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친정 엄마께서는 재활과 함께 집으로 복귀하셨다.
그로 인하여 외나무다리에 한 발로 서 있는 것 같았던 불안정함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다시금 싹트고 있었다.
잠을 자기 위하여 두 아이와 함께 이불 위에 누워있던 어느 날 밤.
작은 무드등 하나를 의지한 채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예수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아가들의 팔베개를 하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첫째의 '음'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그동안 많이 챙기고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의 반응은 안쓰러움을 몰고 왔다.
그것에 대하여 지적은 금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뿐이라 여겼다. 이야기의 물고를 트는 것은 어려웠지만 각자의 학교, 어린이집 생활에 대하여 궁금하기도 했기에 운을 뗐다. 양쪽 팔에 매달린 꼬마 매미들은 할 말이 많았는지 각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큰 무게를 두지 않은 채 각자의 소원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답변들은 내 안에 무언가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첫째 : "학교 앞에서 엄마가 기다리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요"
둘째 :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이 내 소원이에요"
그동안 크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꼬맹이들. 그저 어린이집이 좋아서,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원서 간다고 말해왔던 아가들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내가 문제였다. 스스로 너무 둔하고 그 마음을 몰라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앞에서 당장 '엄마가 내일부터 회사 그만둘게!'라고 호언장담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못났고, 또 그래서 속상했다.
재취업을 하면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고 여겼었다. 매일이 고돼도 '나'라는 사람 그대로 보아주는 세상이 너무 좋아서 아이들의 깊은 속마음을 몰라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익숙해서 진실을 보지 못했다. 아니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하루를 버텨보자는 마음에 나 자신을 계속 밀어붙였고, 기어코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큰 장벽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의 속 마음을 들은 이후 여전히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 누구보다 귀한 내 새끼들. 일 하는 것이 좋기는 했으나 당장 퇴사를 감행하기에는 금전적인 부분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등원과 등교는 계속되었고, 엄마가 아닌 '나'로 바라봐주는 세상으로 출근했다. 남편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큰 이벤트 없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금쪽이들의 소원을 알게 된 이상 마음은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계속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 걱정에 먹고사는 것조차 미션이었던 과거였다.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자 재취업을 했고 조금씩 안정을 향해 한 발, 한 발 가까워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하는 것이 좋았다. 스스로 땀 흘려 번 돈으로 태산 같은 빚도 갚아나갈 수 있는 것 또한 나를 당당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는 상반되게 내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심 괜찮다며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나에게는 죄책감으로 몰려왔다. 일하는 것은 좋았으나 엄마와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그 장면이 눈에 밟혔다.
내가 뭐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 없는 -100점짜리 엄마이지만 그럼에도 세상 최고라며 품에 달려와 안기는 내 알맹이들이 감사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때부터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두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논의를 해 보아도 그저 나의 선택에 전적으로 손을 들어주겠다는 그의 말은 고민을 완벽하게 해갈시켜주지 못했다. 두 가지 보기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다. 양쪽 모두 그래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대단한 경력은 아니었으나 일을 그만 둠으로서 스스로 멈추게 된다는 것은 절망에 가까웠다.
반면 두 마리 토끼를 원하나 멀티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신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벅차왔다.
나를 사랑하지만 그보다 더 내 새끼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일터에서 웃으면서 업무를 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흔들림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빅 이벤트가 생겼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자연스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바른 길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