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액션을 가미한 일본식 만화에 나오는 필살기이름 같은 게 아니다. 고흥까지 내려와 근무하게 된 사업의 이름이다. 해양수산부 국책사업, 어촌신활력증진사업. 만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형태의 단어는 한 번쯤 한자로 써보고 싶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을 풍긴다. 일상생활에서 쓰기엔 ‘활력’, ‘증진’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탓일 테다.
‘마을만들기 운동’은 농산어촌에서 사는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마을을 가꾸는 일련의 활동을 일컫는다. 90년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라는 일본의 정책을 ‘마을만들기’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하는 어촌신활력증진사업도 일본어 번역체의 영향을 살짝 받은 게 아닐까?
무슨 소리냐, 그게 지금 대한민국 국민으로 할 말이냐! 싶을 수도 있겠다. 오해하지 마시라. 물론 나도 친일파를 매우 싫어한다. 게다가 일본은 최근 방사능 오폐수를 해양에다 방류하기까지 했지 않은가. 섬마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분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인접국가로 여러모로 같은 배를 탄지 오래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로 미국은 중국을 따돌리기로 마음먹고,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지금까지 보장해 왔던 세계시장을 일정 수준 포기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제조업 공급사슬을 짧게 재구축해야 하는 삼성, 현대 등 굴지의 한국 대기업들은 기민하게 미국으로 공장을 옮겼고, 그러면서 미국, 그리고 그의 영원한 우방인 일본과의 교역관계도 중요해졌고... 등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인구구조는 10년에서 20년 사이의 텀(term)을 두고 일본의 인구구조를 따라가고 있다. 당연히, 여러 사회문제도 그대로 답습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지방소멸’이다.
마스다 히로야 저서 '지방소멸'
2014년, 일본의 사회학자인 ‘마스다 히로야’가 주창한 개념으로, 대도시가 아닌 지방은 인구가 감소해 쇠퇴하게 된다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주장이나,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접근법을 제시하게 됐는데, 그것들이 ‘지방창생’이라는 국가정책에 반영됐던 만큼, 국내에서도 지역재생, 도시재생과 연관되어 여러모로 논의됐었다. 골자는 일자리, 인프라, 자원이 풍족한 지방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타카하시 히로유키’는 절대적인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느 지역의 인구를 다른 지역에 이주시키려들기보다는 복수의 지역에 지속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인구 유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재생수단으로 한 때 유행했었던 리조트개발과 같은 일회성 관광으로는 지역을 진정으로 활성화시킬 수 없으며, 어떤 계기로 생긴 지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종의 애향심을 가진 인구를 정책적으로 포착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지방창생정책은 이러한 유형의 인구를 ‘관계인구’라 명기했다.
관계인구의 개념도.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은 이러한 관계인구 정책의 동향을 신중히 고려한 국책사업이다. 지방소멸위기에 쳐한 어촌마을에 관계인구를 늘려 근린사회의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주민들과 협력하여 외지인들을 마을에 초대하고, 인연을 맺고, 어떤 형태로든 마을을 살리는데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해, 소비적인 만남이 아닌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간다. 유력한 대상은 ‘젊은이’, ‘외지인’, ‘바보(ばか)’라고 묘사할 수 있는 유연근무체계에 대응해 생겨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이들로, 정말로 지방소멸시대라는 최신(最新)의 마을만들기 사업이다.
말은 쉽지만, 글쎄, 무엇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다. 이런저런 좋은 구상들이 있다곤 하지만, 이곳이 지방소멸지역이라는 건 변치 않은 사실이다. 이곳은 무언가 일을 벌이기엔 무엇이든 충분히 없다. 아니, 뭐라도 될 것이 있으면 이미 남이 하지 않았을까? 무엇이든지 막막한데, 서울에 많은 것을 두고 아무것도 없는 남도 끝자락까지 내려오니 솔직히 울적한 마음도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퇴근 후 원룸에서 OTT를 보는 낙으로 산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그랬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망치듯 퇴근한 후, 탈출이 무망 한 원룸에서 캔맥주를 까마시며 작은 노트북액정으로 영화를 봤다. 나는 현실과 단절되기 위해, 매사가 안 풀리는 답답한 세상 속, 내게 허락된 작은 원룸에서라도 만족과 안락을 찾고자 발버둥 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그려내는 장르를 좋아하진 않았다. 마피아물, 서부극, 테러와의 전쟁 등 오히려 스크린 속 배경이 역사성과 리얼리티를 가지는 장르를 선호했다. 특히 이데올로기가 직간접적으로 묻어 있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그럴 때 스크린 속 황량한 배경이 원룸 밖 현실과 겹치면서 영화 속 ‘기계장치’인 폭력은 나에게 문명을 야만으로 ‘폭로’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줬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스타워즈’에 빠져 산다(스타워즈가 그렇다고? 물론 그렇다!). 일본의 만화는 2차 대전 전후에 전후 재건을 주제로 대중화되었고, 굳건한 우방 관계에 기반을 두고 냉전 기간 동안 SF 장르에서 미국, 일본 문화는 서로 교호(交好)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히 스타워즈도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았다. 예상할 수 있겠는가? 찌릿찌릿, 포스처럼 직감 대결이 벌어지고, 수많은 함포 전을 거쳐 끝내 광선검으로 승패를 가르는 ‘機動戦士 Gundam’이다.
미소 간 핵경쟁의 전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내세운 미국의 전략방위계획(SDI), 명칭은 스타워즈.
그리고 이런 교호성은 그저 문화적 용융으로 끝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득세할 시점, 냉전으로 인해 규모화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미국은 정치질서를 조정해야 될 다방면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에 민주당 일부는 냉전의 정치질서였던 뉴딜연합에서 이탈할 구멍을 찾게 되는데, 이들을 ‘아타리 민주당’이라고 불렸다. 훗날 클린턴 정부와 실리콘밸리로 꽃을 피울 ‘하이테크’, ‘벤처’ 산업 육성의 기치를 건 자들이었다. 참조로 ‘아타리’는 1세대 게임 중흥기를 열었던 일본의 게임사이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쇠퇴하는 지금, 일본과 결이 맞닿는 사업을 하며, 원룸에서 스타워즈를 탐닉하다니. 덕질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임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