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이른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이셨다. 보통 점심이 지나고 나서야, 한두 분씩 회관으로 오시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여쭤보니 밤새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향 년 백여섯 세의 나이셨으니, 천수를 누리신 건 확실하다. 마을 장례식을 하니 시간 맞춰 마을회관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숙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마음속은 더 심란하다. 이제 여기서 구 개월 가량 일했는데, 벌써 여섯 번째 장례식이다. 마지막 길을 잘 보내주자, 부조는 받지 않는다는 이장님의 담담한 마을 방송이 송출되고, 이 집안과 사이가 나쁘지 않고, 체력에 여력이 있으신 주민들은 다들 마을회관으로 나왔다. 이장님은 다음 주 따님의 결혼식이 있어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시간이 되자 상주와 친지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찾아왔다. 일흔이 훌쩍 넘은 상주는 슬픔과 헛헛함이 반쯤 섞인 표정으로 동네친구들을 담담히 맞이했고, 어떤 여성어르신들은 서로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포옹을 하며, 이따금 눈물을 지었다.
축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한 만 원짜리 ‘장례식 전용 도시락’이 불출됐다. 도시락이라고 스티커가 붙어있긴 하지만, 과자, 과일, 음료 등을 일회용 스티로폼그릇에 넣고 랩으로 둘둘 싸놓은 다과세트다. 식순이 끝나자, 어르신들은 도시락을 한 두 개씩 손에 든 채 뿔뿔이 흩어지셨다. 이번에 작고하신 분도 다른 주민들처럼 섬에 있는 선산에 묻힐 것이다.
착찹한 날씨를 배경으로 상주에게 조의를 전하는 오취마을 주민들
지방이 소멸한다는 말은 정확히 어떤 과정을 의미할까? 재난이라도 일어나 지방에 있는 사람, 건물, 기간시설들이 일소되는 걸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직관적으론 마을 장례식과도 같은 과정이 계속 일어나면서 공동체가 점차 와해되는 걸 의미할 것 같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늙어가지만, 새로운 가족이 꾸려지지 않고, 자연스레 거주인프라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지니, 끝내 외지인도 오지 않는.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소멸을 이런 방정식으로 측정했다.
‘지역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인구수/65세 이상 고령인구수’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방정식을 보고 약간 오소소 소름 돋았다. 생산성(productivity)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가임기 여성의 비율로 지역소멸위험여부를 판단하다니, 일본 스럽달까, 명확하지만 징그러웠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어났던 직후, 국가의 위기감을 충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전체적인 관점을 일부러 채택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론적인 개념일 뿐, 실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측정하는 한국의 인구소멸위험지수는 다각적인 지표를 채택하고 있다.
요즘 주변에서 참 출산율 걱정을 많이들 한다. 짐짓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척하며 인구가 감소하면 생산력, 소비력이 모두 떨어져서 성장 동력을 잃는다고 호들갑을 떤다. 다들 구체적인 논거는 나름대로 있다. 그게 소시민적이거나, 일면적이거나, 공상적이거나 등등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양한 논거는 재미있게도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그러니 결혼을 해서 출산하라. 그러니 결혼할 수 있게 지원을 해달라. 그 사이에서 특정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혐오담론들이 재생산된다.
잠깐 샛길로 빠졌다. 어쨌든 제3세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고령화 사회로 달려가고 있고, 인구구조 상 경제성장을 도모하기엔 이미 오래전에 데드크로스를 넘겼다고들 한다. 전 세계 동향을 보면 사실 고령화가 유발하는 경제 문제에서 출산율은 변수라기보다는 상수에 가깝다. 오히려 고령화와 관련된 경제 문제는 출산여부의 문제라기보다는 고령화가 진행되는 속도의 문제다. 그리고 고령화의 속도는 산업화의 속도,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의 속도, 도시화에 따른 핵가족화의 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많은 대가족이 일시에 해체된 만큼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그에 따라 인구절벽도 심대하게 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출산율을 걱정할 게 아니라 지역소멸을 걱정하라.
밀레니얼 세대의 쪽수가 그나마 어느 정도 확보되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후에도 경제성장의 동력을 보존하고 있는 국가가 아예 없진 않다. 첫 번째는 미국이다. 대도시도 많지만, 고루 발전된 중소도시, 그리고 시골도 많다. 그러다 보니 핵가족화가 급격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유럽연합이다. 이른 시기 산업화가 출발하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게 됐다. 이에 따라 후발주자들보다 상당히 느린 속도로 인구구조가 변했다. 반대로, 고령화가 급격하게 일어나 국가경제에 큰 여파를 줄 걸로 예상되는 나라는 어디일까? 중국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쪽수가 미국, 유럽보다 훨씬 많음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저성장의 시대에 들어섰으니 대도시 서울의 저성장을 감내하고서라도 지역분권, 지역재생을 도모해야 할까? 서울이 고도의 성장을 구가하기가 점차 더 어려워질 거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는 위대하다. 도시는 여러모로 문명을 유지하는 엔진이고, 자연에 대한 문명의 승리는 곧 도시의 승리이다. 그러니 도시는 끊임없이 혁신되어야 하고, 내부인과 외부인이 언제든지 오가며 발전해야 한다. 지역과 도시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실험들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타운 서교에서 열렸던 '마르쉐 농부시장@', 지역과 도시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도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주일마다 고흥과 서울을 오가다 보니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서울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주말 내내 연인과 함께 열심히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한다. 분명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골목이지만 왠지 모를 활력이 느껴진다. 각양각색의 상가, 빌딩, 건조환경들이 놀랍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한강 공원 나들이는 옅은 고양감 마저 준다. 고흥에 내려가기 전, 수십 번 다닌 곳들이지만 여태껏 이런 기분은 느낀 적이 없다.
서울은 위대(great)하다. 짜릿하다. 일주일 만에 잡은 연인의 손처럼, 서울에 대한 ‘역치(閾値)’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