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심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약 3년간의 워킹맘으로서 쉴 틈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아이들의 소원과 나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걸 깨닫게 된다. 늘 부족함 투성이지만 아이들에게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온 우주와 같은 존재인 엄마니까 말이다.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최선을 다하여 메꾸어주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망울, 무한의 사랑을 담은 따듯한 미소를 더 많이 담아놓고 싶었다. 스스로 놓쳐왔던 지난 3년간의 순간들을 덮을 만큼 행복한 기억으로 꽉 채워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성장들을 직접 지켜보고 싶었다.
다행히 약을 한 주먹씩 먹으면서 잃었던 청력은 2주일 안에 돌아왔다.
정확히 딱 한 달 만에 다시 재발이 되어 가족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으나 그 또한 이벤트처럼 무사히 잘 지나갔다. 워낙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기에 후폭풍으로 각종 부작용을 경험하며 고생한 것쯤은 굳이 말 안 하련다. 그동안 얻었던 깨달음이 있었기에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아니, 오히려 건강이라는 수업료에 비하여 배운 것이 더욱 많았다.
워킹맘과 가정주부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있을 때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딱 하나였다.
'내 아이와의 시간'
단지 시끄러운 시장통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일은 그저 한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포인트가 갈팡질팡하며 팽팽한 수평선을 이루고 있을 때 가장 묵직한 힘으로 작용했다.
이제 내가 가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임에 분명했다. 그중 가장 큰 걸림돌은 내가 육아와 살림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처녀 적 나의 꿈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라고 누누이 말해왔던 1인이었다.
스스로 사전에 결혼이란 절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철없던 나였다.
과거 임신과 동시에 경력단절이 된 이후 심리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다. 내 아이가 하교할 때 교문 앞에서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을 먹는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설렘도 느꼈다. 하지만 '안정'이라고 부르기에 여전히 여러모로 헐떡거리는 상황에서 외벌이 가정이 된다는 데에는 또다시 두려움이 앞섰다.
경제적 어려움이 나를 덮치지는 않을지, 다시 가정주부가 됨으로써 사회와의 단절로 힘들어하지 않을지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내가 집순이라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에 처박혀야 한다. 여기에 더 이상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덮쳐왔다.
하지만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도 못 가누고 울기밖에 못하던 아가와 10평 내외의 공간에서 단 둘이 있었던 때와 지금은 여러모로 달라져있었다. 나를 보고 웃으며 할 말 다하는 미래의 10대와 나보다 더 꾸미는 공주님이 함께 있다. '나'가 없어지고 '엄마, 아내'로만 살아간다는 데에 여전히 부담감과 불편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나 또한 성장했다고 믿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텼다.
방법이 없어 감히 내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악착같이 버티며 지금까지 왔다. 아무도 내 곁에 없을 것이라 단정했던 과거와는 달리 언제나 옆에 찰싹 붙어서 무조건 내 편을 외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완벽한 방어벽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세상 속에서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워킹맘이라는 또 다른 전장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는 새로운 방향, 나의 전장이라는 '가정주부'라는 임무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가정주부 :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
전업주부 :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표준국어대사전에 표기된 두 단어의 의미다.
내가 굳이 전업주부가 아닌 가정주부라고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단지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퇴사를 결정한 이유. 아이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집'을 house가 아닌 home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육아와 살림에는 젬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각종 sns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처럼 반짝반짝 거리는 예쁜 집을 만들 자신은 없다. 하지만 육아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떠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엄마가 있는 곳이라면 안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만들어주고 싶었다. 행복한 우리 집이라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바람으로 이제는 외면하지도, 피하지도 않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더 뒤로 갈 데도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