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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23. 2024

올해도 빈 둥지에 지저귐이 들려온다.

 나이 많은 중국동포는 서울살이를 함께 겪어온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멀어지고 싶진 않다. 오래 살아온 지역이니 만큼 생활서비스를 구입하는 것도, 복지서비스를 받는 것도 훨씬 편하다. 나름 복지기관들과 ‘라포(rapport)’도 형성됐다. 팍팍한 삶을 이겨나가기 위해 이웃들과 결혼을 , 일가도 꾸려봤지만, 여든으로 다가서는 노인들에게 이민과정에서 있었던 위장결혼도, 이혼도, 재혼도, 사별도 모두 회한으로 지나간 일이다.     


 그러다 보니, 부양가족이 있어 보장가구자격은 얻을 수 없지만, 자녀 또한 부모를 충분히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어쩔 수 없이 염가주택을 전전해 다. 남편, 형제자매, 자녀와 같은 세대원이 한두 명씩은 딸려 있어서 작은 평수의 집은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그 나이에 세대원이 있다는 사실은 세대구성원 중 누군가 아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노구를 이끌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교통편도 괜찮아야 한다. 원룸보다 싸면서 이러한 요건들을 맞출 수 있는 주택은 반지하방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주거급여’, ‘LH전세임대’라는 주거복지서비스가 있어서 반지하방이라도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염가주택시장도 가난한 사람들 나름의 합리적인 소비선택으로 인해 형성되는 시장이다. 중국동포들 중에서도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스스로 반지하방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침수피해를 본 가구의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여성 가장이 아픈 세대원을 부양하는 가족이었다. 때로는 조손세대인 경우도 있다. 2022년에 있었던 침수사망사고도 여성 가장에 조손 세대인 케이스다.       


 관악산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신림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는 그 낮은 고도로 인해 관악구의 상습침수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중국동포 대가족의 염가주택수요에 대응해 반지하방을 유지했고, 끝내 침수사망사고가 일어나는 국내의 유일무이한 현장이 되었다. 사람이 서울 반지하방에 살다 빗물에 빠져 죽게 된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여러 가지 선택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어떤 선택은 의도되었지만, 어떤 선택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으며, 누군가를 선택하여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 속으로 몰고 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다 하지만, 가난해져 가는 고흥에 반지하방 자체가 없다는 사실은, 사람은 지하에 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고 옳다는, 소위 당위를 알려주는 ‘사료(史料)’이다. 국가의 발전, 도시의 성장, 국민들의 주거난 해결 등 모두 하나 당대에 중요하고 만만치 않은 과제가 아니었을 리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 약자를 희생해 가며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돌이켜 보라 제안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늘날 우리에 던져오는 메아리고, 있는 그대로 사람이 살아가는, 물화되지 않은 방식의 편린이다.     


신림동 침수사망 현장을 점검하는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출처 : 연합뉴스).


 서울에는 비둘기가 많지만, 어느 시점의 고흥에는 제비들이 날아든다. 섬마을 곳곳에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일가를 꾸린다. 사람 눈치는 보지도 않으면서 땅이든 바다든 바닥에 바짝 붙어 날아다니고, 나무, 전봇대, 지붕 여기저기에 앉아 쉴 새 없이 재잘댄다. 새인 주제에 먹이를 차아 고개를 까딱거리며 걸어 다니는 비둘기의 모습을 보다, 날렵하게 곡예비행을 하며 먹이를 물어 나르는 제비의 모습을 보면 마음에 아스라한 평안이 찾아온다.     


 작년에도 있었던 사무실 처마 밑 빈 둥지에 올해도 지저귐이 들려온다.


오취마을 보건소 처마 밑 비어있던 둥지에 다시 찾아온 제비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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