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결심했어! 퇴사를 결심하다

by 그냥사탕

나를 위해 살까?

가족을 위해 살까?


양쪽 모두의 이유는 너무나 뚜렷했다.

그렇기에 시원하게 어느 한쪽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모습에 하늘도 답답했었을까? 이런 상황이 길어지다가 결국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는 장벽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나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이었다.


12월의 중순이 지나던 어느 날 갑자기 한쪽 귀에서 소리가 났다.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웅~'하는 낮은 듯한 보일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아진 것이 아니었다. 청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보일러 소리와는 별개로 오른쪽 귀에서 들리는 모든 것들이 왼쪽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불안함이 몰려왔다. 근무 중 양해를 받아 급히 근처 병원을 찾았다. 이비인후과에 들려 몇 가지 검사 후 '돌발성 난청'이라는 병명의 진단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에 이리저리 폭풍 검색을 했다.


'30%는 돌아오고, 30%는 지금 상태에서 멈추고, 나머지 30%는 완전히 청각을 잃는다'


대부분 무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고, 흘러 흘러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인터넷 카페까지 도달했다.

왜 그곳에는 나았다는 사람을 찾기가 그토록 어려운지...

하다못해 재발도 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귀 속에 커다란 주사를 맞기도 했으며, 끝내 청력을 돌리지 못했다는 우울감 넘치는 글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걱정보다는 당혹감이 더욱 컸다.

청력을 되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앞으로 2주.

일반인이 복용하는 양의 7~8배에 달하는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한가득 처방받아 돌아왔다. 여기에 주의사항이 앞뒤로 빼곡히 적혀있는 A4용지 한 장은 덤이었다. 묵직한 약봉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허탈했다.


사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때문에 한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것 외에는 잘 안 들리는 것쯤은 참을만했다. 직접적으로 통증이 따라오지 않아서였는지 크게 불편하다는 느낌이 적었다.

(방금 언급한 철없고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대하여 지금도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고 고생하시는 모든 환자분들께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무조건 '절대 안정'이라는 의사의 강력한 경고에 따라 이부자리와 한 몸이 되었다. 오히려 늘 잠이 부족한 나에게는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지리 같은 정신 나간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러 시장으로 나갔을 때였다.

양쪽 손에 고사리 손을 잡고 사이좋게 웃으면서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각종 먹거리 구경거리가 즐비한 그곳에서 흥분한 아가들은 양쪽으로 흩어졌다. 한창 저녁식사 준비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은 많았다. 큰아이는 그나마 근처에 있었기에 다시 손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이미 추진력을 얻은 둘째는 자신의 세상에 빠져 저 앞에 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발견했는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내 깨달았다.


한쪽 귀는 들렸기에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안일한 개념. 많은 인파 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사람이 왜 귀가 두 개인지 그때 알게 되었달까. 내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미련을 넘어 멍청한 어미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급히 두 아이를 단단히 붙잡은 후 마알간 두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


"그래. 다시 엄마가 되자"


어쩌면 한 순간도 엄마가 아닌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 있는 순간은 엄마가 아닌 오로지 '나'로 있었다고 착각했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진첩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엄마였다.

근무 중 어린이집, 학교, 학원에서 전화가 오면 휴대폰을 쥐고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받았던 나도 엄마였다. 퇴근 후 오늘 밤에는 무슨 책을 읽어줄까 고민하고, 이번 휴일에는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아이들이 즐겁게 들어줄지 생각했던 나도 엄마였다.


막상 일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퇴사 소식에 두 아이들은 누구보다 두 팔 벌려 환호했고, 날짜 개념도 확실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제 곧 다가올 엄마의 마지막 D-Day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그동안 못해준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내 욕심 채운다고 내 새끼 마음 제대로 채워줄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일하는 것은 여전히 좋았으나 마음을 정하니 아이러니하게 해방감도 동시에 느꼈다.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하고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지금이 그 때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게 나는 약 3년 만에 다시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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