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이잉~~~
요란하게 진동으로 존재를 알리는 알림과 함께 눈을 뜨는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밍기적거리는 아이를 채근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순간, 일하는 엄마로서 나의 죄책감과 갈등은 시작된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어 '바지 입혀달라, 양말 신겨달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어리광부리는 꼬맹이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빨리 움직이라 말하는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흔들림이 멈출 줄 모른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지옥철을 타야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나를 찾아야 했기에 아이를 돌볼 시간과 여유가 항상 부족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공부 보다는 신나게 놀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러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빛좋은 개살구처럼 포장한 그럴듯 한 말 이었다. 체력적으로 심하게 방전되는 나의 심신 상태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렇게 한 쪽 눈을 가리고 아웅다웅 했던 과거였다. 할머니와 함께였기에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었다.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방치하다보니 첫째는 '공부하자'라는 말도 거의 먹히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리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라고 핑계를 대 보았지만 집에오면 내가 먼저 뻗기 일수였다. 그렇게 여유 시간은 TV를 끌어안고 사는 첫째는 초등 입학 한 달 전에 급하게 한글을 떼고 들어갔다. 책을 참 좋아했던 아이는 더이상 거들떠보지 않았다.
때문에 퇴사 후 가정주부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새롭게 이사를 한 곳에서는 TV를 아예 없애버렸다.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이미 글자 읽기를 거부하고 관심 없어하는 아이에게 영상을 대체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름의 취미는 프라모델. 스스로 책 읽는 걸 싫어하기에 조금이나마 글자의 노출이라도 하는게 좋을까 싶어 학습만화를 집어드는 아이에게 잘 하고 있다고 격려 해 주었다. 여기에 다시 만난 외벌이의 어려움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불안감이 더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미 산재되어 있는 많은 문제들로 갈팡질팡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러가지의 문제가 나를 죄어오며 갈등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법. 포기하면 끝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잔잔한 호수 아래에서 어떻게 해서든 떠 있고 싶은 마음에 다리만 연신 파닥거리는 오리 신세였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온다고 연신 흔들어 대던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면 침수밖에 답이 없으니까. 더 나은 상황을 만드는 방법은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내가 가정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지금 당장 새로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새어 나가는 비용을 막아야 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앞두고 한눈 팔지 않도록 단단히 부여잡았다. 냉장고를 괴롭혔고, 매주 일요일에 식단표를 작성하여 생활비 방어에 들어갔다. 한창 식욕이 샘솟는 아이들과 함께 외식 한 번 하는 금액으로 일주일 집밥을 도전했다. 또한 스스로 읽는 것을 거부하는 첫째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둘째를 상대로 매일 밤마다, 그리고 아침 기상 송으로 직접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글밥이 많은 동화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던 첫째는 엄마의 목소리를 찾아 내 옆에 앉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학습 만화 외에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가끔가다 본인이 원하는 책을 읽어달라며 내 눈앞에 들이밀기도 했다. 그럴때면 비록 피곤에 절어 두 눈이 감겨와도 다 쉰 목소리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사랑하는 내 천사들에게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소위 부모의 잘못된 모성애로 매체에 오르락거리는 헬리콥터맘처럼 될 자신은 없었다. 애초에 깜냥이 거기까지 못되고 무엇보다 체력도 문제였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다 힘이들면 언제든 마음 편하게 돌아올 수 있는 둥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힘든 아이에게 그저 나는 언제나 너의 편에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 무렵 큰 아이의 한쪽 눈 깜빡이는 행동 틱 증상은 없어졌다. 소리를 내던 음성 틱은 횟수가 많이 줄어 본인이 불안하거나 잠들기 직전에만 잠깐 할 정도로 많이 호전되었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몇 달을 되돌아보니 나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너도 나도 함께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날이 되었다. 그 때에는 다른 것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마음 여린 아이의 교우 관계나 학교 생활이 어떤지 궁금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부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고민을 만들어 주셨다.
의외로 학교에서의 아이는 씩씩했고, 옳고 그름이 명확하여 친구들 사이에서도 규칙을 꽤 잘 지키는 개구쟁이였다. 한 반의 모든 친구들과도 사이 좋고 명랑하며 쾌활한, 그리고 호기심 가득인 딱 초딩 남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학기 초 치뤄졌던 수행평가지를 마주했을 때에는 당황하여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소신있게 모르면 손도 대지 않았던 흔적. 마치 뒷장에는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고 오해 할 뻔 했다.
아차 싶었다.
초등 저학년의 문제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럼에도 그 결과를 마주하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 또 한번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글자를 도통 읽지 않았기에 학습만화여도 책이라는 걸 들고만 있으면 칭찬했던 어미가 문제였다. 누구를 탓하리요. 초등 저학년은 엄마 성적이라고 하던데 나의 성적표가 딱 그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저학년이라는 기회였고, 지금이라도 상황을 파악했기에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학습부진'이라는 단어가 남 일이라고 여겨왔는데 아이의 '마음'에만 치우쳐서 커다란 그림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의 현 주소를 마주했고 이 아이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대로 챙겨야만 했다.
나도 나지만 한동안 잊고있던 퇴사의 이유와 무엇때문에 가정주부가 되고자 했는지 그 이유를 되새김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긴 대화를 했다.
그리고 마음과 함께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학습 결손이라는 부분까지 더하여 '엄마 공부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학원으로 돌리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는 둘째 치고 태권도를 제외한 모든 사교육을 들먹이면 치를 떠는 아이에게 억지로 목줄을 채워 끌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하겠지만 그조차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집에서 엄마와 함께 모든 것을 하는 것에 대한 장점을 부각시켜 나름의 홈스쿨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 앞 뒤로 빼곡한 학교 시험에서 1~2개를 맞히던 아이는 조금씩 수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몇 개월이 지난 이후 1~2개를 제외한 모든 문제를 맞혀올 정도로 학습에 대한 불안감이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