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목요일, 신경과 노력을 꽤나 쏟아부었던 회사 일정을 마치고 연차를 썼다. 크리스마스가 월요일이니, 금, 토, 일, 월, 나흘간 연휴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서울 갈 맛이 난다. 평소처럼 금요일 저녁에 올라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내려오는 일정은 아쉬워도 너무 아쉽다. 목요일 밤에 바로 상경하면 좋겠지만, 이미 막차를 놓쳤다.
고흥의 겨울은 항상 서울보다 무려 5도 이상 따뜻하지만, 연말로 다가서는 밤은 아무래도 쌀쌀했다. 입김을 주기적으로 내뿜고, 양팔로 어깨를 마찰하며 귀갓길을 서둘렀다. 그래도 큰 일 하나를 막 처리했다는 해방감에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맘 편하게 캔 맥주를 홀짝이며 OTT나 보다가, 서울에 있는 연인과 보낼 크리스마스의 기대를 품은 채 스르르 잠들면 된다.
완벽했다! 원룸으로 돌아와 손을 씻기 위해 수도를 틀기 전까지!
물이 안 나온다. 십중팔구 건물의 수도관 어딘가가 동파된 것일 테다. 주변사람들이 한번씩은 꼭 동파로 애를 먹었었는데. 거짓말처럼 이 타이밍에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아직 관리인 측에서 별다른 공고는 내지 않고 있었다. 연휴를 앞두고 물이 안 나오는 건 충분히 우려스러울 일이긴 했지만, 나야 어차피 내일 서울로 갈 거니 굳이 관리인에게 전화하진 않았다. 빠르게 해결되겠지 생각하고, 계획대로 맥주나 홀짝이다 잠들었다. 평소와 달리 살짝 더러울 뿐이다.
고흥읍에 있는 공중목욕탕. 과장을 보태면 블록마다 있다.
눈을 뜬 아침에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젠 심각한 사태로 비화되고 말았다. 이렇게 더러운 꼴을 하고, 고속버스 네 시간 반을 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고흥읍에는 공중목욕탕이 많았다. 이제 서울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공중목욕탕이건만, 고흥읍은 과장 보태서 블록마다 하나씩 있다. 그만큼 공중목욕탕이 이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 단독주택들로 구성된 주거지가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데, 그중에 연식이 사오십 년에 육박하는 집들이 쌔고 쌨다. 고령화로 인해 관리가 안 되어 허물어져가는 집도 많고, 아직도 저수조가 없어 푸세식 화장실을 쓰는 집도 있다. 부동산 수요도 적고, 부동산 개발을 촉진할 돈도 흐르지 않으니 대부분의 거주지가 노후화되어 버린다. 당연히 화장실은 전혀 쾌적하지 않을 테고, 공중목욕탕들은 그 수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동파문제도 같은 맥락이었고, 나 역시 다른 주민들과 다를 바 없이, 공중목욕탕에서 발가벗은 몸이 되었다. 목욕탕 이름은 ‘유자사우나’였지만, 전혀 유자와 관련은 없었다. 고흥의 특산품이 유자이기에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당연하게도 사진자료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설비는 살짝 낡았고, 이용객 숫자에 비해 널찍했다.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성들이 탕을 이용하고 있었다. 다양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쩍 마른 게 일반적이었다. 마을이웃이었던 그들은 욕탕의 한편에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영락없이 이방인 꼴이었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살짝 쑥스러운 마음으로 욕탕의 모서리 은밀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노인들이 함께 사우나장에 들어갔다 시원한 음료나 하자면서 욕장을 떠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당연히 관음은 아니다. 대놓고 봤으니.
주민들끼리 가진 ‘친밀성’을 같은 욕탕 속에서야 비로소 체감했다.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자면) 당연히 ‘저도 끼워주세요’는 아니었지만,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에만 있던 주민, 커뮤니티, 근린사회 등이 비쩍 마른 노구들의 그 활력에서 두께와 주름을, 그리고 생동감을 얻었다. 그래. 헐벗은 나는 헐벗은 주민의 몸을 보며, 주민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머리도 개운해진 목욕을 경험했다.
(좌) 오취마을로 들어오는 이동식 목욕차량, 그리고 (우) 표정이 좋으신 오취마을 여성어르신
얼마 전, 오취마을 여성경로당의 어르신들이 이번 주말에 다 같이 읍내 목욕탕에 나가신다 하셨다. 하루에 일곱 번 밖에 안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평균 여든 먹은 열댓 분이 서로 의지하면서 마을에서 출타하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전달하실 때 보였던 어르신들의 들뜬 어투, 밝은 표정이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