에서 강릉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초까지 버스로 이동

거의 5시간 30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이번 추석에는 남편이
나보다 하루 늦게 출발했는데
남편은 기차표를 끊는데 실패해
강릉까지 기차로 온 나와 달리
버스를 타야만 했다.

세종에서 오후 4시 10분쯤 버스를 탔는데
속초에는 밤 11시가 넘도착했다. ^^

차가 크게 밀리지는 않았다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서울에 들어갈 즈음
남편이 탄 고속버스가
갑자기 고장이 나
도로 위에 서 버린 것이다.


뒤이어 오는 버스를 임시로 타긴 했는데​
임시로 탄 그 버스는 남편을
경부선이 아닌 호남선에 내려주었고

남편은 경부선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갈아탔어야 할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버렸다고 했다. 오 마이갓!!!

다행히 7시대 다른 차가 1자리 비어
초에 올 수는 있었는데

진짜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네! 싶다.

고속버스가 도로 위에 서 버리다니!!!  

밤 11시쯤 남편을 데리러
터미널에 갔는데
남편이 꽤 지쳐 보였다.
엄청 고생했구나 싶었다. ㅜ.ㅜ






시댁부터 갔던 설 명절과 달리​
이번 추석에는 고향집인 속초부터 갔고
추석 당일인 어제 점심,
시댁인 동탄으로 향했다.

초에서 강릉까지는
소라면 50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 너무 막혀 1시간 20분이 걸렸다.

속초 고향집에서
2시간 먼저 서둘러 나온 덕분에
기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강릉까지 태워다 준 아빠한테
무지 고마웠다^^ ㅎ

아빠~ 사랑해♡ ​​




서울역에 내린 뒤에는
광역버스를 기다렸다.

동탄까지 가는 광역버스가 있어
무척 편리하게 이동했다. ​​



광역버스 옆으로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는 걸 보니
행복했다.

아~ 저기에 껴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는
버스 전용도로가 잘 되어 있었다.

시원하게 잘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편과 수다를 떨다 보니
동탄에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



설 명절에도 그랬고
이번 추석에도 숙소를 따로 잡았다.

처음에는 미안해하시기도 하고
어색해하시기도 했는데

따로 숙소를 잡아서 혼자 자니
무척 편하다.

제는 남편이랑 4시 반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6시쯤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댁에서 9시쯤 출발해
남편과 함께 숙소까지 걸어왔고

숙소에서 꽤 오랜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은 시댁으로 걸어갔다.

시댁 어르신 모두
아들과 며느리와의 대화 시간을
즐거워해주셔서 참 좋다.



며느리가 따로 숙소를 예약해
나와서 자는 게
우리나라 정서상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며느리인 지인들은
모두 다 부러워한다.

그런데 우리 고향집은

사위도 마찬가지다.


속초에서도 우리 고향집은
우리 부모님이 머무는 집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남편이 잠을 잔다.

명절 연휴 긴 거리를

오가는 게 쉽지 않고
잠자리가 낯설어 조금 피곤한 건 있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개별 공간을 마련해
각자 자기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며
지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배려해 주는
양가 어르신 덕분에

피곤해도 속초와 동탄을 오가며
둘이 재밌게 연휴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어제 이 글을 쓰다
무룩 잠들어버렸다. ^^;;;

늘 아침은 8시 50분에 일어났고

씻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엄마가 싸준 바나나를 아침으로 먹는다.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인데
10시쯤 남편이 숙소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이제 짐을 다 싸들고

시댁으로 이동해서

점심, 저녁까지 시댁에서 보낸 뒤
저녁 기차로 진짜 우리 집에 갈 예정이다.

명절 연휴 내내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다.

다소 무리한 일정에
남편은 혓바늘이 돋았고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앉기만 하면 졸았다.

그래도 양가 모두
건강하시고 우리와의 시간을
즐거워하시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익숙한 우리 집이 제일 좋다!
제 오늘 밤이면

진짜 우리 집에 간다~~~~

명절에 양가 모두 가느라 고생하는
신혼 부부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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