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이 드물 때에 낙관하고 싶다

by 그냥사탕



아이를 기관에 등원시킨 후 혼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공기는 차가웠으나 모닝 햇살은 따뜻했던 덕분에 오히려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평소와 같지만 어제와 또 다른 시작점인 아침의 순간. 오늘은 또 어떤 일을 야무지게 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두 다리와 팔을 부지런히 놀려본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한들 운동 싫어하는 1인으로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역시나 앞선다.


길가에 버스들이 쌩쌩 지나간다. 그러나 어제와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 커다란 앞 창에 자신들이 어느 학교를 향하는지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다. 어떤 곳은 수험생들의 성공을 응원하는 현수막까지 치장해 놓았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이 오늘 수능날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알았다. 덕분에 오늘은 전국이 조용하게 흘러갈 테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가들이 많다 보니 고등학생 형님들의 고충을 알 턱이 있나. 어린이집, 유치원 차량을 놓칠까 엄마 손 잡고 짧은 다리를 이용하여 뜀박질하는 아가들에게는 선생님을 무사히 만나 버스를 타는 일이 더욱 중요할 테다.


지나가는 버스 덕분에 추억까지 곱씹느라 집에 오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다. 텅 빈 집에 신발을 벗고 늘 하던 데로 타이머를 맞추고 집안일을 해낸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한숨 돌리려 라디오를 틀고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창 밖에는 또 다른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은은한 클래식을 들려주던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다시 한번 말해준다. 그러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 학생들이 경찰차 또는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오늘 같은 날에도 누군가는 지각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또 어떤 이에게는 인생에서 기억 남을 괴로운 날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수험생들에게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그 시절에도 그러했으니 아마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그러하겠지.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이 시험이 아이들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길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전 국민이 나서서 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 계획도 조정하고, 어떤 회사는 출퇴근 시간도 변경한다. 어쩌면 하나의 축제 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성공과 실패라는 공식적으로 달아주려는 심판의 날이라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노력해 왔기 때문에 모든 수험생들이 원하는 결과를 받아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몇 십 년 전 수능을 치러보았던 경험자로서 아픈 순간은 긴 인생에 짧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시험 성적에 따라 대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의 급을 나누고 만나던 친구들의 형태들도 바뀐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진짜 어른들의 세상이라고 부르는 사회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정글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능이란 단 하나의 성적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으나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추억으로 남아 사라질 수도 있다.


공부 잘하는 남편과 못하는 여자가 함께 만나 두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족이 된 나처럼 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 당시 꿈꾸었던 모든 케이스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멋진 독신의 커리어우먼을 꿈꾸었는데 애가 있는 가정 주부라니...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언제나 우울하지만 않았다.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얻었고 새로운 꿈을 다시 만들어 커다란 날개 달고 날아보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 앞에 있는 무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고개를 들어보고 싶다. 결국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사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이 드물 때에 낙관하고 싶다.

낙관을 버릇으로 들이고 싶다.

돌발적으로 나타나 내 삶을 더 낫게 만들 긍정적인 변수는 지금 계산하려고 해도 계산할 수가 없으니까.'

-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에서...


MZ 세대 SF대표 소설가라고 부르는 심너울 작가는 그의 책에서 '낙관'이라는 단어를 썼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슬프고 우울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긍정적 사고를 갖는다면 엄청나게 내공을 쌓아야 될 테다. 심지어 버릇으로 들인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이 되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등장했을 때 자신을 시험하는 고난의 역경이 아닌 새로운 기회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다채롭다. 다양한 소설들이 행복을 향할 때 언제나 주인공은 긍정 파워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생을 원하는 소설로 만들고자 한다면 하나의 순간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기에 나의 오늘은 '낙관하는 하루'로 목표를 잡아 본다.

더불어 수험생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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