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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09. 2024

지방의 거친 녀석들(LOCAL BASTERDS)

  자고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으려 했고, 생존을 향해 그 덩치를 키워가려 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수많은 무리의 흥망성쇠 속, 대도시의 등장은 인류의 염원에서부터 필연적인 것이었다. 도시는 많은 것을 이룩했다. 효율은 규모를 만들었고, 규모는 평화를 만들었다. 사상의 도가니였고, 진보의 엔진이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어느 순간 도시는 사람을 바꿨다.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지근거리에 엄청나게 많은 타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고, 수많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고민해야 했다. 사람의 심성은 조금 더 자연 일반과 분리되고, 신심을 떠나 정체성의 안식처를 찾아 고독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다양해졌다.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점점 도시에 ‘압도’되어 간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바꾼다. 믿을만한 이웃을 만들기 위해 도시에서 통용되는 매너를 갖추고, 이웃 간에 통용되는 룰을 지킨다. 비슷한 교양을 갖추기 위해 친목 활동에 열을 올리며, 때로는 허상이라도 공동의 적을 만들어 결속력을 다지는 정치적 전술까지 불사한다. 그러다 도시가 변하면, 사람들은 ‘구조조정’된다. 도시민의 삶은 그 구조조정을 버티려는 ‘생존분투기’다. 아르바이트, 이직, 이사를 거듭하면서, 안정된 직장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을 장만해 가정을 꾸려 얼른 뿌리를 박아야 한다.      


 도시는 거대해가지만 존재는 역설적으로 빈곤해져 간다. 도시에서 통용되는 ‘사고력을 키우는 룰’은 상당히 한정되어 있고, 그 과정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일관되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결과는 파괴적이다. 고급문화의 대척점에서 대중문화가 발흥하고, 사고력은 풍요 속에 침잠한 채, 점차 무언가에 깊이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방식으로 결손 된다. 모든 거친 것(wildness)들은 부드러워지고 정돈된다.     


 앞으로 나열할 ‘고흥의 거친 녀석들’과 엮였던 두 가지 해프닝은 기존의 상식선에서 벗어나 있어 나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사고에 모종의 자극을 준 경험들이다. 나는 그 현장에서 순간 머뭇거리며, 이것들을 단순히 미성숙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임을 수긍해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했다.     


첫 번째 무대인 고흥전통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 숯불생선구이.  출처 : 블로그 @바라봄


첫 번째 해프닝.     


 점잖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에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다. 5대 5 장발가르마를 탄 보라색 머리의 남자가 다소 경쾌하게 식당 내 잡일을 하고 있었다. 인상 깊었다. 노부부의 나이에는 못 미치더라도 오십은 훌쩍 넘겨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었기에 더더욱. 갤럭시워치를 풀어두고 반주를 곁들어 식사를 했고, 취기가 살짝 오른 채 집으로 귀가했다.     


 다음 날 출근을 준비하다 워치가 없어진 걸 깨달았다. 서둘러 폰을 열어 FIND 기능을 사용해 보니, 다행히 생선구이 가게에 표시가 떠있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출근길에 들렸다.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서려는 순간, 가게에서 나가려는 보라색 머리 노인과 맞닥뜨렸다. 그 노인 뒤에 주인장이 서있어 시계를 찾으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마자 보라색 머리 노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워치를 꺼내는 게 아닌가. 횡설수설 말까지 더듬어가며, 나와 주인장에게 본인이 찾아주려고 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FIND 기술도 몰라서 그걸 훔쳐가려고 했을까,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눈치를 보는 그가 안쓰러워 군말 없이 워치만 챙겨서 나왔다. 보라색 머리의 왜소한 노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고흥군 포두면 은성호프, 광포김밥, 면소재지에 자주 들리는 식당들이다. 두 번째 무대다.


두 번째 해프닝.     


 면소재지에 있는 조그마한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 말고 두 그룹이 있었는데, 40대, 50대 남성들로 구성된 그룹에서 기어코 문제가 터졌다. 언성이 높아지더니 육두문자와 함께 테이블이 엎어졌고, 그릇이 날아다녔다. 발길질에 누군가 의자에서 넘어졌고, 멱살잡이가 시작됐다. 40대 두세 명이 50대 형님에게 쌓아왔던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말리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더 가세해 결국 그룹 모두가 주먹다짐을 불사하는 꼴이 됐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 그 자리에서 가장 젊었던 나와 동료가 달라붙었다. 내가 40대 측 선수 한 명을 진정시키고 있는 사이, 동료가 노련하게 40대 측 다른 선수들을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그 와중에도 40대 선수 중 한 명은 칸막이 위로 팔을 집어넣어 50대 형님의 목을 조르려 했고, 결국 모든 선수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2차전을 준비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나가는 이들의 뒤통수에다 쌍욕을 하고 조용히 난장판이 된 자리를 치웠다.     


 다른 그룹에서도 싸움을 말리기 위해 40대 남성 두 명이 따라 나왔다. 우리는 그들과 눈치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경찰관들이 오기 전까지 고군분투했다. 파출소가 2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기에 경찰관들이 오는 낌새가 보이자마자 선수들은 알아서 뿔뿔이 해산했다. 알고 보니 같이 우리와 합을 맞추던 남성들은 ‘내산’이라는 익히 잘 알던 마을에 거주하던 사람이었고, 공동의 지인으로 연결됐다. 심지어 한 명은 지역개발과 관련된 고흥군청의 팀장이었다.       


 이후 우리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착한 사람’이 되었고, 호프집에 들를 때마다 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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