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주욱 적어 놓았다.
"그래! 나는 오늘도 할 수 있어!"
위대한 포부를 담은 오늘을 작성 후 단호한 목소리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아이들을 깨우고 본격적인 아침을 시작한다. 꿈속에서 헤엄치고 이는 꼬맹이들은 현실과 통하는 눈꺼풀을 두꺼운 자물쇠로 걸어 잠궜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간지럽히고 사랑을 속삭이고,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도 끄떡없다. 결국 시간의 마지노선이 다가오자 꿈틀거리며 각자 안아달라고 두 손만 번쩍 거린다. 끝내 한 명씩 돌아가며 안아서 일으켜주니 그제야 미적미적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은 목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김 죽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눈앞에 있는 그릇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한다.
'저는 토스트 먹을래요~'
처음에는 당연히 안된다 그랬었다. 하지만 주부가 되어 가사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취향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집에 있는 재료라면 아침부터 언성 높이고 싶지 않아서 원하는 것을 해주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아침 메뉴는 김 죽과 토스트가 되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으면서 확연히 다른 식성은 가끔 나를 번거롭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성공했다. 그렇게 등원, 등교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이후에 집으로 돌아와 나만의 시간을 시작한다. 교문을 등지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어느새 자유를 향한 기쁨으로 변하여 가볍게 느껴졌다.
얼마간의 매일을 보내면서 그 흥분은 자신감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독으로 작용하는 법. 나열되어 있는 투두리스트를 바라보며 조금씩 꾀가 생기기 시작했다. 몇 번의 반복은 점차 작업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30분 만에 하던 일들을 25분, 20분으로 조금씩 단축되었다. 또힌 익숙해짐에 따라 하나를 하며 또 다른 하나를 동시에 처리하는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그렇다.
그것이 멋진 모습인 줄 알았다.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깨닫지 못했다.
여유 시간이라고 믿었던 그 순간 잠시 휴식을 하겠다고 들었던 핸드폰은 내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한동안 잘하지 않았던 sns를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별그램, 블로그, 너튜브 어플을 누르는 순간 굳게 다짐했던 나는 이미 안드로메다 행 로켓에 탑승했다. 자기 계발을 위해 소스를 얻겠다는 건전한 생각은 어느새 알고리즘이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알지도 못하는 신세계를 영접했다. 한 번은 우연히 잘못 터치한 고양이 영상 한 번 보았다가 일주일 동안 고양이 구출 영상만 올라온 적도 있었다. 내가 진짜 동물 구조대원인 줄 착각할 뻔했었다.
저녁 메뉴로 사용할 닭가슴살의 요리법을 검색하다가 예쁜 여성을 만났다. 뽀얀 앞치마를 착용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에서 맛있는 식사를 만드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어느 날에는 독서 육아를 위한 검색어 한 번 쳤을 뿐이었는데 흙투성이가 되어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틈틈이 운동과 취미생활까지 즐기는 엄마를 마주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것뿐이랴 그럼에도 엄청난 수익을 자랑하는데 보는 입장에서 절로 쭈구리가 되는 것을 느꼈다. 화려하고 어여쁜 세상. 하지만 작은 액정 밖의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가정주부가 되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로 몸은 고달파도 잠깐이었지만 3년간 다시 일을 했다가 돌아온 불량주부였다. 아니 그냥 여전히 초보딱지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며,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다 보니 이제는 집안일과 육아 문제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꼬물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액정 속 누군가의 화려한 모습은 동시에 나의 부족함 가득인 스스로를 부각하고 있었다.
특히 SNS에서 보는 완벽한 가정주부들은 하나같이 만렙이었다.
돈도 잘 벌고, 얼굴도 예쁘고, 체력도 최고이며, 우아한 아내이자 아이의 교육까지 완벽한 자애롭고 똑똑한 어머니였다. 그것이 마음속 부담감을 고조시켰다. 어쩌면 그들을 보며 스스로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땀 뻘뻘 흘리며 집안일을 해도 늘 더러웠고, 냉장고를 뒤적이며 든든한 식사를 제공하고자 노력해도 태가 나지 않았다. 깨끗한 옷을 입히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기른다고 했지만 항상 모자람은 가득했다.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여겼지만 돌아오는 아이들의 말은 '엄마는 좋겠다. 집에 있으니까...'라는 부러움이었다.
그래. 나 또한 그랬다.
워킹맘일 때에는 퇴사하면 집에서 좀 쉬면서 지내도 될 테니 좋을 것이라 잠시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조용한 걸 좋아하기에 딱히 집에서 혼자 있어서 '외롭다, 고독하다'라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온종일 산더미 같은 빨래와 설거지, 청소 그리고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뿐이 남지 않은 인생이 보였다. 그동안 콩알만큼이라도 키워놓았던 자신감은 흔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사라져 갔다.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에 매몰되면서 조금씩 '나'를 잃어갔다.
그렇게 즐거워하던 유일한 취미 생활인 독서는 아이들과 집안의 모든 일에 밀려 또다시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다. 마주한 거울 속에서 지친 눈빛과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즐겨 쓰게 된 한 여자를 바라보며 이 사람은 누구인지 당황했다. 그 무렵 새벽기상 후 작성하던 To do list와 아침일기는 이미 접은 지 오래였다. 작심삼일도 유분수지 아이들이 일어날 때까지 거실 바닥에서 뒹굴며 핸드폰을 하고 있는 일상을 다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고작 몇 개월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무너지는 내 모습을 진짜 나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다시 삶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각종 육아서에 나와있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틀에 박힌 말들을 믿기로 했다. 내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다시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와 곧게 설 수 있으니 말이다.
귀찮음이 앞서 외출할 때에는 모자를 찾던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돌발성 난청'으로 받아온 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잠을 깨웠다. 신문의 첫 장을 기웃거리다가 아이들을 깨우기 전 머리를 감고 나를 씻었다. 그렇게 하루의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니 대충 차려주던 아침 식사를 제대로 된 밥상으로 챙겨줄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자의 기관으로 등교, 등원을 시켜 준 후 양가 어머님들께 차례로 전화를 돌렸다. 이제는 루틴이 된 어머님들과의 수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친구도 많이 없던 나였다. 그런 가운데 두 분은 함께 대화하며 웃을 수 있는 감사한 존재다. 주말에는 못하지만 평일 주 5일 아침에 이렇게 깔깔거리며 수다 타임을 마무리 지으면 그날 에너지 완벽 충전 되었다. 남편은 너무 자주 한다고 말리지만 나에게는 친정 엄마, 남편 엄마와의 매일 통화는 긍정 파워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남들이 말하는 고부갈등은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 여전히 완벽한 가정주부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쁘다. 물론 엄마, 아내라는 역할도 있지만 나라는 개인이 기준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가정주부라는 삶은 달콤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보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SNS에 나오는 만렙의 대상들.
여전히 나의 지금 모습들과 상당히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잘 가꿔 가공된 액정 속 모습이라는 점을 이제는 깨닫게 된다. 내가 못한다는 것에 주눅 들 필요가 엎다는 것을 말이다. 알고리즘의 친절함이 너무 과해서 앞으로도 계속 안내해 주겠지만 그것을 스스로 옆집 엄마라며 모자란 나와 비교할 필요 없다. 나는 그냥 나니까 말이다. 행복한 인생은 환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이기에 나의 마음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