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보이지 않았다

by 그냥사탕


내 인생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꿈 많고 푸르른 5월의 나무처럼 그렇게 살기 원했다. 연둣빛이 가득 차 있는 활기찬 삶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혼과 출산은 모든 꽃들이 만개하듯 사랑으로 넘실대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의 연속이었다.



결혼 후 1년.


임신을 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에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지 일주일 만에 경력 단절이 시작되었다.

불규칙한 외벌이 가정. 당장 다음 달 생활비와 각종 빚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가정 경제 상황은 안정을 추구하던 나에게 불안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내 곁에 생기고 이대로 주저앉나 싶었지만 몇 년 뒤 감사하게도 재취업의 길은 열렸다.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나에게 새로운 할 일이 생겼다는 점이 즐거웠다. 물론 벗어나지 못하는 쥐꼬리였으나 그럼에도 괜찮았다. 스스로 수익 창출이라는 대업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직접 벌어 쓰고 싶은 곳에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직장 안에서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오로지 내 이름 석자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 행복했다. 육아와 일을 함께 하고 있었지만 몸은 고단해도 영혼은 숨을 쉬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통의 엄마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모성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이었을까?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주변에서 나를 인정해 주고 그 과정에서 멈추고 있지 않다는 그 반응이 마치 중독처럼 느껴져 피곤한 몸과 전쟁 같은 출퇴근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찰나인 것일까?


이런 즐거움을 남모르게 마음껏 즐기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상처가 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당연한 듯, 즐거운 모습을 보이며 학교와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들어가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팍팍하기에 둘째라면 서러울 대한민국의 서울살이였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에, 맞벌이라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은 당연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친정 엄마와 내 아이들이 그 몫을 감당하고 있었다.


남들과 똑같은 출근과 퇴근을 하려면 아직 어린 꼬맹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친정에서 육아를 도맡아 주셨다. 남들은 질겁한다는 황혼육아를 나의 엄마는 너무도 태연하게, 그리고 즐겁다는 표현으로 기꺼이 도와주셨다. 늘 죄송스러웠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이들 또한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조부모님의 손으로 충당하면서 엄마의 직장을 받아들였다. 보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일을 시작한 이후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평소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친정 엄마께서 무릎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안정적인 모양새라고 믿고 있던 일상은 약간의 충격에도 금방 흔들렸다.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던 불안이 드러나기에 충분조건이 되었다.


당시 초등학교를 입학한 큰 아이는 입학 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의 맞벌이 가정이 그렇듯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봄에 있다가 5시에 태권도를 가서 집에 돌아오는 패턴이었다. 늘 쿨하게 괜찮다고 말을 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병원 행으로 학교 돌봄반에서 가장 늦게까지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행히 어린이집들 다니던 둘째는 야간연장으로 저녁 8시까지 보육이 가능했지만 첫째는 아무리 늦게 끌어도 6시면 집에 도착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7시에 돌아왔다. 대표를 제외한 직원이 단 둘인 직장에서 나의 사정을 헤아려 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의 공백이었던 그 한 시간 동안 아이는 집에서 홀로 TV를 보며 나를 기다렸다.


퇴근 후 정신없이 저녁을 차려주고 밥 먹고, 둘째 하원하면 이내 취침이었다. 불필요하고 비겁한 변명이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저녁 준비를 하고 아이는 TV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재미에 푹 빠져있는 아이가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 조금씩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음... 음... 음...'


처음에는 환절기라 목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아들~ 감기 걸렸어? 아니면 목이 간질거리니?"

"아니요~ 괜찮은데요."

"그래? 그런데 왜 소리를 내? 헛기침한 거야?"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어라. 아닌데...

나는 분명 들었는데...


본인의 적극적인 부인에 혹여 잘 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한 번 들리기 시작한 그 소리는 점점 더 잘 들렸다. 어딘가 불편한가 싶어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소리와 함께 한쪽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틱'이었다. 아이의 마음이 불편했다.

예전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안과 진료 후 그런 증상이 '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음성 틱까지 보인다는 건 예전보다 강도가 심해진 것으로 해석되었다. 반응이 있을 때마다 지적하거나 스트레스가 지속된다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과 공유만 할 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잠이 들 때까지 잊을만하면 들리는 아이의 특이한 헛기침은 계속되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던 내 작은 아이의 마음이 아프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