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집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당국은 1962년 건축법을 제정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법제정 당시, 지하방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침투 사건 이후, 모든 건물은 대피용 지하층을 설치하게 됐다. 수많은 사람이 미리 서울에 정착한 친척집을 들락날락하고, 판잣집, 무허가건축물을 난립하며 살았던 때였다. 판잣집에 사람이 사는 시절인데 지하층이 빌 리 만무했다. 당연히 대피용 지하층도 불법셋방으로 사용됐다.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당국은 실로 백방의 처방을 불사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그리 풍족하지 않았고, 국가는 주택을 건설할 역량이 부족했다. ‘민관합동재개발’이 필연적으로 주택 공급의 큰 기조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전폭적인 비호 아래 토건기업이 덩치를 키워가며 아파트단지를 세워나갔던 것이다. 때때로 공공도 직접 ‘시민아파트’를 세우기도 했다. 다만 궁여지책으로 값싼 산등성이에다 아파트가 무너질 정도로 날림공사를 했을 뿐.
당연히 도시에 대한 대규모의 필지조정이 불가피했고, 수많은 사람들은 이주되었다. 무허가건축물을 밀어버리며 가난한 사람들을 서울 외곽으로 점차 밀어냈다. 친절한 과정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서울 근교에 사람을 이주시켜 놓고, 알아서 살라고 내팽개치는 바람에 폭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었다. 사람이 없는 지역에는 ‘택지개발’을 해 대단지를 제공했고, 사람이 있는 지역에는 ‘토지구획정리’를 실시해 스스로 집을 개발하게 했다.
(좌)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우)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주택공급문제는 전쟁과도 같았다.
관악구는 태생부터 이러한 강제이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63년, 시흥에서 서울로 편입된 관악구의 최초·최대의 구정과제는 철거 이주민에 대한 행정지원이었는데, 해방촌 이주민, 이촌동 수재민 등 1960년대 아파트 재개발로 생긴 이주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허가되지도 않은 무질서한 평면개발이 일어나자 당국은 1972년, ‘신림 및 신림1추가 토지구획정비사업’을 실시해 비교적 저밀도이면서 양호한 인프라를 갖춘 ‘단독주택지구’를 조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이 부족했다. 서울이 더 살기 좋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했다. 이에 당국은 또 다른 패를 꺼냈다. 1975년 지하방을 합법화했고, 1984년,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을 발표하며 지하층의 기준도 완화했다. ‘반지하’만 되어도 지하층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러면서 당국은 아파트를 보완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거지 유형을 법제화한다. 바로 ‘다가구·다세대주택’이다.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되자 중국동포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됐다. 그들은 대체로 구로공단 일용직으로 한국살이를 시작했고, 가리봉동을 중심으로 중국동포 거주지가 생겨났다. 아무리 동포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타향이었고, 같은 처지의 중국동포들과 끈끈히 일상을 섞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리봉동, 특히 대림동에 그들만의 재래시장도 생겼고, 중국동포 상인들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며 그 상권을 키워나갔다. 2020년대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마라탕’도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곳곳을 아파트단지로 탈바꿈시키던 재개발의 파도가 관악구를 포함한 서울 서남권 지역에 이르렀다. 관악산 능선을 타고 차례차례 내려오는 대단지 아파트 재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을 산 아래로, 언덕 아래로 계속 밀어붙였다. 당연히 가리봉동도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됐다. 불법체류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고, 중국동포들은 단속을 피해 대림시장과 인접하면서, 가리봉동과도 그리 멀지 않은 가산, 대림, 봉천, 신림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싼 값에 방을 구해야 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아파트단지가 건립됐다. 가난한 자들은 산 아래로 '내려오는 자'들이다.
비슷한 시기인 1999년, 드디어 주거용 지하방 건축에 대한 유인이 사라졌다. 신축에 대한 지하층 의무 건설 규정이 폐지됐고, 주차장 설치 기준이 강화됐다. 건물을 신축할 때, 지하를 까게 된다면, 셋방보다 주차장을 넣는 게 이득인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단독주택이 반지하 셋방을 가지고 있는 다세대·다가구주택으로 개발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은 넉넉했던 모양이다. 신림, 봉천동 2호선 라인 인근, ‘신림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단독주택지구는 다세대·다가구주택 밀집구역으로 깔끔하게 탈바꿈했고, 중국동포들의 염가주택수요를 넉넉히 받아줄 채비를 마쳤다.
토지구획정비사업구역, 내려오는 자들은 결국 지하철2호선 인근 저고도의 다세대·다가구주택 밀집지에 자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