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숙소에서 나와 원룸을 구하기로 했다. 돈 조금 아끼려다가 마음이 먼저 다칠 것 같았다. 그래도 사 년은 여기서 일해야 하는데 체력만큼이나 멘탈 관리도 중요하다. 직원 숙소는 면소재지였는데, 아무래도 생활인프라가 영 아쉬워, 고흥군에서 가장 큰 고흥읍에다 다음 주거지를 구하기로 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원룸을 구하는 과정은 서울과 다소 달랐다.
일단 예상보다 집값이 비쌌다. 월세가 40만 원 밑으로 내려가면, 십중팔구 멘탈 관리가 여기서 과연 될까 하는 집들을 보게 됐다. 이런 집은 애초에 ‘연세’를 받기도 했는데, 원래 주거공간이 아닌 곳을 주거공간처럼 쓰는 곳, 기름보일러를 때야 하는 곳, 도배장판을 입주자가 해야 하는 곳 따위였다. 집주인들은 매물을 열심히 홍보하는 편이다. 여러모로 영 쉽지 않은 방들을 돌려야 하니까 말이다. ‘고흥엔’이라는 군소식지에 구인, 구직, 주택매매, 임대 등과 관련된 웬만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었고, 나도 여길 보고 집주인과 직접 계약할 수 있었다.
집을 구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말해준 전월세 동향과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겪은 경험이 꽤 다르기도 했다. 고흥에서도 아파트는 경쟁률이 심해 들어가기 어렵고,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는 시점에는 아파트 외 주택마저도 쉽지 않다는데 생각보다 매물이 자주 나온다거나, 신축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잘 들어간 것 같았는데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탱이를 맞은 상황이라거나.
꽤 심각한 소식도 있다. 동료 중 한 명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임대하는 빌라를 (심지어 본인이 도배장판을 새로 하고) 전세로 들어갔는데,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자신이 사기를 맞았다며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전세금을 떼이지 않을까 반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 고흥군의 부동산시장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공급과 수요가 가격으로 깔끔하게 조정되는 곳은 분명 아니었다.
군소식지 '고흥엔', 두세면에 걸쳐 구인, 매매, 임대 등의 정보가 실린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인 사실이 있다. 정말 오래된 집들이 많은데, 반지하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열악하고, 아무리 일용직들이 많다 해도, 이곳에서 사람은 지하에 살지 않는다. 그러니 집중호우에 반지하방이 잠겨 사람이 죽었던, 이년 전 서울시 신림동에서 벌어졌던 그런 비인간적인 사태 또한 생기지 않는다.
작년, 나는 신림동 침수피해 사건을 추적하여, 국가가 마련한 풍수해대책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2022년 8월, 10년 만에 찾아온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수해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인명피해는 사망자 열네 명, 실종자 다섯 명, 부상자 스물여섯 명으로 집계되었는데, 그중 ‘반지하 침수’로 인한 사망자 수는 네 명으로, 관악구, 동작구에서 일어났다.
먼저 사망사고가 있었던 근린사회(neighborhood)를 관할하는 관악구 주거복지기관들의 실무자들을 인터뷰했고, 그 와중에 사망사고가 있던 건물 바로 맞은편 반지하에 살고 있었던 주민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실무자들은 그녀를 ‘특별케이스’라고 불렀는데, 신림동 참사가 있은 후, 반지하 침수대책의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회, LH, 서울시가 합심하여 그녀를 금천구 독산동으로 이주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기존과 달리 이주비용도 대폭 감면함은 물론, LH직원들이 그녀를 직접 에스코트하며 이주 장소를 물색했다고 하니, 어떤 의미로는 파격적이긴 했다.
칠십 대 할머니였던 그녀는 중국동포였는데, 그녀와의 인터뷰가 심화되면서, 나는 반지하 침수피해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와는 매우 다른 맥락을 내포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웃 대여섯 명을 소개해줬는데, 같은 중국동포인 그녀들도 하나 같이 신림, 신대방 인근 반지하방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침수피해현장을 보도했던 삼십여 개의 기사들을 차차 살펴보니, 의외로 중국동포가 많이 등장하고 있었으며, 사망자들 또한 중국동포였다는 진술도 발견했다. 그렇게 침수피해지역이 통칭 ‘서울 서남권 중국동포 밀집지역’과 일치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좌)22년 있었던 신림동 반지하 침수, (우)특별케이스인 그녀와 중국동포 이웃들의 뒷모습이다(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